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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5.0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02 조회수2,000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5월 3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사도 5,27-33

그 무렵 경비병들이

27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33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복음 요한 3,31-36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자신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또한 큰 상처를 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생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은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한 때 가장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또 가장 친하다고,

또 가장 많은 말을

 주고받았던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좀처럼 치유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에

큰 공감을 하게 됩니다 .
“마음의 상처는 서로 함께

한 시간의 길이에 비례한다.”
그런데 진실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니컬러스 에플리라는 심리학자가

 6년 이상 함께 한 부부를 대상으로

배우자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를 테스트했습니다.

즉, 배우자에 대한 질문 10개를

던져서 몇 개나 맞추는지를

본 것입니다.

몇 개나 맞췄을까요?

아마 8개 이상은 맞추지

 않을까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4개에 불과했습니다.

한 지붕 밑에 살고 있는

배우자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생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와의 간격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간격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내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랑으로 가능합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

바로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철저히 우리에게 맞춰져 있었던 사랑,

이 사랑이 배신당해서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까지 이어졌지만

사랑을 놓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뒤에 복수의

칼을 들고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평화를 들고서 나타나셨습니다.

죽음이라는 멸망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가져 오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은 바로

사랑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랑으로

주님의 길을 함께

가자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 초대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따뜻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받는 사랑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는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주님의 뜻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인생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빅토르 위고)

(성모성월입니다)


들어준다는 것.

얼마 전에 어떤 분과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40분 정도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는데,

저는 단 한 번도 어떤 답이나

 지침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분께서 방향을

 잃지 않고 말씀을 하실 수 있도록

주로 듣고 약간의

코칭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상담을 마치면서

이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신부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문제가 해결된 것 같아요.”
제가 말한 것도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사람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담이나 코칭을 할 때,

가장 큰 주의사항은 답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세상 안에서 생기는 많은 갈등과

다툼은 잘 들어주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잘 들어주는 데에서

사랑도 찾을 수 있습니다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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