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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14,1-24)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18 조회수2,34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9년5월18일(토)/주일복음말씀묵상/ †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14,1-24)

   

 

오늘 주일복음말씀 요한복음 14장 1절부터 6절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해 가심과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서 우리 믿는 이들을 아버지 안으로 이끌기 위해 오심을 본다. 이것은 예수께서 하늘로 가셨다가 재림의 때에 다시 오시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해 가시고 그리스도께서 믿는 이들을 아버지 안으로 이끌기 위해 부활 안에서 오시는 것을 언급한다.

 

 

이 중대한 문제가 본 장의 처음 여섯 구절에서 다뤄지고 있다. 주님은 죽음과 부활로써 곧 가시려고 한다. 그분은 자기가 곧 간다고 말씀하셨을 때 자기가 곧 죽고 부활한다는 것을 의미하셨다. 주님은 어디로 가시려는 것일까? 제자들은 이에 대하여 분명하지 못했다. 지난날 나는 이 부분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들이 필요했음을 고백한다.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곧 아버지께로 가시려 한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12절). 그분이 아버지께 가신다는 것은 그분이 하늘로 돌아가신다는 뜻인가? 그러나 주 예수님은 결코 하늘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다. 그분은 4절에서 매우 비밀스러운 말씀을 하셨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직후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이 그 길을 안다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과 자기들은 그 길을 모른다고 하는 토마스의 말에는 분명히 차이점이 있어 보인다(6절).

 

 

주님은 하늘로 가신다고 하지 않고 아버지께로 가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는가? 나아가 8절에서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라고 질문하였다. 10-11절에서 주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비밀은 하느님의 거처가 결코 장소의 문제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인격의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2절에서 “나의 아버지 집에”, 그리고 10절에서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계셨을 때는 그분 자신이 아버지의 집이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아버지께로 가시고, 부활을 통하여 성령으로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오심으로써, 우리 모두는 영으로 돌이킴으로 하느님과 연결되고 하느님을 접촉할 수 있다는 뜻이다!

 

1코린3,16-17절에서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1티모3,15절에서 또한 “내가 늦어지게 될 경우, 그대가 하느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 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라고 말한다.

 

 

하느님의 가족, 가정은 하느님의 집이다. 집과 가족은 동일한 것이며 믿는 이들로 구성된 모임이다(에페2,19; 히브3,6). 살아계신 하느님의 거처인 이 집의 실재는 우리의 영 안에 있다(에페2,22). 우리는 반드시 영 안에서 살고 행동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이 집 안에서 살아 계신 분으로 나타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오늘 본문의 말씀들이 분명해졌다. 하느님의 거처, 곧 아버지의 집이 우리 영 안에 있다는 사실은 또한 교회가 우리 영 안에 있음을 가리킨다. 교회 생활은 우리 영 안에 있으므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영 안으로 돌이키며 영에 머무는 훈련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영을 떠날 때 의혹과 성도들과 교회의 문제를 가지게 된다.

 

 

3절에서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아버지의 집은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있다. 부활한 성전, 곧 우리의 영 안에서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거한다. “내가 가서 … 다시 와서”는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주님께서 가시는 것이 곧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시는 것이었음을 증명한다.

 

 

주님은 육체를 입고 오셔서(요한1,14절) 제자들 가운데 계셨지만, 육체 안에 계시는 동안 그들 안으로 들어가실 수는 없으셨다. 주님은 요한14,17-20절에서 계시된 대로 육체에서 영으로 변형되심으로써 제자들 안으로 들어가시어 그들 안에 거하시기 위하여,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시는 또 하나의 단계를 거치셔야 했다.

 

 

요한20,19-22절은 “그날, 곧 그 주의 첫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자기들이 있던 곳의 문을 다 닫고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셔서 가운데 서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시니,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낸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그들 안으로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고 말한다.

 

 

그분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분 자신을 성령으로 제자들 안에 불어 넣으셨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주님의 의도는 그분의 거처를 건축하시기 위해 사람을 하느님 안으로 이끄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는 죄, 죄들, 죽음, 세상, 육체, 자아, 옛사람, 사탄 등과 같은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주님께서 사람을 하느님 안으로 이끄시기 위해서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셔야 했다. 그러므로 그분은 사람을 위해 길을 여기고 입지를 마련하시기 위해, 곧 사람이 하느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십자가로 가시어 구속을 성취하셔야만 했다. 하느님 안에 있는 이 입지가 확대된 후에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입지가 된다.

