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20 조회수1,594 추천수12 반대(0)

산책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은 작은 즐거움입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웠던 것이 생각나기도 하고, 지금까지 몰랐던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을 배우기 전에 철학을 배웠습니다. 철학은 인간의 감성, 지성, 이성으로 자연현상, 사회현상, 인간 자신을 성찰하기 때문입니다. 자연현상은 자연과학, 사회현상은 사회과학, 인간 자신은 인문과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는 오감을 통해서 체험하고 경험하는 인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성을 통해서 사유하고 분석하는 인식입니다. 경험은 모두가 같을 수 없고, 경험은 부정확하기에 때로 회의적으로 흐르게 됩니다. 지성은 모두에게 주어지 않기에 지성을 소유한 이들에 의해서 독점될 수 있습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인간 인식의 잣대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동양의 노자 철학에서 이야기하듯이 도를 도라고 규정하면 이는 도가 아니다.’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경험과 지성의 크기로는 초월적인 자아, 우주, 신을 규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실천과 판단을 통해서 절대적 자아, 우주, 신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철학은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입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것입니다.

 

신학은 사물을 인식하는 새로운 차원을 이야기합니다. ‘절차탁마(切磋琢磨)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직관과 절대자에게서 오는 사랑이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입니다. 오랜 수양을 통해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지성과 경험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양과 기도가 절대자의 자비와 사랑을 만나면 역시 지성과 경험의 차원을 넘어서는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만나는 사건이 계시이며, 은총이며, 성령의 역사입니다.

 

다락방에서 떨고 있던 제자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하던 사울이 이방의 세계에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도, 경험과 지성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변화되었기에 할 수 있었습니다. 변화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가진 것을 나누고, 교회를 세운 것은 성령의 이끄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엥베르 주교는 만 리가 넘는 길을 떠나 조선으로 왔습니다. 인간의 지성과 경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결정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았고, 외모가 달랐고, 문화가 달랐고, 박해가 심해서 잡히면 죽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과 성령의 이끄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기해박해를 피하지 않았고, 순교하였지만 그분들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했고, 신앙의 별이 되었습니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은 인류의 문명과 문화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초월적인 자아, 우주, 절대자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굶주림에 떨고 있는 사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 전쟁과 폭력에 희생되는 사람, 자연의 파괴에 신음하는 지구별의 아픔을 치유하기 어렵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줍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습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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