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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국에서 빛날 영광의 고난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10 조회수1,304 추천수0 반대(0) 신고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린입니다. 이 바이올린이 왜 명품 바이올린인 줄 혹시 아시나요? 또한 이 바이올린의 가격이 수십 억에 가까운 바이올린도 있습니다. 도대체 이 바이올린이 무엇 때문에 그런 가치를 지닐까요? 

 


일단 악기입니다. 악기의 가치는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바로 악기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이 빚어내는 소리일 겁니다.


아무리 고가의 악기라도 악기의 고유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악기로서의 가치는 무의미할 겁니다.

지금은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원인을 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밝혀냈습니다. 바로 그 비결은 그 나무의 재질이 가지고 있는 밀도에 있었습니다.

 

바로 북미에 있는 해발 3000m 이상의 고지대에 일명 수목한계선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자생하는 나무가 이 바이올린의 주재료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여기 있는 나무가 명품 바이올린의 재료가 될까요? 


먼저 이 나무는 아주 거세게 불어오는 강한 칼바람과 맞서서 생존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이 성장을 하되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는 생존을 할 수 없기에 최후의 생존 수단으로써 할 수 있는 게 바람의 저항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마치 무릎을 꿇은 형상으로 최대한 낮은 자세로 유지를 해야만이 그런 혹독한 기후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혹독한 기후 환경이 나무의 재질 밀도를 강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었던 거죠. 바로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비결이 이것이었던 겁니다. 나무에는 바로 나이테가 있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나이에 해당되겠죠. 이 나무를 흔히들 무릎꿇은 나무라고들 많이 부릅니다. 이런 나무는 악기의 소리를 잘 진동시키기 위한 공명이 잘 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에 상당히 고가의 악기가 되었던 겁니다. 저는 이 나무를 보면서 이런 묵상을 해봤습니다.


이 나무는 그런 외부의 혹독한 기후환경이 없었더라면 또한 있었더라도 그런 환경을 극복해서 생존했기에 명품 바이올린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런 혹독한 바람이 마치 우리 인간 세상과 비유를 한다면 험난한 세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걸 삶에 비유한다면 세파에 부딪쳐서 정면으로 맞대결하는 게 아니고 물론 무릎을 꿇었지만 패배한 모습이라기보다는 그런 환경에 자신이 생존하기 위한 마지막 최후의 수단으로써 그런 혹독한 환경에 어쩌면 순응했다고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이런 세파도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크고 작은 십자가일 수가 있겠죠. 그러니까 이 나무가 이런 바람을 회피하지 않고 이 바람과 같이 부대끼면서 환경 탓을 하지 않고 순응했듯이 우리 자신도 저마다의 십자가라는 이런 세파를 온몸으로 받아내어야만이 무릎꿇은 나무로 만든 바이올린이 영혼을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듯이 우리의 영혼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이테를 보면 나이테의 조밀한 간격의 격차로 주변 환경의 기후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건 우리의 영혼에 비유하자면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나무의 나이테 모양은 이 나무가 그런 칼바람과 같은 혹독한 추위와 맞서 싸우면서 마치 나무가 흘린 눈물이 만든 눈물 자국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 눈물 자국이 바로 감미로운 음색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영혼도 이것과 아주 흡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네 삶 또한 살면서 시달리는 거센 세상살이의 세파인 십자가를  거부하지 않고 이 나무가 무릎을 꿇은 것처럼 자신의 아집과 고집을 꺾고 자신의 자아를 철저히 짓이겼을 때 그런 영혼이 내는 빛은 악기는 소리로 내지만 우리 영혼은 빛으로 마치 꽃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것처럼 하느님의 영광으로 채색될 겁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그런 영혼을 귀히 여기실 겁니다. 소리는 진동으로 나는 겁니다. 진동이라는 건 또한 주파수입니다. 자연공학에서는 주파수를 다르게 표현하면 빛으로 변환하여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바로 빛을 프리즘으로 통과시키면 여러 색상의 빛으로 나누는데 이 빛깔이 바로 우리가 휴대폰에서 쓰는 용어인 주파수 영역이나 음악에서 사용하는 음역과 같은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속성은 빛이신데 우린 우리의 영혼에서 나오는 마치 무릎꿇은 나무의 나이테가 보여주는 거와 같은 게 바로 저는 자신의 삶에서 크고 작은 십자가를 묵묵히 달게 지고 가는 영혼에서 나는 향기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영혼에서 나오는 빛이 뿜어내는 주파수가 하느님께서 발하는 주파수와 그 속성이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영혼이 내는 빛은 스트라디바리우스에서 나오는 소리의 주파수와 똑같은 성질을 띠게 될 거라서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도 나중에 우리의 영혼이 다음에 하늘나라 갔을 때 각자 저마다 자신이 지고 간 십자가에 녹여진 우리의 눈물과 고통이 만들어낸 나이테가 나무처럼 있을 겁니다.


우리는 마치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쩌면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맡겨주신 저마다의 십자가를 하늘나라까지 가져가는 게 그걸 다르게 표현한다면 우리의 그런 삶을 봉헌하는 여정이 신앙여정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고간 그 십자가가 나무의 나이테처럼 우리의 인생역정이 고스란히 다 녹아있지 않겠습니까? 혹독한 세파라는 십자가를 잘 지고간 십자가에서 나오는 빛은 분명 하느님 몸에서 발하는 빛의 주파수와 같기에 다음에 천상잔치에서 벌어지는 빛의 향연에서 울려퍼지는 영화로운 소리도 멋진 하모니가 되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영혼으로 빛나지 않을까요?


그런 걸 우리가 희망하고 간다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찾아오는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길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도 그런 희망을 마음에 품고 열심히 달려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며 참고 이겨낸 시간은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승리의 월계관을 쓰는 사람에게는 쓰라린 상처에도 새살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그런 것 모두는 하늘나라에서는 그냥 상처로 남는 게 아니라 영광의 상처로 남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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