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5월 10일(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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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5-10 | 조회수1,23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5월 10일 금요일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말씀의초대 사울은 다마스쿠스에 이르러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하나니아스에게 안수를 받은 뒤,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얻지 못한다고 하신다. ◎제1독서◎ <그는 민족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6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누가 일러 줄 것이다.”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멍하게 서 있었다.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보지 못하였는데, 마시지도 않았다.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라는 거리로 가서,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 12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길을 나섰다.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화답송◎ 시편 117(116),1.2ㄱㄴ (◎ 마르 16,15 참조) 복음을 선포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모든 겨레들아.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굳건하여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복음환호송◎ 요한 6,56 참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리라. ◎복음◎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복음입니다. 6,52-59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있단 말인가?” 하며, 말다툼이 벌어졌다.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다시 살릴 것이다.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내려온 빵이다. 죽은 것과는 달리, 영원히 살 것이다.”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오늘의묵상◎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양식은 부모의 살과 피입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주는 양식을 먹으며 부모가 그 양식을 준비하려고 한 고생도 함께 먹습니다. 그렇게 자란 자녀는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지닙니다. 부모에게 감사하니 최대한 부모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말을 잘 따르고 부모가 바라는 대로 성장하려고 노력합니다.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손에 놓인 성체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살과 피를 봅니다. 신앙인도 성체성사를 통하여 생기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납니다.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라며 말다툼을 벌이고, 마침내 많은 이가 예수님을 떠나갑니다(요한 6,66 참조). 그들이 떠나는 것은 믿기 싫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믿을 수 없어서입니다. 진정으로 믿지 못하면 상대방이 주는 어떤 사랑과 관심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과 관심을 받아들인다면 미움과 원망이 사라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납니다. 감사는 사람을 새로 태어나게 만듭니다. 온전해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은 믿지 못해도 사랑은 믿어야 합니다. 자신은 사랑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음식을 안 먹고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자녀가 부모가 주는 양식 없이 살 수 없듯이,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성사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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