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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5.1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16 조회수1,844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5월 16일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도 13,13-25

13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4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5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18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

재산으로 주셨는데,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1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22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복음 요한 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강론을 할 때 저는 원고를

보지 않고 외워서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모습을 보고서

“머리가 좋은가 봐요.”라고도

 말씀하시지만,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고 제가 직접 묵상하고

쓴 것이기 때문에 외워서

강론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주는

고해소에서 한두 번 읽고 나면

 막힘없이 강론을 할 수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날도 강론 원고를 들고서

미사 1시간 전에 고해소에 들어갔지만,

계속해서 고해소에 성사를 보러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결국 강론 원고를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요.

 제가 쓴 글을 다 기억하고

있다고 확신했으니까요.
미사가 시작되었고 강론을

하다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꼭 말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표시는 나지 않았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고, 강론 후에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자신 있는 부분,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부분 역시 반드시

점검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실수를 줄일 수 있으며,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이만하면 되었어.’

라는 안일한 마음을 가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마음으로는 어느 순간

더 이상 성장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종종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이 정도면 되었어.’

라는 마음을 품는 것 같습니다.

 ‘바쁜 요즘 시대에 그래도 주일미사

빠지지 않고 나가는 것이 어디야.’,

‘레지오 하면서 봉사활동을 꽤 하잖아.

이 정도면 되었어.’

등의 마음을 품습니다.

그러나 더 가까이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뒤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종이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하고 있으며,

파견된 사람이 파견한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아무데나

가버린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주인과 파견한

사람으로부터 큰 꾸중을

듣게 될 것이며 함께 할 수 없다면

내쳐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나 파견한 사람에게

충실한 사람은 큰 칭찬과

더불어 언제나 함께하기 때문에

복하다는 것이지요.
‘이 정도면 되었다.’라면서

신앙생활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할 때 주님께 행복한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해낼 때

생기는 감정이 자신감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줄 수 없다.

(랜디 포시)

(성모성월은 잘 보내고 계십니까?)


삶은 기쁨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2월은

날짜가 짧아서 고통도 짧다.”
이러한 말을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삶이 큰 아픔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약 반대로 삶이 큰 기쁨이라고

 생각했다면 짧은 2월에 서운해

하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2월은

날짜가 짧아서 기쁨도 짧다.”
어쩌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사실 우리의 삶은

 절대로 고통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기쁨의 선물입니다.

렇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걷는 길을 생각해보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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