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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만찬 성 목요일 제1독서 (탈출12,1-8.11-14)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18 조회수1,229 추천수0 반대(0) 신고

 

 주님 만찬 성 목요일 제1독서 (탈출12,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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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 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2)

 

'이 달'에 해달하는 '하오데쉬 핫제'(hahodesh haze; This month is to be)의 시기는 당시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사용하던 민간력의 7월이며,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태양력의 3,4월에 해당한다.

하느님께서는 명령하시기를 이 달을 해의 첫째 달, 즉 종교력에서 1월인 '아빕달'(아빕월; 탈출13,4; 23,15)로 삼으라고 하셨다. '아빕달'(탈출34,18; 신명16,1)이란 명칭은 바빌론 포로시기부터는 '니산달'(니산월; 느헤2,1; 에스텔3,7)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워졌다.

 

어쨌든 출애굽이후 이 새로운 월력체계를 도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기원전(B.C; Before Christ)과 기원후(A.D.; Anno Domini)로 나뉘어지듯이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새로운 구원 역사의 분기점이 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을 나서는 것은 단순히 거주지를 옮기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새로운 출발점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짐승은 일년된 흠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5)

 

탈출기 12장 3절에  '작은 가축'으로 번역된 '세'(seh; a lamb)'어린 양'을 말한다. '세'(seh)는 다 자란 양이나 염소와 구별되는 새끼를 가리킨다. 이것은 파스카 만찬용으로 새용된 흠없는 일 년생 수컷이다.

 

한편 이 어린 양은 이사야가 메시야를 묘사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이사53,7)이나 예레미야가 묘사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 양'(예레11,19)의 의미와 연결된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하느님의 어린 양'(요한1,29)이라고 한 것이나 요한 묵시록에서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 양'(묵시5,6.8.12.13; 16,1.16; 17,9.10.14; 13,8)으로 묘사되는 것도 파스카 어린 양의 규정 관련된다.

 

우리는 이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대속의 죽음을 통해 즉 그의 흘린 피와 찢긴 살을 먹고 마심으로써 죽음에서 생명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의 노예생활로 상징되는 이 세상 이집트로부터 탈출하여 영적인 가나안인 천국을 향해 갈 수 있게 되었다.

 

'흠없는'

 

파스카절(유월절,해방절,과월절)에 쓰여질 '어린 양'(세; seh)의 첫번째 요건은 흠이 없어야 한다.

여기서 '흠없는'으로 번역된 '타밈'(thamim)'완성하다', '끝내다'란 뜻을 갖는 동사 '타맘'(thamam)에서 유래되어 '완전한', '완성된'이라는 뜻이다.

영어 성경에서는 'without blemish', 혹은 'without defects'로 번역했지만, 보다 적극적인 뜻은 단순히 흠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온전하고 완벽한 상태'를 말한다.

 

특히 '행복하여라, 그 길이 온전한 이들'(시편119,1),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 흠이 없어야 한다'(신명18,13), '나 그분께 결백하게 지내왔고 죄에 떨어질까 조심하였네'(시편18,24; 2사무20,24), 그외에 판관기 9장 16절과 19절에서 '고결한', '순수한', '진실한' 의 의미로 쓰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특히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실 때, 그에게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없는 자가 되어라" 고 하시며 '완전할'('타밈'; thamim) 것을 요구하셨는데, 그 의미 역시 하느님 대전에 올바르며 하느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라는 의미이다(창세17,1).

그리하여 이 단어는 파스카 어린 양이 예표하는 그리스도가 갖는 완전성과 하느님께 대한 순종 그리고 그의 고결하고 온전한 성품들을 예표해 준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받은 우리 신앙인들이 추구해야 할 삶도 하느님을 향하여 올바르게 헌신하는 삶이어야 함을 가르쳐준다.

 

'일 년된 수컷으로'

 

'수컷으로'로 번역된 '자카르'(zakar)짐승의 '수컷'와 인간의 '사내아이'를  모두 가리키지만, 제사 의식에 있어서는 짐승의 수컷만을 의미한다. 

그리고 굳이 일 년된 양을 선택한 이유는 한 가족이 먹기에 가장 알맞기 때문이다(탈출12,3).

한편 수컷이 취해진 이유는 곧 이집트 땅 모든 수컷의 맏배와 맏아들이 죽게 되겠지만 이스라엘에 속한 짐승의 맏배나 사람의 맏아들(장자)이 죽음에서 구원받게 될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6)

 

'저녁 어스름'으로 번역된 '뺀 하아르빼임'(ben harbaim; in the evening)'해질 때'를 말한다. '어스름에'(때에)로 번역된 '뺀'(ben)'시간 간격'이나 '~사이의 공간'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낱말이다.

