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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4.1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12 조회수1,85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4월 12일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제1독서 예레 20,10-13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복음 요한 10,31-42

그때에 31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33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36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39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40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41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42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술주정뱅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혀를 차면서 말했지요.
“이렇게 벌건 대낮부터

 술에 취해서 저러고 있다니....”
일해야 할 시간에 일하지 않고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이 한심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마음속에서

이런 울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너도 저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 속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자기 자신과 술에 취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똑같이 평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술주정뱅이보다도 더 못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술주정뱅이는 술이 깨고 나면

술 마신 것에 대한 후회라도 하지만,

자신은 죄의식도 없이 또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도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더 한심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바로 여러분들도

잘 아는 아우스딩 성인이십니다.

성인이 아직 회심하지 않았을 때,

수사학으로 이름을 날리면서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주정뱅이를 통해서

 큰 뉘우침을 얻었고, 이 뉘우침이

 그가 회심해서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는 삶을 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성인처럼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달리

똑바로 살고 있다는 교만과 자신의

죄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뻔뻔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즉, 스스로 죄가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나 역시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늘 속죄와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신은 옳고 남은 틀렸다라고

생각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서 예수님께

 던지려고 합니다. 자신들은 옳고

예수님은 틀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기준만을 내세워서 아무런

죄도 없는 분을 향해 적의를 품고

돌을 던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실 돌을 던져서 죽인다는 것은

 큰 죄인일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잘못하신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한 것?

아니면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

분명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잣대에

눈이 가려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유다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보려하지 말고, 당신께서 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일들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일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아버지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하는 행동을 버려야 합니다.

 그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낮춰서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더 이상

십자가에 못 박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다른 사람에게서는 미덕을,

자신에게서는 결점을 찾아라.

(B. 프랭클린)

(진정으로 회심할 때 참 기쁨 안에 살 수 있습니다)


비우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언젠가 책상을 정리하다가

만년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성소국장으로 있을 때,

제 축일이라고 신학생들이

 ‘저희를 영원히 기억해주십시오.

’라면서 주었던 만년필입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잘 썼습니다.

 쓸 때마다 당시의 신학생들을

 기억하면서 화살기도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몇 차례 땅에 떨어뜨린 후에

촉 부분의 손상인지 잉크가 잘

나오지 않아서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과감하게 버리기로 결정했었지요.
사실 버리는데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원히 기억해달라면서 주었던

 ‘만년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버리지 않고

모아놓다가는 내 짐이 하염없이

늘어만 갈 것 같았습니다.
선물을 자주 받습니다.

예전에는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선물이 좋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모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버려야 할 때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채우는데 집중하기보다 비우는데

집중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내 마음 역시 마찬가지로

비워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차지하실

공간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 더 풍요로움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비우는 삶이 어쩌면

겸손의 삶은 아닐까요?

(이틀 전 의정부 교구 관산동성당에서의 특강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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