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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봉모 신부님 /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07 조회수1,953 추천수2 반대(0) 신고

송봉모 신부님 /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  

 

사도시대의 삶과 영성 

송봉모 토마스 모어 신부 ㅣ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 


  지난달에 우리가 본 내용은 헤로데 아그리파스 임금에 의해서 야고보 사도가 죽임을 당하고 베드로 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된 내용이었다. 그 다음 내용으로써 안티오키아 교회를 보도록 하자. 


  안티오키아 교회는 유다 땅 팔레스타인이 아닌 이방인 지역에 세워진 교회다. 이방인 지역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안티오키아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보았듯이 다마스쿠스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안티오키아 교회가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이 교회 안에 이방인 출신의 신자들이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안티오키아 교회는 유다인들과 이방인들로 혼성된 최초의 교회였다. 


  먼저 안티오키아란 도시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 도시는 로마 제국의 행정구역에서 시리아에 속해 있었다. (오늘날에는 터키에 속해 있다.) 당시 안티오키아는 로마 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다. 첫 번째 도시는 로마, 두 번째가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세 번째가 안티오키아였다. 안티오키아는 당시 로마 제국의 동부지역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였다. 


  바오로 당시 안티오키아는 통상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불렸다. 그 이유는 로마 제국 전역에 안티오키아란 이름을 갖고 있는 도시들이 여럿 있었기에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안티오키아는 지리적으로 동방과 서방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헬라 문명과 동양 문명이 날카롭게 맞부딪치는 곳이었다. 또 안티오키아 시민들은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곧 그리스인, 시리아인, 유다인, 아랍인, 페니키아인, 페르시아인, 이집트인, 인도인, 로마인들 등 여러 종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이 점은 안티오키아 교회 핵심 봉사자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사도 13,1) 


  바르나바는 앞서 공부하였듯이 키프로스섬 출신의 레위였다. 니게르 시메온 그리고 루키오스는 키레네 출신으로서 (오늘날 아프리카의 리비아) 흑인들이다. 마나엔은 헤로데 왕실과 인연이 깊은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바오로는 타르수스 출신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체험하면서 성장한 이들인데 지금은 안티오키아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바오로 당시 안티오키아의 인구는 대략 50만에서 60만이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대략 3만 명 정도 살고 있었다. 아래 본문은 안티오키아 교회의 기원을 알려주는 본문이다. 


스테파노로 인해 일어난 재난 때문에 흩어진 이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두루 돌아다니면서 오직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그들 가운데에는 키프로스 사람과 키레네 사람 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티오키아로 가서 대담하게도 헬라인들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에 대한 복음을 전하였다. (사도 11,19-20) 


  위의 본문에 나오는 '흩어진 이들'은 스테파노 순교와 관련해서 발생한 박해를 피해 흩어진 이들이다. 이들은 박해를 피해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여기저기를 전전하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오늘날 시리아에 위치한 안티오키아까지 오게 되었다. 처음 안티오키아에 도착해서는 유다인들을 상대로 그리스도교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던 중 몇몇 사람이 대담하게도 비유다인인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였다. 이때가 시기적으로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와 그의 식솔들을 교회 안에 받아들인 직후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베드로 사도를 통해 이방인들에게 교회 문을 열어주신 다음 곧장 이방인들의 땅인 안티오키아에 이방인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앞서 '대담하게도'란 표현을 썼다. 예루살렘을 떠난 헬라계 유다인 몇몇 사람들이 대담하게도 비유다인인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말하였다. 이 표현 안에는 그들이 가졌던 비전과 이방인 선교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에 대한 칭송을 다 포함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복음을 전하여 신자로 만든 헬라인들이 첫 이방인 신자들은 아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했던 로마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와 그의 일가친적들이 첫 이방인 신자들이다. 하지만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동기와 이들 헬라계 유다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동기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달랐다. 


베드로의 경우, 그가 먼저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코르넬리우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던 것은 아니다. 환시를 통해 주님의 지시를 받고서 이뤄진 것이다. 한편 이들 헬라계 유다인들은 자기들 편에서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래서 '대담하게도'란 표현을 쓴 것이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이들은 무명의 선교사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 평신도들이었다. 교회 역사 그리고 선교 역사를 보명 언제든 이들 선교사들과 같은 무명씨들의 수고에 의해서 그 역사가 이루어졌다. 우리 각자도 많은 경우 무명씨 봉사자 중의 하나로서 부르심을 받았다. ●


출처 : 예수회 후원회 / 이냐시오의 벗들 2019년 05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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