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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5.1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11 조회수1,61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5월 11일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 9,31-42

그 무렵 31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

35 리따와 사론의 모든 주민이

그를 보고 주님께 돌아섰다.
36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

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37 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8 리따는 야포에서 가까운 곳이므로,

제자들은 베드로가 리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람 둘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저희에게 건너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옥상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자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에게 다가가 울면서,

도르카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 주었다.

 42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복음 요한 6,60ㄴ-69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어느 아들이 어머니에게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합니다.

어머니는 왜 가기 싫으냐고 물었고,

아들은 학교 가기 싫은 이유가

세 가지 있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학교가 너무 재미없어요.

둘째, 아이들이 나를 괴롭혀요.

셋째, 학교가 너무 싫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에게

“네가 학교 가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 말해보마.”라면서

말씀하십니다.
“첫째, 학교 가는 것은 너의 의무이다.

둘째, 아이들이 너를 괴롭히는 것은

아이이니까 당연하다.

셋째, 너는 학교 교장이다.”
아들은 학교에 가야할까요?

가지 말아야 할까요?

당연히 가야합니다.

 왜냐하면 학교 교장

선생님이기 때문이지요.

아마 어른인 아들은

어머니가 가지 말라고 해도

학교에 갔을 것입니다.

자신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고, 또한 아이들이

 교장인 자신에게 괴로운

문제들을 주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한 교장이라는 직책에서 오는

책임감 때문에 학교에 갈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가기 싫다고 말합니다.

어머니에게 위로를 받고

싶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사실 어른이라고 해서

위로받고 싶지 않을까요?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자기 안에 아이가 늘 있습니다.

 위로 받고 토닥거림을

받고 싶어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점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아직 육체적으로 성장이

 완성되지 않은 아이만을 아끼고

 보살펴 주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올바르게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을 보살펴주실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당신 자신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단 한 명도

예외 없는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즉, 모두와 함께 하시는 주님,

모두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이 주님의 뜻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또한 자기 뜻대로 해주시지

않는다면서 거부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라고 말하지요. 제자라고 하면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과

함께 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조차 주님을 거부하면서

떠날 이유를 만들고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시고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대답을 기억하고

우리의 말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을 떠날 이유를 찾지 말고,

주님과 함께 할 이유를 찾아보십시오.

 그 안에서 큰 위로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당신이 한 행동은 잊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가는 잊지 않는다.

(마아 안젤루)

(베드로의 고백)


끊임없는 노력.

축구 경기를 종종 봅니다.

특히 해외 유럽리그 축구를 자주 보는데,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의 멋진

경기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격수로 유명한 선수들,

 우리나라의 손흥민 선수를 비롯해서 메시,

 호나우드 들을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슛을 날려서 멋진 골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온 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합니다.

슛을 해야 할 순간에 머뭇거리면서

기회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훌륭한 선수들은 슛을

언제 때려야겠다고 판단할까요?

‘저 공을 받으면 2~3번 드리블을

 한 다음을 슛을 해야지.’

라고 생각할까요? 아닙니다.

몸이 저절로 슛을 쏴야 할

타이밍을 맞춥니다. 생각하는 순간에

기회는 이미 지나가버리고 맙니다.
이러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재능도 필요하겠지만

 끊임없는 노력이 필수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어떠한 노력도 없이

생각만으로 가능할까요?

저절로 몸이 주님의 뜻에 따라갈 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얼마나 노력하셨을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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