이 때가 언제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해가 질 무렵부터 해가 진 사이(오후3-6시)생각하는 견해해가 진 후부터 어두워질 때까지(오후6-7시)로 보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러나 '뺀 하아르빠임'은 직역하면, '두 저녁들 사이에'이며 히브리인들은 처음 저녁일몰이 시작하는 때로 보고 둘째 저녁어둠이 찾아들 때라고 생각한 것을 근거로 한다면, 이때는 아마도 황혼'일몰의 시작 때'와 '해가 완전히 진 때' 사이의 시간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오후 3시부터 6시 이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잡아라'  (6)

 

'잡아라'로 번역된 '샤하트'(shahat)는 '죽이다'는 뜻이다. 구약에서 84회 나오며 희생 제사 의식에서 자주 등장하므로 식사를 하기 위해 양을 잡는 것만이 아니라 희생 제사를 위해 양을 잡는다는 측면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 모든 사람들이 양을 잡고 그 양의 고기를 먹는 자리에 참여했지만, 실제로 칼을 들고 그 양을 도살하는 임무는 한 가정의 가장(家長)의 몫이었다.

 

그 이유는 당시까지 이스라엘에 율법이 주어지지 않아 사제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난 자는 누구든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될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탈출19,5; 1베드2,9; 묵시1,6; 5,10).

 

'그리고 그 피를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로 번역된 '웰라케후 민 핫담'(wellaqehu min hadam)에서, '~로부터'라는 뜻의 전치사 '민'(min)을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피'를 뜻하는 '담'(dam)에 전치사 '하'(ha)를 결합하여, 그 피가 어떤 피인지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그 피'는 탈출기 12장 5절의 '어린 양의 피' 여야 한다. 다른 피를 발라서는 아무런 효과도 없고, 이집트신들과 함께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로부터 집에 바를 피를 취하여 바른 자는 생명을 보장 받는다.

이처럼 하느님의 구원은 반드시 하느님께서 명하신 그대로 철저하게 이행될 때 이루어진다. 그것은 바로 파스카 어린 양이 대표하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성혈의 공로를 입는 것이다.

 

한편, '문좌우 설주'(셋테 함메주조트; shethe hammezuzoth; the two side posts)복수형으로 되어 있고, '상인방'(함마쉬코프; hammashqoph; the upper doorpost)단수형으로 되어 있다.

피를 바른 곳이 '양편 기둥들과 문윗기둥'(on the two side posts and the upper doorpost), 즉 각 집의 출입구에 있는 문을 지탱하는 좌우 기둥과 위에 가로로 댄 기둥임을 보여준다.

문을 둘러싼 네 개의 기둥 가운데 사람들이 밟을 수 있는 문지방을 제외한 세 개에 모두 피를 바른 것이다.

 

한편 당시 집의 출입구는 집 자체를 대표했기 때문에(탈출20,10; 신명5,14; 12,7) 이곳에 피를 바르는 행위는 곧 집 전체에 피를 바르는 상징적 행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행위는 이방 종교의 주술적인 행위가 아니고, 성경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나타나는 하느님의 계약가 관련된 것이다.

 

하느님께서 처음 받으신 아벨의 제사가 양 떼의 맏배들을 죽여서 드리는 어린 양의 피의 제사였고(창세4,4), 노아가 홍수 후에 드린 제사도 정결한 새들 가운데 죽여서 드리는 피의 제사였으며(창세8,20),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드린 제사도(창세15,9) 암송아지와 암염소와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를 죽여서 드린 피의 제사였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생명을 상징하는 피'를 흘리는 제사를 통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생명을 구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이다.

집의 출입구에 있는 기둥들에 피를 뿌리는 첫번째 파스카절에만 행해지는 이 의식도 대속적인 피를 통해서만  생명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구원사적 원리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8)

 

'불에 구워'에 해당하는 '첼리 에쉬'(tselli esh; roasted over the fire)는  '굽다'(1사무2,15)란 뜻을 가진 '찰라'(tsalla)의 명사형인 '찰리'(tsalli)의 연계형이다.

고기를 불에 굽는 이유는 물에 삶는 것보다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루밤 사이에 이집트를 떠나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기를 삶지 않고 구워야 하는 이 규정은 꼭 지켜야할 내용이다.

