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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체/성체성사(† 성체의 기적)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14 조회수2,890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체의 기적 

아래의 글은 P.스카르가 신부님이 쓴

 "성체현존" 중에서 발췌하였으며
1988년 교회인가를 받았고 김남수 주교님이

신자들이 많이 읽도록 추천하셨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살이 된 성체]
때는 8세기가 막 시작될 때,

이탈리아의 란치아노에 있던

바실리오회의수사신부 한 사람이

성체 축성의 말씀을 외운 후,

예수 현존에 대한 의혹
이 들어 괴로와하게 되었다.

비록 무의식적인 유혹이긴 했으나

이 고통스러움은 한 사제의 믿음을

굳건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성체 기적 중의 하나가 되었다.
당황해 있는 사제의 눈 앞에서

성체가 눈에 보이게 살로 변했다
(중심부분은 빵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또 축성된 포도주는 밝은 색이 도는

 빨간 피로 변해, 형태와 크기가 각기
다른 다섯 개의

작은 핏덩이로 응고되었다.
살로 변한 성체는 12세기가 지난

오늘 날에도 볼 수 있듯이,

로마 교회에서 사용하는

대제병(大祭餠)과 같은 크기이다.

불빛에 비춰 보면 약간 갈색이

나기도 하는데,

얼핏 보아서는 장미빛이 난다.

응고된 다섯 개의
핏덩이는 노란색에 가까운

갈색 계통의 붉은 색이다.
바실리오회 수사들이 5세기 동안

이것을 간직해 오다가 베네딕토회에
옮겨진 후, 마지막에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가

예수의 성체와 성혈의이 기적을

관리하게 되었다.
오늘 날 살로 변한 이 성체는

 1713년 제작된 은제(銀製)

성광 속에 담겨져 있다.

리고 피는 크리스탈 성작에

담겨져 성광 밑에 안치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기적이 일어난

첫번째 성작이라고 믿고 있다.
성체와 성혈이 간직되어 있는

제대 양 옆에는 2 위의 천사가 예를

올리고 있고 또 믿음과 사랑을

상징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서 있다.
수세기가 흐르는 동안 네 차례에 걸친

공식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그 때마다 교회 당국으로부터

성보(聖寶)라는 인정을 받았다.
[볼세나-오르비에토 기적]
프라그의 베드로라는 이름을 가진

보헤미아 태생의 한 사제가 실체

현존에 대한 의혹에 사로잡혀 있었다.

축성한 성체를 쪼갰을 때 그는 거기서
피가 흘러나와 성체포

(미사 중에 성합과 성작을 올려 놓는 4각형의 수건)

에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피묻은

성체포는 오르비에토의

대성당으로 옮겨져 오늘날까지

그곳에 보존되어 있다.
교황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의뢰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는 미사를 쓰게 한 것이

바로 이 기적의 결과였다.

오늘날에 이르러 교황 바오로 6세는

오르비에트 기적의 기념일을

맞이하여 1964년 8월에

그 유명한 성지를 방문하였다.
실체 현존에 관한 대부분의 기적과

마찬가지로, 이 기적도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담겨 있는 성체성사에 가해진

모욕행위에 연관되는 것같이 느껴진다.
[시에나의 성체기적]
시에나의 기적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때는 1730년 8월 14일, 성모 몽소

승천을 기념하는 행사가 시에나에서
거행되고 있었다.

사실상 온 동네는 축제 분위기에 들떠,

성 프란치스코성당을 비워둔 채

내버려 두었다.
마을 사람들이 하늘의 여왕께

마음이 쏠려 있을 때,

성당에 도둑이 들어 축성한 성체가

가득 담겨 있는 커다란 성합을

훔쳐감으로써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여왕님의 아드님을 모독하였다.
성체를 도둑맞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신자들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이 독성(瀆聖)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며, 성체를 찾아 낼 수 있는

 빛을 하느님께 청하였다.
그들의 청원은 하느님의

허락을 받게 되었다.
3일이 채 지나기 전에 성체를

찾아내게 되었던 것이다.
17일 아침, 성 프란치스꼬 성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프로벤자노의
성 마리아 성당에서 소년 성가대원

하나가 애긍함 속에 들어 있는

하얀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먼지와 거미줄이 엉커 있는 그 속에

성체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대주교 한 분이 조심스럽게 성체를

들어내어 하나씩 헤아려 보았다.
공식적인 예를 올리고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돌려보내진 성체는 351개였다.
그러나 사건은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계속되어오는

놀라운 성체 기적의 시작에 불과했다.

 도난당했던 이 성체를 성당에 모시고 있던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날마다

이 성체를 조배하려는 시에나 신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으므로 그것을

수도자에게 영해 줄 수가 없었다.
성체 조각들이 변하지 않고 원래의

상태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밝혀진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이따금

이 성체를 신자들에게 영해

주었기 때문에 이제는 223개의

성체 조각이 남아 있을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모두 완전히 보존된 상태에 있다.

[성 안토니오 기적]
13세기에 파두아의 성 안토니오가

아주 간단한 시험으로 완고한

이교도를 회개시켰다는 이야기가 있다.

보노닐로라는 이름의 이 이교도는
"이교도들을 때리는 망치"라는

별호를 가진 성 안토니오의

설득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보노닐로는 옆에 서 있던

노새만큼이나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안토니오는 노세에게 시선을 주면서

보노닐로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만약에 이 노새가 무릎을 꿇고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 조물주께

예를 드린다면 이단을 버리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이교도는 몇 가지

조건만 들어준다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했다.
조건이란 이틀 동안

노새에게 먹이를 주지 말며,

사흘째 되는 날에는 그 놈을

 넓은 운동장으로

끌고 나가라는 것이었다.

또한 운동장 한 옆에는

구미를 돋구는 신선한 먹이를

많이 놓아 두고 다른 한 옆에는

보노닐 로가 경멸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는 것을

안토니오가 들고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토니오는 그렇게 하자고 대답하고

단 한 가지,

겸허한 자세로 조건을내세웠다.

만일 이 동물이 성체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그의 죄만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괴상한 시험의 날이 다가왔다.

운동장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보노닐로가 조소하는 얼굴로

 배가 몹시 고픈 노새를 끌고 도착했다.

 노새가 그 동안 굶었으니 식욕이

왕성해져 먹이가 있는 곳으로

먼저 가리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잘못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안토니오는 연 이틀 동안

이 이교도의 영혼을 위해

주님께 간청했다.

하느님은 이 열성적인 종의
간청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끈이 풀리자 노새는 주저하는

빛도 없이 안토니오 쪽으로 다가가

성체앞에 무릎을 꿇었다.

조배라도 하려는 듯한 태도였다.
너무나 당황하고 의외라고

생각한 이교도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단을 버렸다.
(P.스카르가 신부님이 쓴 "성체현존" 중에서) 
(
http://예수.kr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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