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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4.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06 조회수1,947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9년 4월 6일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제1독서 예레 11,18-20

18 주님께서 저에게 알려 주시어

제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그들의

악행을 보여 주셨습니다.
19 그런데도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를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 나무를 열매째 베어 버리자.

그를 산 이들의 땅에서 없애 버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다시는

기억하지 못하게 하자.”
20 그러나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복음 요한 7,40-53

그때에 예수님의

40 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41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42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43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44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45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46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47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48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49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50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51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52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53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학창시절에 한 친구와

아주 심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학급회의를 할 때, 제가 의견을 내면

잘못되었다는 식의 말을 하면서

늘 반대의견을 내놓는 것입니다.

제게 나쁜 감정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친구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밉고 가까이 하기가 싫더군요.
20년이 지난 어느 날, 동창 모임에서

이 친구와 한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학창시절 때의 안 좋은

생각들이 떠올려지면서 그 자리가

 너무나도 불편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 친구에게 학창시절에 내 의견에

 항상 반대를 했던 것을 이야기하면서

 왜 나를 미워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글쎄...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저 학교 발전을 위해서

이야기했을 뿐이었는데?”
이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한 가지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상대방이 미워서 반대 의견을

냈던 것이 아니라, 둘 다 학교

 발전을 생각하면서 이야기했을

뿐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하지만 이 공통점을 보지 않고

나와의 차이점만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친구를 싫어하고

 미워했던 것이지요.
우리들은 자신과의 차이점만을

바라보면서, 나와 다른 것을

나에 대한 적대적인 행위로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일치될 수 있는데,

이 공통점은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저주합니다.

그 이유는 왜 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율법도 모르는 저주받은

자들이라는 것이지요.

자신들도 믿지 않는 예수를,

특히나 갈릴래아라는 초라한

지방 사람에게서 예언자가

나올 리 없다는 고정관념으로 인해서,

백성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예수님께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힘들게 한 것이 있을까요?

종교지도자들 역시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 역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분명히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철저히

차이점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참 생명과 참 진리로

 이끌어주시는 분을 백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구세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엄청난 죄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우리 삶 안에서 공통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차이점만을 찾다보면

잘못된 판단으로

큰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미리 실패를 두려워할 것은 없다.

 성공하고 못 하고는 하늘에 맡기면 된다.

 모든 일은 망설이기보다는 불완전한 대로

시작하는 것이 한걸음 앞서는 것이 된다.

망설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실패를 선택하라.

(러셀)

(갑곶성지에서 지금

현재 이콘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작품 중 하나)


맹모삼천지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뜻으로,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그 환경이

중요함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 이사를 결정한

어머니를 아주 훌륭한 어머니의

본보기로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맹자의 어머니가

보여준 이 모습은

바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사를 많이

가는 것이 자녀에게 좋을까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아실 것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새롭게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이렇게 힘든 것을

환경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이사를 감행하는 이 어머니가 어떻게

올바른 본보기가 될까요?

정말로 훌륭한 어머니라면 환경이

나쁘다고 이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어떤지를 미리 알아봐야 하

는 것이 아닐까요?
결국 어떠한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는

 맹자가 훌륭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 이사 간 공동묘지에서는

곡을 하면서 놀고,

시장에서는 장사꾼 놀이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글방 옆으로

 이사를 가니 공부를 했다고 하지요.

어떤 곳에서든 잘 적응하는

맹자가 훌륭하지 않습니까?
이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어떤 일에서든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습니다.

나와 똑같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빠다커피를 주셨어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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