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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4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12 조회수2,012 추천수8 반대(0)

 

오늘은 성소주일입니다. 성소주일에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아는 자매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데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사제로 사는지 30년이 되어 가는데 어떻게 지낼 만한지요?” 저는 그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 지낼 만한 것인지, 아니면 마지못해서 지내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제 생활이 재미있으면 하고 재미없으면 시장에서 물건 바꾸듯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자매님은 제게 이런 이야길 하시더군요. 둘째 애가 성당에서 복사를 하는데 사제가 되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하였다고 합니다.

 

남미 여행을 하면서 가장 고마운 분은 30일 동안 편안하게 이끌어 주었던 팀장입니다. 팀장은 여행이 좋아서 여행을 직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것이 보람이 있고, 일한만큼 보수를 받는다면 현명한 선택입니다. 늘 활기차고, 꼼꼼하게 챙겨주었던 팀장이 있었기에 아무런 사고 없는, 편안한 여정이 될 수 있었습니다.

 

팀장에게서 몇 가지 배울 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자신감입니다. 비행기가 지연되고 결항 되었지만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주었기에 우리는 팀장의 결정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웃은 모습으로 우리를 대해 주었기에 팀장을 더욱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큰 부담이 되는 결정은 본사와 상의를 하였지만 그것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제도 언제나 자신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제가 걱정하고, 근심하고, 불안해하면 공동체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야 할 때 사제는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제는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처럼 외로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굳은 믿음이 있다면 사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둘째는 성실함입니다. 팀장은 항상 제일 먼저 일어나서 우리를 맞이하였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습니다. 항공 티켓의 이름과 수화물 짐표를 하나하나 챙겨주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앞자리로 옮겨주었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세심하게 살펴주었습니다. 팀장이 알려주는 기념품 가게는 물건이 좋았고, 팀장이 알려주는 식당은 맛있었습니다. 섬세하게 우리를 챙겨주었던 팀장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제도 무엇보다 성실해야 합니다. 미사 전에 고백성사를 정성껏 주어야 합니다. 교우들이 고백성사를 통해서 하느님과 화해하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시대의 징표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본인이 선포한 하느님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셋째는 함께함입니다. 현명한 스승은 배고픈 제자에게 물고기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배고플 때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팀장은 숙소, 항공권, 꼭 해야 할 일정을 제외하면 모든 것을 우리가 스스로 하도록 맡겨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길을 찾는 것도, 시간을 배분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차츰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각자의 방법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부활 주일에 성당을 찾아가서 미사에 참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좋아하는 분은 그곳을 선택하였고, 멋진 경치와 맛집을 좋아하는 분은 그곳을 선택하였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예전 주일학교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고, 모처럼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간을 스스로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혼자 하시지 않았고, 제자들에게 역할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부족하지만 복음을 선포하였고,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신앙의 신비를 선포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믿고 사명을 맡겼던 것처럼 신자들과 함께 사목해야 합니다. 혼자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멀리 갈 수 없습니다. 함께하면 조금은 느릴지라도 먼 길을 갈 수 있습니다.

 

30일 결코 짧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팀장의 도움도 있었지만 팀원들이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였기 때문입니다. 짐이 나오지 않는 팀원을 위해서 기꺼이 기다려 주었습니다. 불평과 불만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격려하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서로 가지고 있는 약을 나누어 주었고,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배가 목적지를 향해서 가기 위해서는 선장의 지도력도 있어야 하지만, 선원들이 같은 방향으로 노를 저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은 사제의 몫만은 아닙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에 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제게 진한 감동을 주었던 신자들이 생각납니다.

 

비가 몹시 내리는 여름날, 성당에 와서 창문을 닫고, 하수구를 치우고,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형제님이 생각납니다. 해님만 달님만 보신다면 깊은 산속 골짜구니에 피어도 좋다는 두메꽃의 시처럼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해주던 형제님입니다.

방앗간을 하던 형제님은 남모르게 어르신을 도와주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학자금을 도와주기도 하였습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였던 형제님의 선한 눈빛이 생각납니다.

도축장에서 일하던 형제님도 생각납니다. 화가 나서 큰 싸움을 하려는 순간에 싸우지 말라는 본당 신부의 말을 생각하였고, 잘못한 동료를 용서하였습니다. 형제님은 신사부일체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님과 스승님과 부모님은 동급이라고 후배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본당 신부가 피정을 가거나, 휴가를 가면 언제나 성당에 와서 수녀님을 도와드리고 사무실 일을 도와주었던 형제님도 생각납니다. 눈이 오면 마당을 쓸었고, 수녀님을 위해서 차량 봉사도 하였습니다. 있을 때 잘하는 것도 고맙지만 없을 때 잘하는 것은 더욱 고마운 일입니다.

집의 가장 중요한 곳에 성경책이 있었던 형제님도 생각납니다. 기도 초는 언제나 촛농이 가득했고, 성경책은 손때가 가득했습니다. 결코 남의 말을 옮기지 않았고, 상대방의 좋은 점을 이야기 하였던 형제님의 온화한 미소가 생각납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며, 나의 모든 것 주님께 돌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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