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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절 3 <부 활2>
작성자박미라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18 조회수1,096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순절 3 <부 활2>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주간 첫 날!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하고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날) 새벽 동이 틀 무렵(마태 28, 1)에 스스로 무덤을 막았던 돌을 치우고 나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오래 전에 당신께서 창조하셨던 세상을 다시 새롭게 재창조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새로운 빛”을 몰고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님의 부활로 인해

새로운 세상, 밝고 희망 찬

구원의 새 세상이 왔습니다.

 

그분은 “교만과 불순명” 때문에

이 세상에 들어온 "죽음"

“겸손과 순명”으로 기워 갚아

이 세상에 “새 생명”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부활하시므로 갈라졌던

”영원한 생명이 있는 하늘나라와

죄와 죽음이 있는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땅 가장 밑바닥인 무덤으로부터 지존하신 하느님께서 계시는 가장 높은 하늘 꼭대기에 이르는 모든 곳(“하느님의 오른편” 사도행전 7, 56 참조)에 걸쳐 계시며 당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를 당신의 아버지께로 이끌어 가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지니고 계신 그분께서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유한한 육신을 지니고 있는 우리가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을 수 있으며 어찌 영원한 생명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태초에 원조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 갈라진 하늘과 땅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님의 몸으로 인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비로소 태초로부터 세상 끝날 까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아름다운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보존한 모든 사람들”이 기뻐 뛰며 “아버지 집”으로 달려갈 수 있게 되었으며, 더럽혀진 모든 사람들도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십자가에서 흘린 그분의 피로 인해 깨끗하여져서 그분의 몸을 타고 아버지 집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 19~23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태초에 하느님께서 사람을

진흙으로 빚으신 후 ‘숨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게 하신 것처럼

당신의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새로운 사람"으로 완전히 바꾸어주셨습니다.

 

그분의 숨, 부활하신 주님의 성령을 받은 그들 이제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하느님 특유의 권한)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그분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부활하신 당신의 생명을 받아 ‘참된 평화와 기쁨’ 누리게 되기를 원하시기에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르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므로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욕심과 애착심에서 벗어나 겸손되이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한다는 것’ ‘영원히 죽음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어두움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 공포, 근심, 걱정, 모든 슬픔에서 완전히 벗어나 '밝은 빛 속에서 한없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쁨 중에 누리는 평화이기에 그것은 아무도 빼앗을 수도 건드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싸움이 없고, 시끄럽지 않고, 주어진 상태 안에서 가만히 있는 상태를 평화스러운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평화를 주러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왔으며 가까이 있는 사람끼리 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으며, 다른 사람도 아닌 ‘집안 식구가 바로 자신의 원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가장 가까운 사람끼리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그분께서는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안정을 취하며 머물러야 할 곳 죽음의 관문을 넘어서 떠내려 온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흙을 취하여 나를 만드신 깨끗한 땅!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려고 마련하신 ‘태초의 세상 낙원’이기 때문에 나는 그 땅에서만 안정을 취할 수 있으며 참다운 평화 맛볼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떠나 있던 그 땅에 도달하려면 지금까지 ‘나의 집’이라고 여기고 있던 곳을 떠나야만 합니다. 떠나려면 먼저 나와 가장 밀착되어 있는 ‘집안 식구’로부터 떠나야만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의 형제들, 내가 애착을 느끼고 있는 모든 일과 사물과 사람들에게서 떠나 이렇듯 십자가의 길 그 끝에서 부활하신 당신처럼 우리도 부활한 후에 당신께서 주시는 “참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해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루카 12,51-53)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버림과 따름 (루카 14,25-2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테오, 10, 34-39

 

 

♡. 오늘은 주님께서

성체성사와 신품성사를 제정하신

주님 만찬 성목요일입니다.

 

사제들은 매일 미사성제 안에서 빵을 들고,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라고 말하고,

 

포도주 잔을 들고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리는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라고 말하며, “빵과 포도주”

“주님의 살과 피로 성변화”시킵니다.

 

매일 매일 이렇듯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사제"들이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온전히 걸어

이 세상 모든 것에서 죽고 난 후에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입술로만 아니라, 진정 온 몸으로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피다.“

라고 말 할 수 있게 되기를

온 몸과 온 마음으로

간절히 빕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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