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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4.1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11 조회수1,930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4월 11일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 17,3-9

그 무렵 3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4 “나를 보아라. 너와 맺는

 내 계약은 이것이다.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5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6 나는 네가 매우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너에게서 임금들도 나올 것이다.
7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8 나는 네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

곧 가나안 땅 전체를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고,

그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9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복음 요한 8,51-59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그러하였는데, 당신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고 있소.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분보다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와 같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그러자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

어제 동창신부가 주임신부로 있는

 성당에서 사순특강을 했습니다.

 늘 그렇게 했듯이

 강의 시작 2시간 전에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예전에 강의 시간에 딱 맞춰서

출발했다가 늦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찍 도착한 뒤에는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강의 원고를

한 번 더 살펴보고 책을 읽습니다.

그런데 본당 근처에 카페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큰 건물에는 카페가 한 두 개씩은

 있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더군요.

또 다른 건물을 찾아갔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돌아다니다가 도저히

없을 것 같은 외진 곳에서

근사한 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에는

 없었고,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이런

의외의 일들을 참 많이 겪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런 의외의 일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만이

맞을 것으로 착각하지요.

그러나 실제에서는 자신의 느낌을

벗어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왜 일까요?

어쩌면 생각하지 않고 느낌대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분명히

긍정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느낌으로만 받아 들으려하니

여기서 부정적인 말과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인들을 묵상해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마귀가 들렸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대로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

리고 직접 보여주셨던 많은

표징들을 생각했더라면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느낌대로 하면서 돌을

집어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고

복음은 전해줍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유다인들은 느낌대로 돌을 던져서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하지만,

 이는 자신의 느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은 유다인들의

느낌이 아니라, 주님의 의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끊임없이 자신의 느낌이 진실인 듯이

착각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느낌만으로는 올바른 모습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더 깊이 생각하고 생각해야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분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누구에게도 오해받지 않도록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라.

어떤 경우에나 당신을 오해하고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한둘은 있기 마련이다.

(칼 포터)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발견한 멋진 카페)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습니까?

“마음에 무엇을 품고 무엇을 믿든

몸이 그것을 현실로 이룬다.”는 말을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자주합니다.

 이에 대해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

자랑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뇌 과학에서는 이 말이

사실임을 말합니다.
망상 활성계라고 있습니다.

 척수를 타고 올라오는 각각의

정보를 취사선택해서 대뇌피질로

보내는 신경계입니다.

여기서 자신이 필요한 정보는

입력하고 나머지 필요하지 않은

 정보는 그냥 버립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믿을 것과

믿지 못할 것,

볼 것과 보지 않을 것,

들을 것과 듣지 않을 것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이 여과장치의 기준이

바로 믿음입니다.

대뇌피질로 들어간 정보는

 입력되어서 이를 사실로

 증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어떤 가방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길거리를 다니

 이 가방만 보이지 않습니까?

믿음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뇌에 작용해서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으면 행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마음에 품으십시오.

분명히 주님의 뜻에 맞춰서

행동도 이루어집니다.

(주님을 내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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