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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4.0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02 조회수1,995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9년 4월 2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제1독서 에제 47,1-9.12

그 무렵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3 그 사람이 동쪽으로 나가는데,

그의 손에는 줄자가 들려 있었다.

그가 천 암마를 재고서는 나에게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발목까지 찼다.

 4 그가 또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무릎까지 찼다.

그가 다시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허리까지 찼다.

5 그가 또 천 암마를 재었는데,

그곳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을 치기 전에는

건널 수 없었다.
6 그는 나에게 “사람의 아들아,

잘 보았느냐?” 하고서는,

나를 데리고 강가로 돌아갔다.

7 그가 나를 데리고

돌아갈 때에 보니,

강가 이쪽저쪽으로

수많은 나무가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복음 요한 5,1-16

1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의 ‘양 문’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3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4)
5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6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7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9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10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1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13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5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16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

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수도원의 수도자가

수도원장을 찾아가서 말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습니다.

이곳의 수도자들은 수도자가 아닙니다.

세속에 완전히 물들어 있고,

사랑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욕심을 채우는 데에만 급급합니다.

기도를 하자고 하면 답답한 사람

취급을 합니다. 이들이 바뀌길

주님께 기도했지만 도저히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이런 곳에서 도저히 수도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저는 떠나겠습니다.”
수도원장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의 마음을 알겠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나?

자네가 이곳을 떠난다고 하니

내가 어떻게 말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 가지만 해주고 가주겠나?

 여기에 있는 유리잔에 물을 가득

 담아서 이 수도원을 딱 3바퀴만

돌고 오게. 단, 유리잔의 물을

흘려서는 절대 안 되네.”
이 수도자는 원장의 마지막 부탁이라

생각하고, 유리잔에 물을 가득 담아서

 수도원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출렁거려서 넘칠까봐 이 유리잔에

집중하면서 조심히 수도원을 돌았습니다.

그가 다 돌고 오자,

수도원장은 이렇게 묻습니다.
“유리잔을 들고 수도원을

도는 동안 다른 수도자들에 대해

 생각이 났는가?”
바로 이때 이 수도자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다른 수도자들의

모습에 대해 생각이

났던 것은 주님께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다른 수도자들의 모습이

내 수도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주님께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인 것입니다.
종종 분심 때문에 도저히 기도하기가

힘들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는 곧 주님께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지요.

그래서 다른 생각들이 내게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벳자타라는 못에서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을 만나십니다.

그의 고통을 아신 주님께서는

“건강해지고 싶으냐?”라고 묻습니다.

당연히 “건강해지고 싶습니다.”

라고 말해야 할 텐데,

그는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벳자타 못의 물이 출렁일 때

가장 먼저 그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병을 깨끗이 치유 받을 수

 있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람은 연못에 먼저 들

어가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건강해지기 위해 연못에

들어가는 것인데 그는 연못에만

제일 먼저 들어가는 것이

 소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치유해 주실 주님이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정작 필요한 것을

청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주님께 온전히 집중해야

필요한 것도 청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람의 마음은

나의 안쪽 어딘가 떠도는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열린다.

(김윤나)

(현재의 벳짜타 연못)


나를 낮추고 이웃을 높이는 삶

한 초등학생이 유치원에 다니는

동생에게 달리기를 하자고 합니다.

유치원생인 동생은 어차피

달리기를 해서 질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싫다고 말했지만,

사탕으로 설득을 시켜서

달리기를 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초등학생 형의

승리였습니다.
이 초등학생은 사람들에게

“제가 유치원생인 동생과

달리기를 해서 이겼어요.”

라고 자랑을 합니다. 친구들에게,

부모에게, 그밖에 만나는

모두에게 말이지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와, 동생을 이겼구나.”라면서

칭찬을 했을까요?

당연히 이겨야 할 것을 가지고

뭘 자랑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에구, 동생이나

 이기려 하고 참 한심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랑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과 말에 대해

 타인에게 인정과 지지를

받고 싶어 합니다.

별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자신을 몰라준다면서 서운해 하지요.

그러나 정말로 대단한 것일까요?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내세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이 이룩한

그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았다면 가능할까요?

이 점을 인정하지 않고, 내 자신만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욕심과

이기심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자신을 낮추고 이웃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삶입니다.

('빠다'라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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