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4.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21 조회수2,062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4월 21일

주님 부활 대축일

제1독서 사도 10,34ㄱ.37ㄴ-43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여러분은 37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39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제2독서 콜로 3,1-4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복음 요한 20,1-9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야경이 멋진 곳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네온사인이 멋지게 펼쳐진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었지요.

멋진 장면에 감탄을 하면서 있는데,

그 자리에는 저 말고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야경을 즐기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몇몇은 이 멋진

장면을 사진에 담으면서 기록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홀로이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손을 마주잡으며

체온을 나누고 있는 연인도 있었습니다.

멋진 야경을 등지고 의자에 앉아서

옆의 사람과 이야기 하시는 분도 있었지요.

이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이 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는 괴롭고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겠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이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면서

웃을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바쁘고 힘든

땀 흘리는 시간이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여유롭고

한가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똑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우리입니다.

 즉, 내 마음이 내 삶을

기록해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지듯이 죽음과 악의

세력을 이겨내신 것으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며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부활을

큰 기쁨으로 맞이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면에 어떤 분들은 그저 그런 날로

평상시와 별 다를 바가

없는 날로 맞이합니다.

가톨릭 신앙의 핵심이라고 하는

이 부활은 분명히 기쁨과 희망의 날인데,

왜 사람들마다 다른 날로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요? 바로 내 마음에 따라

그리고 내가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자체를 바라보고 있다면

기쁨과 희망을 간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지 않고

 내 마음 안에 괴롭고 힘든 일만

남겨놓는다면, 또한 세상의

것들만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한 기쁨을

바라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무덤에 찾아가지요. 예수님만을

바라보려 했기에 예수님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때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요?
죽음을 이기신 분이시기에 우리 역시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다면

또한 내 마음 안에 주님으로 가득 찰 때,

 우리들 역시 부활을 목격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

그 마음들이 모이면 어떤 것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어요.

(오진희)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참 잘했어요.

초등학교 때 일기를 매일

담임 선생님께 제출해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다음날 이 일기를

되돌려주는데 일기 맨 뒤에는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 일기의 내용은

잘못을 해서 어머니에게

혼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쓸까말까를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릅니다.

선생님께서 제 일기장을

보시니 저의 잘못을 알게 되고

그래서 선생님께도 혼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지요.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머니께

혼난 내용의 일기를 썼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서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혼내지 않았고,

또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끄러운 내용이었지만 이번에도

맨 뒤에는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이 찍혀 있을 분이었습니다.

혼난 것이 잘했다는 것인지,

부끄러운 내용을 용기 있게 썼기에

 잘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더군요.

하지만 이 역시도 잘했다고

선생님께서 도장을 찍어주시니

다음에도 부끄러운 내용을

 일기에 써서 제출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잘했든

못했든 용기 있게 당신 앞에만

나온다면, ‘괜찮다’라고

하시는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에 더욱 더

 큰 기쁨을 얻습니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람들,

또한 당신을 배반했던 사람들을 향해

당신의 부활을 통해 ‘괜찮다’라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갑곶성지의 부활 제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