 

 

하느님 안에서의 입지, 곧 한 곳을 얻지 못한 사람은 하느님의 거처인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도 한 곳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가신 것은 제자들을 위하여 그분의 몸 안에 한 곳을 예비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한 거처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믿는 이들 안에 거하시고, 믿는 이들이 그분 안에 거하는 상호거처가 될 것이다.

 

 

14,20절은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말한다. “너희가 내 안에”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처럼 제자들을 자신 안으로 넣으셨다. 주님은 아버지 안에 계신다. 그분은 요한17,21절에 계시된 것처럼, 제자들도 아버지 안에 있기를 원하셨다.

 

 

주님께서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제자들을 자신 안으로 이끄셨다. 주님께서 아버지 안에 계시므로 그들이 주님 안에 있을 때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계시는 곳에 제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3절의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도록 하겠다.”내가 있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라 모두 주님 안과 하느님 안을 가리킨다.

 

 

그분은 하늘 위로 가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안으로 가신 것이다. 주님은 부활하시자 아버지 안으로 가신 것이다. 제자들도 또한 아버지 안으로 가게 하신 것이다. 그런 후 제자들에게 되돌아 오셔서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을 돌보신다. 오심의 표적은 그분께서 부활 안에서 성령으로 오심을 표징한다. 죽음이 없으면 우리 또한 부활을 얻을 수 없다.

 

 

10-11절에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고 말씀 하신다.

 

 

주님은 아버지 안에 계신다. 그분은 죽고 부활하심으로 제자들을 그분 자신 안으로 이끄셨다. 그러므로 그분이 계시는 곳에 제자들 또한 있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분과 함께 아버지 안에 거한다. 14,2절에서 “나의 아버지의 집”, 10절에서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땅에 계셨을 때 그분 자신이 아버지 집이셨음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의 거처가 우리 영 안에 있다는 사실은 교회가 우리 영 안에 있음을 가리킨다. 교회생활이 우리 영 안에 있으므로 우리는 모두 우리의 영 안에 머무는 훈련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을 떠날 때 의심과 믿는 이들과의 문제를 가지게 된다. 오늘날 아버지의 집은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있다. 우리의 영은 주님이 계시는 지성소이다.

 

요한14,2절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라고 말씀하신다. 처소는 곧 거처이다. 그러므로 2절에 있는 많은 처소들은 많은 거처들이다. 23절에서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와서 거처를 그와 함께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2절과 23절에서 '처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가 사용된다. 다만, 2절에서는 이 단어가 복수인데 반하여, 23절은 단수라는 것이다. 이 두 구절이 합쳐져서 아버지 집의 많은 처소들이 곧 믿는 이들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집은 사실상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몸은 지체들인 믿는 이들로 구성된다.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가 곧 아버지 집의 처소인 것이다. 그러므로 2절의 “아버지의 집”은 하느님 자신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그날, 우리는 이미 하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았다. 왜 그런가?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믿은 그날, 하느님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이 바로 땅 위로 오시는 것이고, 사람이 하느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또한 4절에서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마치 내가 육체가 되어 사람 안으로 왔던 것처럼 이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아버지 안으로 가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길은 바로 주님 자신이시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성화되고 그리스도로 건축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건축될 때, 우리는 하느님을 향한 처소가 된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그분은 우리의 거처가 되신다. 이것이 우리의 처소이다. 더욱이 이것은 우리와 하느님, 하느님과 우리가 함께 연합되어 상호 처소인 한 처소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느님 안에 거하는 상호 거함, 곧 상호 거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사상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집은 하느님과 그분의 믿는 이들의 연합을 표현하는 하나의 표징이다. 주님은 육체가 되시어 하느님을 사람 안으로 이끄시려고 아버지에게서 오셨다. 여기서 그분은 죽고 부활하시어 사람을 하느님 안으로 이끄시기 위하여 아버지께로 가시려고 하신다.

 

요한10,7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가져 오신 분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하느님 나라의 문 역할을 하신다. 오로지 그의 계시를 받아야만 하느님을 알 수 있고, 그의 통치를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은 양들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며, 또한 길이다(6절). 우리는 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감으로(길), 그의 계시를 받아 하느님을 알게 되고(진리), 그 결과 하느님의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14,6).”고 말씀하신다.

알렐루야! 아멘!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을 참고 하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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