 

'누룩없는 빵'(무교병) 발효되지 않은 누룩없는 빵을 먹어야 하는 명령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는 일의 급박성을 느낄 수 있다. 고기를 삶고 있거나 빵을 발효시킬 시간적 여유가 없을 정도로 촉박하고 시급함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명령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어린 양을 잡아 삶고 있었거나 빵을 발효시키는 일로 시간을 지체하고 있었다면, 그 밤에 이집트에 임한 재앙으로 인해 서둘러 그들을 내보내려 했던 파라오의 마음이 변했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 역시 비록 노예이지만 안전과 생계가 보장돠는 이집트를 떠나 미지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야한다는 사실이 시간이 지체될수록 망설여졌을 것이다.

이처럼 구원의 문제는 하느님의 명령과 말씀을 듣는 순간에 즉각적인 결단과 순종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누룩없는 빵'(무교병)에 해당하는 '맛쵸트'(matsoth; unleavened bread ; bread made without yeast)는 '발효되지 않은 빵' 이다. 이러한 빵은 발효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줄임으로써 빨리 준비할 수 있는 양식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 데도 용이했다(창세19,3; 판관6,19-21; 1사무28,24). 따라서 '누룩없는 빵'을 먹으라는 것은 급히 서두르라는 의미가 있다.

이와 더불어 '누룩'이라고 하는 것은 '죄'를 상징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떤 제사에서는 누룩없는  빵만 드려져야 했다(탈출28,13; 레위2,11; 6,14-18).

따라서 지금 이집트를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굳이 누룩없는 빵을 먹으라고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과거 이집트에서 하느님을 모르고 살 때 그 곳의 풍속을 쫓아 살던 모든 죄들을 버리라는 의미가 있다.

 

한편, '누룩없는 빵'을 먹을 때에는 쓴나물도 곁들여 먹어야 했다. '쓴나물'에 해당하는 '메로림'(merorim; bitter herbs)'쓴 맛'(bitterness)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 '마로르'(maror)에서 왔고, 써서 도무지 먹을 수 없는 물로 유명한 '마라'(탈출15,23)의 샘과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되었다.

쓴 나물을 먹을 때에 느끼는 쓴 맛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이집트에서의 쓰라린 삶을 기억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룩없는 빵' 역시 신명기 16장 3절에서는 '고난의 빵'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누룩없는 빵' 과 '쓴 나물'을 함께 먹는 것은 이집트에서 우상을 섬기고 죄를 짓고 살던 과거의 삶을 쓰라린 삶이요, 고난의 삶으로 기억하게 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떠난 뒤에도 파스카절 절기를 지킬 때마다 '누룩없는 빵'을 쓴 나물과 함께 먹으면서 자신의 죄가 아직 남아 있는지를 점검하게 되고, 그 고난과 고통의 생활로부터 구원하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인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1)

 

먼저 이들은 허리띠로 옷을 단단히 묶어야 했다. 이것은 빨리 걸을 때에 발이 옷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2열왕4,29; 이사5,27). 집에서는 신을 신지 않았던 당시 관습과는 반대로 당장이라도 뛰쳐 나갈듯이 신발을 신은 채로 음식을 먹어야 했다. 또한 지팡이를 쥔 것으로 보아 장거리 여행을 위한 준비이다.

파스카절 음식을 먹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 신앙인들이 갖추어야 할 영적인 준비를 보여준다.

 

에페소서 6장 14~17절을 보면,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고 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한 먼 여행을 떠나기 위해 띠를 띠고 신을 신고 지팡이를 잡고 양의 고기를 먹은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도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군사로서의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삶이 요구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파스카'로 번역된 '페싸흐'(pesah; passover)는 '지나가다'(탈출12,13-27), '불행을 끼치지 않다', '보호하다', '지키다', '건져주다'(이사31,5)는 뜻을 가진 '파싸흐'(pasah)에서 유래하였다. 이 절기는 탈출기 12장 11절에 나타난대로 출애굽시에 제정되어 지켜졌다.


그리고 그 후에 광야에서도 지켜졌고(민수9장), 가나안 입성후에 지켜졌으며(여호5,10), 히즈키야의 개혁 때와(2역대30장), 요시야 왕 때에(2역대35장), 바빌론 유배후그리고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에도 지켜진 것으로 기록된 히브리인들의 대표적인 절기이다.

여기서 '주님을 위한' 절기로 묘사된 것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어 그들을 당신 백성으로 삼아 그들에게서 예배를 받으실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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