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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첫사랑을 잊지 못한 호세야 선지자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02 조회수1,974 추천수1 반대(0) 신고

 

 

호세아 선지자는 고메르를 사랑한 선지자였습니다. 고메르는 하느님께서 아내로 받아들여라고 해서 아내로 맞아들인 여자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일입니다. 어째서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하시는지 하느님이 정말 야속할 지경입니다. 저는 이 호세야서 이야기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의미 말입니다.

 

저는 그런 성경적인 의미를 떠나서 하나의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처럼 해서 묵상을 해봤습니다. 고메르가 또 다시 뭇 남자가 그리워서 호세야를 버리고 집을 나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호세야 선지자에게 다른 남자를 사랑해 자신에게서 떠난 여인을 사랑해주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래서 그 아내를 돈을 주고 사오게 됩니다. 참으로 하기 힘든 일입니다.

 

고메르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같다고 성경은 에둘러서 표현을 합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우리와 똑같은 모습입니다. 저는 더 깊은 성경 내용보다는 이 내용만을 가지고 묵상을 해봤습니다. 영적인 의미는 차치하고서 이 스토리에만 몰입해서 본다면 정말 왜 호세야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고메르를 아내로 맞아들였을까입니다.

 

자신은 하기 싫은데 하느님의 지엄한 명령이라서 순종했을까? 아니면 정말 고메르를 아내로 생각할 만큼 사랑했을까? 저는 이 두 가지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했다는 의미보다도 고메르를 사랑해서 아내로 받아들였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묵상을 해봤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이라서 순종했다고 하면

당연히 순종에 초점을 맞추니 너무나도 밋밋한 이야기가 될 수가 있어서 이 부분을 배제하고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 같으면 이게 가능할 수가 있을까요? 대다수의 사람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호세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어떤 뉘앙스를 가지느냐에 따라 의미는 완전히 다를 수가 있습니다. 단순히 하느님 말씀이라는 측면의 말보다 같은 의미일 수가 있지만 하느님을 사랑해서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좀 이해를 할 수가 있지 않을까요?  호세야라고 해서 이때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 싶었겠습니까?

 

인간적으로는 다른 아내를 받아들이고 싶겠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거라서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려고 했던 것일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음란한 여인을 받아들여 살았지만 그 여인은 또 다른 남자 그러니까 옛날 그 시절이 그리워 호세아의 품을 떠나게 되지만 그런 아내를 호세야는 돈을 주고 사들여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바로 이 부분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속량해주신 것과 비슷한 의미인 줄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 부분만 본다면 인간적으로는 정말 화가 날 수 있을 상황이지만 그래도 다시 아내로 받아들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가장 진지하게 생각해봤습니다. 정말 하기 힘든 일입니다. 근데 이게 가능할 수 있습니다. , 조건이 있습니다.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으로써는 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을 초월한 사랑을 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바로 이때는 연민의 정입니다. 만약 자신이 정말 세상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 다른 남자에게 눈길이 가지 않을 정도의 매력이 있었다면 그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한눈을 팔 수 있었겠습니까?

 

남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처지를 생각하면 비참하겠지만 한편으로써는 그런 아내의 입장을 아내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를 한다면 아내를 용서할 수가 있지 않을까요? 더 정확히 말하면 용서라는 말도 좀 이상합니다. 그럼 자신이 무능했든지 어땠든지 자신을 떠난 여자의 마음을 되돌릴 때 어떻게 해서 여자의 마음을 되돌려야 할까를 한번 묵상해봤습니다.

 

저 같으면 아무리 음란한 여인이었더라도 사람은 욕망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서 여인에게 진정으로 이 모든 건 자신의 무능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서 모든 걸 자신을 탓하며 상대방 여인의 모든 부정행위를 불문에 붙이겠다고 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린 표현은 성경 상의 스토리를 기준으로 해서 생각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약 남자가 이렇게 말하면 어쩌면 여자의 마음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어림도 없다는 것과 또 하나는 남자를 배신해서 외간 남자와 지내는 자신을 그래도 잊지 못해서 그 모든 걸 자신을 탓하며 오히려 부정한 짓을 저지른 자신을 받아들여주겠다고 하는 남자를 봤을 때 어쩌면 도리여 이상한 사항이지만 그 남자가 더 애처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만약 여자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왜 나 같은 여자를 찾아왔느냐? 나 같으면 나 싫다고 떠난 여자면 그냥 두 번 다시는 쳐다도 보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고 몸서리칠 텐데 하면서 오히려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서 나 같은 여자를 잊고 딴 여자 만나서 잘 살아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남자지만 이런 사정을 여자라고 생각하고 상상을 하니 그런 말을 하는 입장에서 아무리 자신을 잊지 못해서 찾아온 남자에게 그렇게 말은 해도 그게 자신의 본심이 아닐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 못난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온 그 남편이 애처로울 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바로 이때 이 남편의 마음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죄를 짓고 고해소에 가서 하느님께 죄를 짓지 않겠다고 통회를 하고 또 하느님을 사랑해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만 하겠다고 하지만 또 죄의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하느님의 사랑을 배신하고 유혹에 빠져 있을 때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나는 도저히 번번이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이라고 단념하지만 또 다시 그런 자신에게 자비의 손길을 주시는 하느님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18절에서부터 보면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결국은 하느님이시기에. 하느님이시라서.하느님이시라서...... 호세아가 고메르 여인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게 바로 고메르를 향한 연민도 한몫 했을 겁니다.

 

고메르 여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여인을 잊지 못하는

호세아 선지자의 마음이 바로 하느님 마음입니다.

 

제가 성경 지식이 많이 없어서 성경의 지식과는 먼 묵상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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