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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해석에 대한 단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30 조회수1,047 추천수2 반대(0) 신고

 

 

조금 전에 인터넷에서 성경 해석을 놓고 서로 갑론을박 하며 싸우는 모습을 봤습니다. 저는 성경 지식이 없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은 없어도 오랫동안 성경을 본 건 사실입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변명아닌 변명이지만 개종 후에는 성경을 적게 봤습니다. 이상하게 그렇게 그냥 되어버렸습니다. 참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평범한 신자보다는 많이 봅니다.

 

나름 전문서적도 봅니다. 오늘 저는 서로 논쟁을 하는 양쪽 어느 편도 아닙니다. 저는 누구의 말이 맞다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성경 해석의 유일한 키를 가지고 있는 분은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이건 정말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어찌 보면 인간이 성경을 놓고 이렇니 저렇니 하는 건 정말 깊이 생각한다면 그건 오만의 극치이고 교만의 극치입니다.

 

감히 피조물이 하느님의 뜻을 자기의 해석이 이렇고 저렇고 하는 풀이의 해석은 그게 설사 맞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그게 위험한 발상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게 위험한 발상인지 아시는지요? 성경을 이미 그런 정도로 말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자신이 하느님 수준에 거의 근접하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그건 정말 엄청난 교만입니다.

 

다른 세상 지식은 몰라도 성경만큼은 아무리 자신이 성경 학자 아니 성경 할아버지라고 해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엄청난 교만입니다. 그럼 우리는 성경을 어떤 자세로 또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성경 속에 있는 하느님의 마음을 읽으내려고 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라고 봅니다. 하느님께서 성경을 주신 근본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희가 성경학자들처럼 성경지식을 가지는 걸 원하실까요? 물론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성경을 알면 그만큼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기 때문에 성경을 상고하는 건 정말 하느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것일 겁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는 본질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도 어쩌면 냉정하게 말하자면 경거망동한 언행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은 그냥 해석 이전에 그대로 일단 받아들이는 게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 숨겨진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해석이 필요한 겁니다. 왜냐하면 해석이 되야만이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가 해석이 필요한 겁니다. 또한 이런 해석도 신학자가 해석을 했든지 학자가 해석을 했든지 이것도 절대적인 해석이라고 단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겁니다.

 

신학자가 됐든 학자가 됐든 그런 해석도 인간적인 해석밖에 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신학자, 성경학자가 있었다고 해도 그분들 중에 그렇게 하느님 말씀을 연구하고 하느님 말씀을 그렇게 많이 아신다고 해도 어디 성인의 경지에 오른 분을 몇 분이나 보셨습니까? 성경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는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해석이 맞다 저 해석이 맞다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정말 지양되어야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예전에 개인적인 일로 법공부를 몇 년 한 적이 있습니다. 법 공부를 하려면 수 많은 판례를 공부합니다. 판례를 공부해야만이 법적 마인드가 탄탄해집니다. 어떤 판례는 정말 감탄을 넘어 경탄을 할 정도의 판례를 봤습니다. 정말 인간의 머리로 어떻게 이런 판단을 하고 이런 논리를 전개할 수 있을지 정말 위대한 판결문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런 판결문만 아니라 수많은 판례를 보면서 하나 느낀 게 있습니다. 법은 귀에 걸면 귀골이, 코에 걸면 코골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약간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인간의 머리가 엄청 뛰어나다면 그런 머리로 법의 해석도 논리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유리한 방향으로 논리를 전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판례는 이렇게 해석하고 그때 해석한 법관은 동일한 인물인데 왜 이 문제도 당연히 동일한 법관이라면 이렇게 해석해야 되는데 다른 시각으로 해석을 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근데 재미나는 건 이 해석도 논리적으로 법리를 따르면 틀린 해석이 아닙니다. 이건 바로 무엇을 말하는지 아십니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결국은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판사도 사안에 따라 판단하는 기준이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법관이 고무줄처럼 상황마다 다르게 해석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세상 모든 게 일률적으로 두부 짜르듯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유명한 시인입니다. 그냥 신경림 시인입니다.

