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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4.0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08 조회수1,954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4월 8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제1독서 다니 13,41ㄹ-62

그 무렵 회중은

 41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42 그때에 수산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43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44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45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46 그러자 다니엘이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47 온 백성이 그에게 돌아서서,

“그대가 한 말은

무슨 소리요?” 하고 물었다.

48 다니엘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여러분은 어찌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신문을 해 보지도 않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어찌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49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50 온 백성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원로 지위를 주셨으니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설명해 보게.”

51 다니엘이 “저들을 서로

멀리 떼어 놓으십시오.

제가 신문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2 사람들이 그들을 따로

 떼어 놓자,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53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

54 자,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그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보시오.” 그자가

 “유향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5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하느님에게서 판결을 받아 왔소.

그리고 이제 당신을

둘로 베어 버릴 것이오.”
56 다니엘은 그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그자에게 말하였다.

“유다가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인 당신, 아름다움이

당신을 호리고 음욕이 당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소.

 57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왔소.

그 여자들은 겁에 질려 당신들과

관계한 것이오. 그러나

이 유다의 딸은 당신들의

죄악을 허용하지 않았소.

58 자 그러면, 관계하는 그들을

 어느 나무 아래에서 붙잡았는지

나에게 말해 보시오.” 그자가

“떡갈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9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도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당신을

둘로 잘라 버리려고 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 해서

당신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오.”
60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1 다니엘이 그 두 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62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복음 요한 8,12-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12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13 바리사이들이 “당신이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으니,

당신의 증언은

유효하지 않소.” 하고 말하자,

 1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15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16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17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8 바로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에 관하여 증언하신다.”
19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20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곁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을 잡지 않았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떤 분이 제게

예쁜 화초를 하나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화초를 받았을 때

실망의 표정을 제가 지었나 봅니다.

이 분께서는 당황하시며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라고 물으시더군요.

사실 이제까지 많은 화초를

키우려고 시도를 해봤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화초 선물을 받으면

괜히 부담이 되고 긴장이 됩니다.

이런 제 마음이 아마 그분에게

전해졌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지요.
“제가 화초를 키우면

 잘 자라지 못합니다.

그래서 조금 부담이 되네요.”
이 말에 그분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신부님, 화초 키우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화초를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사회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저서 ‘사랑한다는 것’에서

 이렇게 전해줍니다.
“만약 어떤 여성이 꽃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녀가

 꽃에 물주기를 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우리는 꽃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대상의 생명과

성장을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일이다.

적극적인 배려가 없는 곳에 사랑은 없다.”
우리는 단순히 말로만 사랑한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가 없다면 그것은 진짜

사랑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주님께 대한 적극적인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주님의 뜻에 함께 하는

 모습이 있어야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훼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당시의 종교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란 어쩌면 율법

자체에 대한 것에만 그쳤습니다.

율법의 정신이 ‘사랑’에 있음에도

그들은 사랑을 강조하시고 그 사랑을

직접 실천하시는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주님이 전혀

물리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대하고 미워하고

단죄합니다. 하느님을 진짜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며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만이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는데,

그들은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 있기에

이 주님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떠할까요?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혹시 입으로만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면서도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내세우면서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어둠 속에서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그래도 살아봄직하다.

리본이 매어있지 않은

 인생이라도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레지나 브렛)

(주님께서는 세상의 빛이십니다)


악의 평범성.

나치 독일이 유대인

 학살 계획을 꾸밀 때,

 600만 명을 제거하기 위한

효과적인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주도적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연행된 아이히만의

용모를 본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냉철하고 건강한 게르만

 전사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왜소하고 약해보이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재판을 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특별한 사람이 악인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 역시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기 때문’

이라고 말합니다.
사회,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정의와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악인이 그것도 잔인한 악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실천하지 않는 순간, 우리는

 악인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성지에도 봄이 왔습니다. 개나리가 활짝 피었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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