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5.2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26 조회수1,475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9년 5월 26일

부활 제6주일

제1독서 사도 15,1-2.22-29

그 무렵 1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2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22 그때에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자기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뽑아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뽑힌 사람들은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인 바르사빠스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스였다.

23 그들 편에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원로들이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다른 민족 출신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24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 가지 말로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5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뽑아

우리가 사랑하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와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뜻을 모아 결정하였습니다.

26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27 우리는 또 유다와

실라스를 보냅니다.

이들이 이 글의 내용을

말로도 전할 것입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제2독서 묵시 21,10-14.22-23

10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22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3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복음 요한 14,23ㄴ-2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

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글 쓰는 것이 힘들지 않으세요?”,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 않으세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힘들지 않으세요?”,

“본당이 아닌 성지에서 사목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세요?”
제가 많이 듣는 질문들입니다.

 “힘듭니다.”라는 저의 말을 듣고

 싶어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을 말씀드리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자제심이 강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습니다.

노력을 하는 유형도 아닙니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으면 힘들 것으로 생각하기에

“힘들지 않아요?”라고 물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

사랑하는 일이라면

전혀 힘들지가 않습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절대로

힘들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말을 계속 듣다보면

 ‘정말 힘든가?’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과 함께 세상에

가장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자신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지만 사람들은 진정으로

 위로해주지 않습니다.

이 과정 안에서 아픔과 상처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그냥 즐기면 되는데 다른 사람들의

말의 함정에 빠져서 즐길 수 있는

 자리에서 가장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집니다.
어쩌면 주님을 따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 자체가

기쁨이고 행복인데, “신앙생활

하는 것 어렵지 않아요?”라는 말을

 들으면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다른 이들과 비교를 하면서

기쁨과 행복을 잃어버립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가시면서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는

전혀 다릅니다. 세상은 마음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많은 것들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기쁨과 행복 자체에

머물면서 누구도 허물지 못하는

 평화를 갖게 해주십니다.
이를 위해 주님 안에 머물면서

그 안에서의 기쁨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여행답사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마치 제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기록된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설레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습니다. 남이 다녀온

이야기일 뿐, 제가 다녀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선, 내 자신이 주님 안에 머물면서

주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의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안에서 기쁨을 찾아보십시오.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름을 깨달으면서

참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무엇이 진정 행복인지

늘 확인하지 않으면

정작 그것이 찾아와도

받아들일 줄 모른다.

(김경집)

(오늘은 청소년주일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주 어린 소녀가 양손에

사과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의 엄마는 “네가 두 개의

사과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 중에

하나는 엄마 줄래?”

라고 말을 했지요.

 그러자 이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왼 손의 사과를

한 입 베어 뭅니다.

그리고 엄마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재빨리 오른쪽 사과를

한 입 베어 무는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 이 어린 소녀는

어떤 아이일까요?

사실 엄마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 아이가 이렇게 욕심이 많은

이기적인 아이였나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이는 잠시 뒤에 왼 손을

내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이거 드세요. 이게 더 달아요.”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이 아이는 욕심 많은

이기적인 아이일까요?

 아니면 진정으로 나눌 줄 아는

 사랑가득한 아이일까요?
이 아이는 절대로 욕심 많은

이기적인 아이가 아니라,

반대로 나눌 줄 아는

사랑 가득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엄마가 양쪽 사과를

베어 무는 아이에게 곧바로

 “너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니?”라고

화를 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마 아이는 크게 실망하고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섣부르게 판단하고 행동하게 되면

그 자리에 아픔과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는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제 조카가 어제 결혼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