 

자신의 시를 해설해놓은 시집을 하나 우연히 봤습니다. 그게 학생들 참고서였습니다. 정말 그 해설서를 보고 너무 어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정말 말도 되지 않는 해석을 해 놓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런 게 바로 비근한 예입니다. 저자의 생각과는 완전 엉뚱한 해석을 하는 겁니다. 이처럼 성경의 저자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의 생각을 읽어내려면 그만한 수준에 근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런 수준에 근접한 사람이 없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맞습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이런 자세로 성경을 연구하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성경을 해독하고 해석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하느님의 숨은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과정으로 이해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해독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걸 알기 위해 끊임없이 또 그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하느님과 아니면 성령의 도움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설명을 해 놓으셨다면 이 세상에 지금 영적인 지식이 정말 많이 없을 것이고 너무 단순할 겁니다.

 

그러면 성경에 대한 연구가 미미했을 겁니다. 오히려 미스테리하게 신비처럼 말씀을 하셨기에 그걸 연구하는 메리트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획일적인 정답이 없습니다. 제가 조금 전에 판례를 언급했듯이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완전 다른 판결이 나올 수 있듯이 성경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겁니다.

 

근데 하는님께서 이게 정답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의 학문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이론이 뒤집어집니다. 비근한 예가 의학 분야입니다. 그렇다면 그 학문이 거짓 주장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 주장이 있는 것도 나름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해서 내놓은 주장인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연구 결과가 나오다 보니 기존의 연구 결과가 잘못되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나니 그게 잘못된 연구결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럼 왜 이렇게 결과가 번복이 되는 것입니까? 바로 그 당시의 연구 결과에서는 이렇게 연구결과를 번복시킬만한 결과물이 도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경 연구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의도는 성경을 인간이 해석하면 안 된다는 그런 논리가 아니라 좀 더 거시적인 측면에서 성경을 바라봐야 되는 것이고 또 이걸 단순히 해석하는 차원으로 근접할 게 아니라 하나의 신비로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경험하고 알기 위한 수단으로 접근을 한다고 생각을 하면 정말 하느님의 마음을 기계적이고 획일적으로 아는 게 아니라 그냥 원래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감정을 인간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때도 있는 것처럼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과 그 숨결이 있는 성경을 문자 속에 있는 문자의 의미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문자 속에 있는 하느님의 숨결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한번 부족한 제 생각이지만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제 생각도 완전히 틀릴 수 있습니다. 단지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저도 제 생각이 맞다고 하면 그것도 아주 건방진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을 더 드리자면 성경도 글입니다. 우리가 글이라는 건 정말 그 글의 액면 그대로의 말을 제대로 이해를 하려면 문해력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언어를 지도를 해봐서 알지만 정말 같은 글인데도 문해력이 부족한 아이는 완전 이상하게 어떤 글을 이해를 합니다. 이건 무엇을 말합니까?

 

동일한 글인데도 글을 읽고 또 그 글 속에 숨은 의미를 이해를 잘 하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제가 요즘 지도하는 애 하나가 있습니다. 이제 고2인데요 대단한 언어 이해력을 가졌습니다. 이 애는 어떤 포인트만 알려주면 다 이해를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보통의 애면 정말 많은 설명을 해야만 되는데 이 애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학생은 독서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기자를 지망하는 애라서 제가 영어를 지도를 하지만 기자가 될 아이라서 제가 좀 특별히 지도를 합니다. 저는 이 학생이 언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전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기자가 되려면 다양한 사회 현상을 보고 남들이 보지 않는 면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게 훌륭한 기자가 되는 하나의 자질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은 이 학생처럼 우리도 성경을 이해하는 수준도 자신의 신앙이나 믿음의 정도 또는 영적인 식별을 할 수 있는 영안에 따라 이해를 하고 받아들이는 상황이 다 다를 겁니다.

 

이처럼 우리도 성경을 해석하는 것도 자신의 수준에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져야 하느님 말씀을 겸허하게 또 겸손되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느님 말씀을 함부로 자기 생각이 맞다고 또 이렇게 해석해야 되니 하는 그런 경솔한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성경을 말씀할 때는 정말 한없이 낮은 자세로 아주 조심해서 말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한 인간의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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