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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4.2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27 조회수1,966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4월 27일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제1독서 사도 4,13-21

그 무렵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13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14 그러나 병이 나은 사람이

사도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였다.
15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최고

의회에서 나가라고 명령한 다음,

희끼리 의논하며

16 말하였다.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들을 통하여 명백한 표징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알려진 터이고,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17 그러니 이 일이 더 이상 백성

가운데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다시는 아무에게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만 합시다.”
18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하였다.

19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20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그들은 백성 때문에 그들을

처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거듭 위협만 하고 풀어 주었다.

그 일로 백성이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음 마르 16,9-15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전이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운전을 하면 피곤함을 많이

느끼게 되었고 더불어 때로는

이상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면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는 제 자신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운전이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어떤 분의 차를

얻어 탄 적이 있습니다.

운전을 힘든 일로 생각하는

저와는 달리 운전이 매우

즐겁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카레이서처럼

속도를 즐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천천히 안전

운전을 하면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너무나

재미있다고 하십니다.
이 분의 말씀이 계속해서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그러면서 제가 운전을 힘들게

각했던 이유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운전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빨리 가는 것이 중요했고,

그 과정 안에서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차가 싫었고 속도를 내지 않고 천천히

가는 차가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또한 출퇴근 시간의 교통체증에도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 뒤에 목적지가 아닌

과정을 즐기려고 노력했습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 자체를

바라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유가 생깁니다.

급하게 끼어드는 차를 향해서는

‘저 차는 무슨 일이

 있어서 저렇게 급할까?

화살기도라도 해야겠다.’라는

마음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운전이 힘들지 않고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과정이 모여서 결과를 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결과만을 바라보면서

 바쁘고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피곤하고

힘든 삶을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들 안에서 만나는

사람을 바라보고 그를 위해

기도해줘야 합니다.

삶이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인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을 믿지 않았으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체험한 예수님 부활 소식도

믿지 않았습니다. 살아 계실 때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미리 예고하신

예수님의 말씀까지 들었던

제자들이 왜 믿지 못했을까요?

바로 죽음이라는 결과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 죽음에만 머물러 있으니 불신과

완고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으며,

 다락방에 숨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결과에만 갇혀 있는

제자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라고 말씀하시지요. 이제까지의

모든 과정을 바라봤던 것을

기억하면서 부활의 삶,

기쁨을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면서 신나게 따랐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결과에만 갇혀서 어렵고

힘든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과정 안에서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나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피천득)

(제자들에게 선교사명을 명령하시는 예수님)


희망의 근거

베트남 전쟁 때에 포로가

미군들 중에서 누가 살아남았을까요?

긍정적이며 낙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았을 것 같지만,

이러한 사람들이 오히려 먼저 포로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크리스마스 전에는 풀려나서

고향에 갈 것이라고 확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포로생활이 길어지면서

크리스마스를 넘기게 된 것이었지요.

그 후 희망을 잃고 대신 절망에 빠져

 그 생활을 견디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근거 없는 낙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고, 현실 도피적인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막연한 희망이나 대안 없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안에서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 준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내 희망의 근거입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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