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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4.0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09 조회수1,916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4월 9일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민수 21,4-9

그 무렵 이스라엘은

4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복음 요한 8,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21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22 그러자 유다인들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24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25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27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신부님! 책 읽는 것이 왜 좋아요?”
어떤 분께서 제게

이러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할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냥요.”
왜냐하면 좋은 이유들을 세세하게

 말하기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말한다면 말할 이유가 참 많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도 있고,

 많은 생각들을 할 수도 있으며,

차분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밖에도 좋은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꼭 이유가 있어야

 좋은 것일까 싶었습니다.

꼭 제게 도움이 되어야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실 그 이유들을 찾으려다가

 오히려 좋아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들을

계속해서 제시합니다.

사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 때문에

공부를 하게 되면 실제로

흥미를 잃곤 합니다.

스포츠 경기도 그렇습니다.

 경기에서 이기려는 이유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이기는 이유를

따르기보다는 그 경기 자체를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고

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지요.

사랑하는 연인들을 보십시오.

그들 역시 사랑의 이유를

찾지 않습니다.

그냥 함께 있는 것이 좋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사실

자체에 행복해합니다.
우리 주님을 향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주님을 믿는 이유를 반드시

 찾아야만 할까요?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라는 이유로 믿는다고 한다면,

 그 필요가 채워지지 않게 되면

주님을 외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바리사이들을 비롯한 유다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당신이 누구요?”라면서 당신을

 믿어야 하는 이유를 묻습니다.

이렇게 이유만을 찾다보니

주님을 향한 사랑도 있을 수 없고,

그래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주님께서 하신 말씀들,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많은 표징들을

보면서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였다면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주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를

굳이 찾지 마십시오. 그 이유 때문에

사랑하고 믿는다면, 자신의 마음에

그 이유가 사라지면 오히려 싫어하고

 미워하는 대상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의 시대의

 유다인들이 그러했지요.

 예수님을 열렬히 환호하면서

맞이했다가 며칠 만에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라고 말합니다.
이유를 찾기보다는 주님께서

우리의 삶 안에서 보여주는

사랑에만 집중해 보십시오.

 그냥 좋고, 그냥 사랑할 수 있으며,

그냥 믿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언제나 삶을 사랑하고,

생존하여 살아냄을

긍정하는 것을 멈추지 마십시오.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

(주님의 사랑에만 집중하십시오)


40%의 법칙

어느 순간 스스로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한계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실제로는

전체 능력의 40%밖에 활용하지

 않았다는 ‘40%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는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나머지 60%를 더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40%만 활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이상 시도하기가 고통스럽고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난 최선을 다했어.”
달리기 할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이상 달리기가

불가능할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충분히

완주할 수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포기할 뿐이지요.
플라시보 효과를 아실 것입니다.

의사가 효과 없는 가짜 약 혹은

꾸며낸 치료법을 환자에게 제안했는데,

환자의 긍정적인 믿음으로 인해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지요.

긍정적인 믿음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핵심은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 생각한 것보다 더 능력이

있다고 믿고, 더 많이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의지력은 근육과 같습니다.

쓰면 쓸수록 근육이 생기는 것처럼

 나의 의지력도 마찬가지로

쓰면 쓸수록 점점 성장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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