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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도11,1~1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13 조회수1,326 추천수0 반대(0) 신고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도11,1~18)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4~15)

  

사도행전 11장 1절부터 18절까지는, 할례받은 신자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코르넬리우스  가문과 함께 식사했다는 데 대한, 할례받은 신자들의 비판 베드로의 변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할례받은 신자들의 비판의 계기가 된 사도행전 10장의 내용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로마까지 복음이 증거되며 교회가 확장되는 역동적인 역사가 기록된 사도행전 안에서도,  이방인 선교의 하나의 큰 전환점을 이루는 이방인 코르넬리우스의 회심 사건과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에게 세례를 준 사건이다.

 

사실 이 사건은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선민이라고 생각하는 폐쇄적인 유대적인 전통을  깨뜨릴 뿐 아니라 이방안의 선교의 물꼬를 터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사도행전 저자는 사도행전 10장 전체를 코르넬리우스의 회심의 사건을  기록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사도행전 11장 전반부의 지면을 할애하면서까지  다시 한번 베드로의 변론을 통해 이 사건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서도 이방인의 선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됨으로써, 이방인의 선교의 길이 더 환하게 열렸음을 보여 주려는, 역사가인 동시에 그 자신이 선교사이기도 한 사도행전 저자의 의도적인 기술이다.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4)

 

본절은 병행 구절인 사도행전 10장 30~33절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것이 코르넬리우스가 베드로에게 전한 말이었음은 분명하다. 코르넬리우스가 천사로부터 받은 말을 베드로에게 그대로 전한 말인 것이다.

 

여기서 '너의 온 집안이'에 해당하는 ('파스 호 오이코스 수'; pas ho oikos su)'집의 거주자들', '한 집안 식구'라는 뜻이다. 

 구원의 범위가 코르넬리우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집에 살고 있는  가족 모두에게 미칠 것이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처럼, 베드로와 코르넬리우스를 만나게 하신 하느님의 목적은,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인인 코르넬리우스의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함으로써, 그 온 집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본절의 코르넬리우스의 이 진술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당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은, 이방인이라면 누구나 할례를 받은 후에야  구원에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방인 코르넬리우스는 유대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그러한 절차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따라서, 본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어떠한 차별도 없이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듣고 믿는 자라면, 누구나 다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15)

 

본문을 직역하면, '성령이 떨어졌다'(epepesen to pneuma to hagion; 에페페센 프뉴마 토 하기온; the Holy Spirit fell)이다.

 이것은 마치 어떤 무거운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거나 덮치는 모습연상하게 한다.

 

사도행전 10장 45절에서는 이것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표현했는데, 본문의 '에페페센'(epepesen)성령의 주도적 역사를 더 강하고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 베드로는 성령께서 임하신 시기를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라고  언급했는데, 사도행전 10장 44절을 보면, 성령께서는 베드로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  임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르게 언급하고 있을까? 

 성령께서는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사도10,34) 임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 강림의 결과는 신령한 언어(방언)와 하느님을 찬송하는 행위로 나타났는데, 이 표징은 베드로가 설교를 다 마치는 때에 맞추어 일어났을 것이다(사도10,46).

 

그러니까 본절인 사도행전 11장 15절은, 성령께서 베드로의 설교가 시작될 때부터  각 사람에게 임하여 그들의 심령과 영혼을 감동시켰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으며, 사도행전 10장 44절은 베드로의 설교 말미에 신령한 언어와 하느님을 찬송하는 행위로써 성령받은 사실이 외적 표징으로 나타났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가리킨다.

 

이것은 코르넬리우스의 가정에 성령이 임한 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말해서 성령께서 유대인들 중의 믿는 자들에게 부어진 것처럼, 이제 이방인들 중의 믿는 자들에게도 부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즉 예루살렘에 있었던 오순절 성령 강림이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다면, 카이사리아에서 있었던(사도10,1) 코르넬리우스 가정의 성령 강림은 이방인을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이란 표현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성령께서 동등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예루살렘의 믿는 자들에게 말함으로써,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행위가 전혀 비난받을 것이 아님을 힘있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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