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4월 3일(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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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4-03 | 조회수1,39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4월 3일 수요일 [(자) 사순 제4주간 수요일] 말씀의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고 하신다. ◎제1독서◎ <땅을 다시 일으키려고 내가 너를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다.> 49,8-15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위한 계약으로 삼았으니 재산을 다시 나누어 주기 위함이며 는 ‘모습을 드러내어라.’ 하고 말하기 위함이다.” 민둥산마다 그들을 위한 초원이 있으리라. 목마르지도 않으며 해치지 못하리니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며 주시기 때문이다. 길로 만들고 큰길들은 돋우어 주리라. 오며 또 시님족의 땅에서 온다. 땅아, 기뻐 뛰어라. 산들아, 기뻐 소리쳐라.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 나를 버리셨다. 하고 말하였지. 잊을 수 있느냐?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화답송◎ 시편 145(144), 8-9.13ㄷㄹ-14.17-18 (◎ 8ㄱ)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네.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 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세우시네. ◎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네.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 ◎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네. ◎복음환호송◎ 요한 11,25.26 참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복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복음입니다. 5,17-30 유다인들에게,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말한다.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들을 사랑하시어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이들을 다시 살린다. 심판하지 않으시고, 아들에게 넘기셨다.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생명으로 건너갔다. 너희에게 말한다.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없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오늘의묵상◎ 제2이사야에서 뽑은 오늘 독서의 배경은 바빌론 유배 시기 (기원전 6세기)에 속합니다. 끌려간 이들은 시온의 행복한 나날을 회상하며 현실의 고통을 한탄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그들에게 당신의 행복과 사랑을 상기시키십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다가오는 귀환으로 당신 사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당신께 충실한 이들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규정을 어기면서 중풍 병자를 낫게 해 주셨다고 비난하는 이들에게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부르시고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견주어 말씀하심으로써 추문 이상의 근거를 덧붙이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창조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습니다. 여기에서 ‘휴식’(안식)을 뜻하는 유다교 안식일 제도가 생겨납니다. 그러나 주님의 휴식은 일하지 않음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한 만물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도 구원을 베푸시고 생명을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만드신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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