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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그리 많이 주셨는데, 나쁜 것이라고 어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12 조회수1,413 추천수5 반대(0) 신고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그리 많이 주셨는데,

나쁜 것이라고 어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강제로 나라를 빼앗긴 슬픔에

좌절하지 않고,

비록 머나먼 이국 땅에서나마

국격을 유지하기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친 분들의 헌신과

희생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드려야겠습니다.

임시 정부 요인들 하루하루의 삶은

참으로 각박하고 혹독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해야 했고,

부모나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못한

죄책감과 송구함 속에 평생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혀 현상수배되니,

언제나 이리저리 쫒겨다니는 불안한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1932429일 히로히토 일왕의

생일을 맞아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는

일본군 전승축하기념식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비밀리에 폭탄 투척 의거를

준비해왔던 윤봉길(1908~1932)

의사는 현장으로 출발하기 직전,

김구 선생과 마주 앉아 지상에서의

마지막 아침 식사를 드셨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차고 계시던

시계와 지니고 있었던 현금을

김구 선생에게 넘겨드리고 비장한

얼굴로 의거 현장으로 떠났습니다.

당시 나이는 불과 25세였습니다.

파릇파릇한 한 청년을 100퍼센트

죽음이 확실시되는 사지(死地)

떠나보내는 김구 선생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사랑하는 부모님과 부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의사의 마음은 또 얼마나

심란하고 송구했겠습니까?

그러나 두분은 두손을 꽉 잡고,

수십번도 더 흔들며,

다음 세상에서 행복한 얼굴로

다시 만나자며 오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당시 상해 임시정부는 대내외적으로

큰 도전 앞에 서있었습니다.

일제에 의한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작전으로 세력이

크게 위축되어 있었고,

동시에 요인들의 분열과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무력항쟁의 열기가

점점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성공적인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지지부진했던 독립운동에 다시금

큰 힘을 실어주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 국민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 임시정부는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

서슬퍼런 삼엄한 군사 법정이 내린

사형 언도 앞에서도 청년

윤봉길 의사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아주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이 철권(鐵拳)으로 일본을

즉각 타도하려고 상해에 왔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그 어떤

기약도 없이 황량한 이국땅을

헤매고 다니셨던 독립군들의 생애는,

주님과 동족을 위해 갖은 고초와

박해를 감수해야 했던 예레미야

예언자의 생애와 절묘하게 오버랩됩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인 예레미야

예언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신앙이란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

적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추종이,

예수님의 제자됨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언자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겨웠던지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 2010)

예레미야가 처음 하느님으로부터

불림을 받았을 때의 나이는

겨우 16세였습니다.

요즘 16세면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중학생입니다.

예레미야는 너무나 황당했고

기가 차지도 않아 하느님의

부르심에 귀를 막습니다.

너무나 어렸고,

너무나 부족함을 느꼈기에 기를 쓰고

거절하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하느님도 만만치 않으십니다.

기를 쓰고 도망가는 예레미야의 뒤를

기를 쓰고 쫒아가서 끝끝내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이윽고 어린 예레미야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는데,

이것은 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3짜리에게

내리신 부탁은 예루살렘의 멸망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3짜리 애송이가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유다 지도층 인사들과

만백성 앞에 가서 이스라엘의

파괴와 멸망, 그리고 신속한 회개를

외치기 시작하니 반응이 어떻겠습니까?

결과는 불을 보듯이 뻔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미친 사람

취급했습니다. 자꾸 헛소리해대는

그를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결국 그는 완벽한

왕따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의 한 평생은 제대로 된

왕따 인생이었습니다.

가족들은 물론, 친구, 친지,

온 백성이 그를 두고 비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들려오는

하느님의 신탁은 계속해서

예루살렘의 폐망을 알려라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괴로웠던지,

예레미야는 마침내 자신이

태어난 날 조차 저주합니다.

예수님을 추종하는 일,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일,

물론 아주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가시밭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숱한 희생과 포기가 요구되는 일입니다.

그래도 그 길을 걸어가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그리 많이 주셨는데 나쁜 것이라고

어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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