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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4.1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10 조회수1,979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9년 4월 10일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제1독서 다니 3,14-20.91-92.95

그 무렵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14 물었다. “사드락, 메삭, 아벳 느고!

너희가 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또 내가 세운 금 상에 절하지도 않는다니,

그것이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뿔 나팔, 피리, 비파,

삼각금, 수금, 풍적 등 모든 악기

 소리가 날 때에 너희가 엎드려,

내가 만든 상에 절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그러면 어느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구해 낼 수 있겠느냐?”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가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이 일을 두고 저희는 임금님께

 응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17 임금님, 저희가 섬기는 하느님께서

저희를 구해 내실 수 있다면,

그분께서는 타오르는 불가마와

임금님의 손에서

저희를 구해 내실 것입니다.

18 임금님,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임금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 상에 절하지도

않을 터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19 그러자 네부카드네자르는 노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를 보며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가마를 여느 때에

달구는 것보다 일곱 배나

더 달구라고 분부하였다.
20 또 군사들 가운데에서 힘센

장정 몇 사람에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를 묶어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지라고 분부하였다.

 91 그때에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깜짝 놀라 급히 일어서서

 자문관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묶어서 불 속으로

 던진 사람은 세 명이 아니더냐?”

그들이 “그렇습니다, 임금님.”

 하고 대답하자,

 92 임금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

 결박이 풀렸을 뿐만 아니라,

다친 곳 하나 없이 불 속을 거닐고 있다.

 그리고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 같구나.”
95 네부카드네자르가 말하였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자기들의 하느님을 신뢰하여 몸을

바치면서까지 임금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들의 하느님 말고는 다른

어떠한 신도 섬기거나 절하지 않은

당신의 종들을 구해 내셨다.”

복음 요한 8,31-42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그들이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따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지금, 하느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이야기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10만원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받은 돈 10만원을

 낯선 사람 한 명과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눠 준 돈을 받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에 얼마를 받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낯선

사람에게 얼마를 주겠습니까?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실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결과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낯선 사람에는 1,000원 이하를 주고,

스스로는 99,000원 이상을

취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저의 예상에서

 벗어났습니다.

대부분 30~50%에 해당하는 돈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30% 이하는 불공평한 것으로

느꼈던 것이지요.
인간이 기본적으로

 인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인간이

관대하다는 것을 이 실험에서는

 우리들에게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대함을

저버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어쩌면 인간됨을 버리는

사람이 아닐까요?
관대함이 바로 ‘사랑’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마음이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려고만 노력할 때입니다.

또한 상대방을 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단순히 경쟁자로만 생각할 때였습니다.

그때는 관대함이라는 사랑은 사라지게 되고

 철저하게 인색한 모습으로만 남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하나하나

 창조하실 때, “보시니 좋았다.”라고

성경 저자는 말해줍니다.

언제 과연 보기가 좋습니까?

사랑이 가득한 곳이 그냥 좋습니다.

그러나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곳에서는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을 떠올리면 주님께서 하신

오늘의 말씀이 이해됩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문다는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직접 실천하신

사랑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하느님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게 사는 것이고, 보시니 좋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이고,

이러한 진리 안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이 됩니다.
실제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재물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거짓된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 인간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는 사랑 안에서

자유로운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과연 어떠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았는지를 반성해보았으면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좋은 집이란

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조이스 메이나드)

(주님 안에서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우리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

죄를 짓고도 전혀 뉘우침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네가 잘못한 거야.

이렇게 증거도 있잖아.”라고 말하면,

 “누구나 다 그렇게 해. 관행이야.

남들도 하는 것을 했다고

죄인 취급하는 것은 모함이야.”

라고 큰 소리로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염치없는 사람’

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남들도 다 하는 것이라서 자신의

태도 역시 괜찮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안에서 아픔과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전에 읽었던 사람의 마음에 대한

 글이 생각납니다.
“어렸을 때의 마음은 세모랍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그 마음이

닳고 닳아서 둥글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에는 조그마한 잘못에도

아파하고 힘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잘못을 지어도

큰 소리를 뻥뻥 치게 됩니다.

이제는 죄를 지어도 아프지가 않습니다.

 마음이 둥글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 큰 공감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시 우리의 마음을

세모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야 진심으로 뉘우쳐서 주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의정부교구 관산동성당에서

사순특강이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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