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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체/성체성사(13. 신령성체(神領聖體))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28 조회수1,884 추천수0 반대(0) 신고

 


13. 신령성체(神領聖體)

[내 안에 오신 예수님- 신령성체(神領聖體)]

신령성체는 성체의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항상 가까이할 수

있는 성체적 생명과

사랑의 저수지이다.

신령성체를 통하여,

우리 영혼의 배우자이신 예수님과

일치하고저 하는 사랑의 원의가

채워질 수 있다.

신령성체는 우리 영혼과

성체의 예수님 사이의 사랑의 결합이다.

이 결합은 영적인 것이지만,

실제적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이 결합되어 있는 것보다

더 실제적인 결합이다.

왜냐 하면,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했듯이

"영혼은 그 영혼이 사랑할 때에

비로소 참으로 생활하게 되기 때문이다.“

신앙, 사랑, 갈망

신령성체를 한다는 것은 감실 안에

예수님께서 실제로 현존하심을

우리가 믿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성사적인

영성체를 원한다는 것을 전제하며

이 성사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이 모든 것이 성 알퐁소의 기도문 안에

단순하고도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다.

"나의 예수님, 저는 당신께서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심을 믿습니다.

저는 당신을 모든 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을 제 영혼 안에

모시기를 갈망합니다.

지금 제가 당신을 성사 적으로

모실 수가 없으므로,

최소한 제 마음에 영적으로

오시기를 청합니다. (잠시 멈춘 후)

저는 이미 제 마음 안에 계시는

당신을 포옹하며 저의 전부를

당신과 일치하나이다.

절대로, 절대로 제가 당신께로부터

분리되지 않게 하여 주소서. 아멘."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알퐁소 드 리구오리가 가르쳤듯이

신령성체는 우리의 의향의 깊이에 따라서

성사적인 영성체와 비슷한

효과를 가져온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기를

열절히 원할수록, 예수님을 사랑으로

모셔들일수록 그러하다.

신령성체의 특별한 장점은

우리가 원할 때마다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에 몇 백번이라도 할 수 있고,

늦은 밤에도, 사막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할 수 있다.

특히 우리가 미사에 참례하고 있지만

주님을 성사적으로 모실 수 없을 때

신령성체를 하는 것이 적당하다.

미사드리는 사제가 성체를 모실 때,

우리도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심으로써

사제의 영성체에 참여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참례하는

모든 미사가 완전한 것이 될 수 있다.

두 개의 성작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에게

예수님께서 환시 중에

신령성체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직접 말씀하여 주셨다.

성녀는 신령성체가 성사적 영성체에

비하여 가치가 많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환시 속에서 주님께서는

두 개의 성작을 들고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금으로 된 성작 안에

나는 너의 성사적 영성체들을 넣는다.

그리고 이 은으로 된 성작 안에는

너의 신령성체를 넣는다.

두 성작들이

다 나에게 큰 기쁨을 준다."

또 예수님께서는 감실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로 자신의 불타는 사랑을

열절히 향하고 있던

성녀 마가렛 마리아 알라꼭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받으려고 하는 영혼의 갈망이

나에게는 너무나 귀중하기 때문에

나는 영혼이 나를 갈망할 때마다

바삐 그에게로 달려간다."

성인들이 신령성체를 얼마나

중요시했던가 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신령성체를 통하여 사랑하는 주님과

일치하려고 했던 그들의 열렬한 원의가

최소한 부분적으로 만족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 안에

머물듯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라

(요한 15,4)고 하셨다.

신령성체는 비록 성당으로부터

멀리 있을 때에도 우리가 예수님과

결합되어 있게 도와준다.

성인들의 마음을 불태우는 갈망을

채워주기 위해서 다른 방법은 없었다.

"오 하느님, 나의 온 영혼이

당신을 애타게 바라나이다.

사슴이 개울물을 원하듯이,

저의 영혼이 하느님을 갈망하나이다"

(시편 41,2).

제노아의 성녀 카타리나는

사랑에 찬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외쳤다.

"오 사랑하는 내 영혼의 배우자여!

저는 당신과 함께 있는 기쁨을

너무나 갈망하기 때문에

만약 제가 죽었다라고 하더라도

영성체로서 당신을 모시기 위하여

다시 소생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십자가의 복녀 아가타도

성체의 예수님과 항상 결합되어

있기를 너무나 갈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고해 신부님께서

저에게 신령성체하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면,

제가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오상(五傷)

성녀 마리아 프란체스에게도

집에 갇혀있으면서 특히

성사적인 영성체가

허락되지 않았을 때에 느꼈던

심한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은 역시 신령성체였다.

그럴 때에는 성녀는

자기 집의 테라스에 나가서

성당 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 성체 성사 안에 계시는

당신을 모시는 이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항상 가장 사랑스러우신

예수님 곁에 계시는 신부님들은

복되신 분들입니다."

오직 신령성체만이

성녀에게 위로가 되었다.

낮 동안에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는

자기가 지도하는

영적인 딸들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해주었다.

"하루를 지내면서 성사적 영성체를

할 수 없을 때에는,

영혼의 한숨을 쉬면서,

예수님을 부르도록 하여라.

그러면, 그분께서는 매번 오셔서

당신의 은총과 사랑으로써

너희의 영혼과 결합하여

주실 것이다.

감실 앞에 신체적으로

갈 수 없을 때에는

너의 영혼으로 날아가도록 하여라.

그리고 거기에서

너희 영혼의 갈망을 쏟아내고

영혼의 애인이신 분을 포옹하여라.

성사적으로 그분을 모실 수 있을 때

보다도 더욱 그렇게 하여라."

우리들도 이 훌륭한 선물을

잘 쓰도록 하자.

예를 들어, 우리가 시련을 받고

버림받은 것처럼 느낄 때

신령성체를 통하여 성체의

주님과 결합되는 것보다 더 우리에게

가치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 거룩한 습관

은 우리의 하루 하루를 사랑의 행위와

감정으로 채워줄 것이다.

성 프란시스 드 살레즈의

경우는 어떠했는가?

그분의 전 생애가 신령성체의

연속이 아니었던가?

성인은 최소한 매 15분마다

한 번씩 신령성체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성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역시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하였다.

하느님의 종, 안드레아 벨트라미의

일기를 보면 성체 성사의 예수님을

신령성체로 끊임없이 모시는

생활을 하기로 정하고 실천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어디에 있든지

저는 성체 성사의

예수님을 자주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생각을 거룩한

감실에 고정시킵니다. 아멘.

( http://예수.kr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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