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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5.1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13 조회수1,65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9년 5월 13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도 11,1-18

그 무렵 1 사도들과

유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복음 요한 11,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제가 살고 있는 ‘강화’에서

 참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봅니다.

그래서 주말에 교통체증이

얼마나 심한지 모릅니다.

길게 늘어선 차를 바라보시면서

‘강화’에 사시는 한 어르신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강화에 뭐 보 게 있다고 이렇게

많이 오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강화에 오신 분들은

그 누구도 볼 것 없다는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강도 있고,

또 많은 유적지들이 있어서

볼 것이 너무나 많답니다.

더군다나 지척에 있는 갈 수 없는

땅 북한 땅까지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 좋은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좋아하는 곳에

살면서도 감사해하지도 않고 기쁘게

 살지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도

 그냥 가지고만 있으면 그 물건의

소중함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그냥 산다는 것만으로는

좋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사는 것이 좋을 수 있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본인 스스로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알려고 하지 않고

 의미도 찾지 못한다면 지금의

자리가 가장 살기 싫은 곳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단순히 세례만 받는다고 해서

 주님이 좋아질까요? 주일미사만

참석하면서 주님 안에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스스로가

 주님 안에서의 즐거움과 기쁨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양들의 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 안이

가장 안전하고, 당신을 통해서만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묵상 등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이 주님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감사해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알려고 전혀

노력하지 않으면서 이 세상의

기준만을 따르고 있다면 주님의

말씀이 기쁘지도 않고 또 감사의

기도도 바칠 수가 없게 됩니다.
지금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늘 기쁨 속에서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통해서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더욱 더 할 수 있는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인간의 생명은

 모든 것을 초월한

가치이자 질서이다.

(피에르 세락 신부)

(주님께 나아가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대화의 시작인 기도

어느 책을 보다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왼발을 한 걸음 내딛는다.

다음으로 천천히 오른발을

한 걸음 내민다.

 이렇게 계속해서 그녀가 있는

장소에 아주 천천히 간다.”
이것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다음에 이런 설명이

달려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상하게 걷는

남자에게 여자는

 ‘왜 그렇게 이상하게 걷고 있어요?’

라고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의 시작이 이루어진다.”
주님과 가까워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대화의 시작부터 해야 합니다.

이 대화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주님과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늘 기도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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