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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이 주시는 복의 진정한 의미 / 송봉모 신부님
작성자이복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28 조회수1,681 추천수3 반대(0) 신고

 

(제가 현재 읽고 있는 책인데 너무 마음에 와닿아서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발췌 했습니다. )

 

 

하느님이 주시는 복의 진정한 의미 / 송봉모 신부님

 

 

우리는 쉽게 물질적 풍요를 복과 연결시킨다.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을 복 받은 사람이라고도 한다. 어떻게 부자가 되었든 상관없이 축복받은 사람이라며 부러워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재물 축복 받기를 원하기에 교회마다 강조하는 것이 재물 축복 받는 것이며, 그것이 은혜 충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또 쉽게 행운을 복과 연결시킨다. 심심풀이로 복권을 샀는데 10억 원에 당첨되었다면 복 받았다고 얘기한다.

백화점에서 산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러 갔는데 입구에서 백만 번째 고객이라며 요란하게 사진 찍고 백만 원짜리 상품권을 받으면, 복 받았다고 얘기한다.

 

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이런 것일까?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업이 잘되고, 자식들이 잘되고, 건강하며 행운이 연속해서 터지는게 복일까?

흔히들 삼박자 축복을 얘기한다. ‘예수님 잘 믿으면 영혼 구원은 물론이요 물질 복과 건강 축복까지 얻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삼박자 축복에 대한 약속은 없다. 삼박자 축복에 대한 인간적 바람은 있지만 하느님의 약속은 없다.

굳이 찾는다면 인간적 바람이 요한의 셋째 서간에 나올 뿐이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의 영혼이 평안하듯이 그대가 모든 면에서 평안하고 또 건강하기를 빕니다(1,2).

 

요한 사도가 신자들에게 삼박자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과 하느님이 직접 약속하시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하느님이 삼박자 축복을 약속한 적은 없다. 그럼 하느님이 약속하시는 축복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아브라함이 받은 복과 참행복(진복팔단)

 

흔히 아브라함을 복 받은 사람으로 얘기하는데 실제로 아브라함 자신이 받아 누린 복은 많지 않다. 대개가 미래에 그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질 복이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큰 민족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아브라함 당대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그의 이름을 크게 만들어 줄 것이란 복도 훗날 언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많은 복이 그의 당대가 아닌 후대에 이루어지는지는 예수님의 참행복 가르침을 들어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5,3-9).

 

이 참행복에서 언제 그들이 복을 받아 하늘나라를 차지하는지 보라. 언제 그들이 복을 받아 위로를 받는지 보라.

언제 그들이 땅을 차지하는지 보라. 하나같이 미래에 받지 않는가!(그리스어 성경을 보면 모든 동사가 미래형으로 쓰여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하나같이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지 이 세상 삼박자 복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금 당장 받는 세상의 복보다는 하느님과 관련된 진정한 복을 맛들이고 우선적으로 갈망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세상의 복을 아쉬워하며 우선적으로 그 복을 구한다. 세상의 복이 채워지지 않을 때 하느님께 실망하거나 원망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세상의 복을 구하는 것이 당연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참행복에서도 보았듯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 복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재인식하고 그 복을 맛들일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 자신이 구체적으로 받아 누린 복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제나 함께하셨다는 것이다. 목적지도 가르쳐 주지 않고 하느님이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했을 때, 하느님은 늘 그와 함께하리라 약속하신 것이다.

이 약속이 그가 구체적으로 하느님께 받아 누린 복이다. 창세기 151절을 보면 하느님이 나는 너의 방패다.” 라고 말씀하셨다. 곧 하느님이 언제나 그와 함께하시면서 방패가 되어 지켜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그가 구체적으로 받아 누린 복이다. 이보다 더 큰 복이 있을까?

우리가 하느님께 받는 복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주님께서 보살펴 주시는 가운데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자녀로서 구체적으로 받은 복이다.

성직자든 평신도든, 직장이이든 주부든,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우리가 누리는 구체적 복이다.

많은 사람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 하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서 무슨 일이 닥치면 몹시 불안해하고 힘들어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가 머리로 믿는 것과 실제로 그 믿음을 산다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는 마취과 의사는 환자에게 마취할 때마다 긴장과 불안감으로 힘들어 했다. 신앙을 갖고 있던 분이라 머릿속으로는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든 위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에 늘 불안해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다보니 실생활에서도 내적평화를 얻기가 어려웠다. 건강까지 영향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주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면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자주 고백하며 내적 평화의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은총을 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긴장과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서 모든 상황을 지배하고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진 것이다. 이런 체험이 있고 나서 진정한 복은 다른 것들, 곧 재물이다 지위와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이시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무척 기쁘고 감사했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도

나무를 자르고 물을 긷는다.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나무를 자르고 물을 긷는다.

 

이렇게 부단한 노력을 통해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살아갈 때 가정은 천국 같고, 일터는 보람된 곳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가정은 지옥 같고, 일터는 고역살이가 된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깊이 체험하면,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귀한 일이 된다.

하루에 기저귀를 스무 번 빨거나, 화장실을 청소하거나, 먹고살기 위해 모진 고생을 하거나 모두 귀한 일이 된다.

주님과 함께하기에 그 일이 다 축복받은 일이요 귀한 일이 되는 것이다.

 

(송봉모신부, 순례자 아브라함2 중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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