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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4주간 금요일 제1독서(지혜2,1ㄱ.12~2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05 조회수1,427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순 제4주간 금요일 제1독서(지혜2,1ㄱ.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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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런 죽음을 내리자."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17~22)

 

지혜서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포함되지 않고, 칠십인역(LXX; Septuaginta; 희랍어로 쓰여진 구약 성경)에만 나오므로, 제2경전(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분류한다.

제2경전에서 처음으로 그리스어(희랍어; 헬라어)로 저작된 책 지혜서와 마카베오 하권뿐이다. 지혜서의 저작 연대는 B.C. 50~3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다인이 쓴 것으로 보인다.


유대교 사상가인 필로에 의하면, A.D.1세기 초에 이집트에는 100만명이 넘는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다 한다. 좀 과장된 숫자이겠지만, 이집트의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진 유다 백성들; 각 나라에 흩어져 사는 유다 교포들이 사는 곳을 말함)유다인들이 상당히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것이 분명하다.

 

지혜서는 철학, 윤리, 신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기된 갖가지 주제들을 다룬 소품 모음집이다.

저자의 집필 목적은 이집트의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이 헬레니즘 문화가 압도하는 대도시 알렉산드리아와 그 부근에 살면서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유대교의 정통교리를 다른 문화에 어떻게 적용하고 발전시킬 것인지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토착화(Inculturation)작업의 일환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혜서 저자는 유대교 전통을 거의 모르는 그리스인들과 저자 자신처럼 히브리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헬레니즘에 익숙한 유다인들에게 그리스 문화와 사상과 비교하여 유대교 관습과 사상이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헬레니즘에서 기원한 우상 숭배와 물질주의적 인생관에 맞서서 유다교의 전통적 믿음과 교리를 수호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일깨워 준다.

 

지혜서는 크게 세 부분, 종말의 숙고(1~5장), 지혜의 찬가(6~9장), 역사의 숙고(10~19장)로 나눈다.

첫째 종말의 숙고(1~5장)에서 저자는 하느님의 전지하심을 강조한다.

둘째 지혜의 찬가(6~9장)에서 임금과 권력자들에게 하는 권고, 7장 22~23절에 나오는 지혜의 정신에 담긴 정신의 특성 21가지(완전을 뜻하는 7의 3배수: 매우 완전한 숫자), 지혜를 청하는 기도(9장)등이 나온다.

 

마지막 세째 부분(10~19장)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반성이다.

지혜서10장에서는 원조들과 성조들의 이야기, 10장 15절~11장 20절에는 이집트 탈출 사건,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높이 기리는 찬미가(11,26; 구원의 보편주의), 가나안 정복, 자연, 우상, 동물 숭배의 어리석음(13~15장), 이집트 탈출 사건과 광야에서의 시련(16~19장)을 두서없이 열거한다.

 

지혜서에는 특히 두 가지 신학적 주제가 돋보이는데 <의인들의 불사 불멸>과 <지혜의 의인화>이다.

지혜서의 저자는 전통적 인과응보와 상선벌악의 원리를 확신하고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그는 의롭게 살고도 현세에서 보상을 받지 못한 의인들은 비록 장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더라도, 하느님 마음에 들어 죽은 다음에 하느님 곁에서 평화를 누리며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이다.

지혜서 저자가 희망하는 것은 죽은 의인의 부활이 아니라 의로운 영혼의 불사불멸이다.

 

한편 지혜서에 묘사된 <인격적 지혜>사람 안에 들어와 사람을 변화시키고 하느님과 일치하게 만드는 그리스도교의 <은총>개념과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 가운데 오신 요한 복음의 <육화된 말씀>과도 상통한다.

<인격적 지혜>를 성령이나 성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성급한 시도이지만 어쨌든 지혜서에서 신약성경의 삼위일체 신학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던지는 질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하느님께서 전지하시고 전선하시고 전능하신데, 왜 이 세상에 악이 범람하는가?

전선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께서는 왜 악을 허락(허용)하시는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참으로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착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분이 너무나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당하고, 불의의 사고나 불치병으로 일찍 죽는지? 하는 것이다.

 

동시에 끊임없이 나쁘고 못된 짓을 하며 천상천하(天上天下)유아독존(唯我獨存)처럼 살아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이 너무나 현세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잘되는 것을 보면, 神은 과연 계시는가? 도대체 神의 공의, 정의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던지면서 불신앙과 회의를 품게 된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소위 신정론(神正論)이라 일컬었다.

 

일찌기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보다 더 큰 善을 위해서, 보다 더 큰 惡을 예방하기 위해서" 전지하시고 전선하신 하느님께서 惡을 허락하신다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안에서 고찰할 것을 설파했다.

 

오늘 지혜서 2장에서는 바로 이러한 신정론과 관련된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지혜서 3장이 그 해답을 주고 있다.

전통적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상선벌악(償善罰惡)의 원리를 확신하고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영원(eternity)에 비교하면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가는 점(點)에 지나지 않고, 잠깐 지나가는 이승의 삶을 마치면 반드시 심판이 있고 그때에는 종말론적 자리바꿈(자리 전도)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공의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지상에서 비뚤어진 부분을 바로 세워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켜 주시고, 당신의 말씀과 계명에 충실한 이들에게 당신이 약속하신 상급을 반드시 주시며 의로운 영혼은 결코 불사불멸하지 않음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선행에는 상급을 내려 주시고, 악행에는 벌을 주시는 공의(公義)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불의하고 죄짓고 자신이 神이 되어 안하무인(眼下無人; overbearance)으로 이승에서 맘대로 산 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고 영원한 심판과 지옥벌로 갚아 주시어, 당신의 의(義)를 바로 세우시며, 당신의 생명의 말씀이 진실되다는 것을 입증하시고, 당신이 천상 천하의 절대 주권을 가지신 분임을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잠깐 살다가 육신 생명을 마치지만, 불의와 불법, 거짓과 오류, 무지와 폭력에 맞서서 하느님의 진리와 의를 위해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순교를 통해 그 목숨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되돌려 드린 순교자들처럼,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불의와 절망과 억울한 고통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천국의 영원한 복락과 내세를 믿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간성으로는 견딜 수 없는 지독한 고문과 박해와 죽음 속에서도, 내세의 영원한 복락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산 자에게 약속된 선물과 하느님을 지복지관(至福直觀)하며 영원히 찬양할 수 있는 축복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 잠깐 정리를 해본다.

악인들의 생각에 의하면, 의롭게 살았는지 아닌지가 결정나는 것은 죽을 때이다. "그의 최후가 어찌될지 지켜 보자."(2,17)

그래서 그들은 의인에게 고통과 모욕을 주고 죽음을 내릴 계획을 세운다.

그들의 말은 이사야서 53장(고통받는 종의 노래)을 상기시키는데, 이런 느낌은 지혜서 2장 18절의 '아들'에 해당하는 '파이스'(pais)가 '종'을 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더 강화된다.

 

그들은 의인이 참으로 하느님의 '파이스'(pais)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적대자들의 손에서 기적적으로 구해 주실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하느님의 길과 불멸성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지혜서 2장 21~24절에 나오는 내용은 불멸성의 중요성과 악인들의 그릇된 생각을 모두 강조한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셨다(2,23).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단지 악마의 시기 때문이다(창세 3장 참조).

 

불멸성 또는 하느님과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은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이며 "흠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이다(2,22).

이것은 하느님께서 의인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악인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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