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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 뒤에 숨어 계신 하느님의 마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28 조회수1,232 추천수0 반대(0) 신고

 

 

부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태어난 것 자체가 고통이라고 말입니다. 처음에는 이 말을 잘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은 잘 이해를 한다는 그런 말씀도 아닙니다. 단지 이 말을 성인이 되고 나서야 어려서 어머니 따라 절에서 들은 스님 법문 말씀이 조금 이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말은 짧지만 우리가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말씀 속에 엄청난 뜻이 무궁무진할 만큼 숨어 있듯이 이 말씀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예전에 이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정말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의 삶 자체가 고통이니 그 고통은 세상을 살면서 당연히 있는 고통이라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라는 그런 말씀인지 하면서 말입니다.

 

같은 고통도 고통의 의미를 해석할 때 고통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고통을 잘 받아들일 수가 있는지에 대한 여부도 결정이 난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해의 바다를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지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고통 하면 바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게 십자가일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것도 매일 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늘 듣는 복음 말씀입니다.

 

만약 여기서 말씀하시는 십자가가 상징하는 십자가의 의미가 단순히 고통을 상징하는 그런 의미의 십자가라면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잔인한 하느님의 아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매일 죽을 때까지 고통 속에서 살아라 라고 하시는 말씀처럼 우리가 인식을 하고 받아들인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그런 의미만은 아니겠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도 잘 모릅니다.

 

제가 신학자도 아니고 성경학자도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상상만은 한번 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십자가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있을 때 그 일이 하느님을 위해서 기꺼이 해야 하는 일인 동시에 인간의 본성이 그 일을 거부하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 그런 모든 일을 십자가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왜 거부라는 말씀을 표현했느냐면요 우리가 보통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하는 십자가의 의미를 말할 때 십자가가 상징하는 의미가 기쁘고 즐거운 그런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를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그 어떤 설교나 강론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을 한번 해봅니다.

 

인간의 본성으로는 거부하고 싶지만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양심의 눈으로 봤을 때 그런 거부의 마음을 용인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십자가를 지는 의미가 아닐지 한번 생각해봅니다. 십자가는 사실 지는 게 아니고 끌어안는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끌어안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이유일 겁니다. 바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눈에는 십자가는 그저 외면하고 싶은 그런 대상입니다. 근데 하느님은 참으로 짓궂으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뵙고자 하는 마음을 아시면서 우리에게 오실 때 그냥 와주시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마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고 하나의 조건을 내건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런 조건입니다.

 

나는 언제나 십자가 뒤에 숨어있으니까 나를 만나고 싶으면 내가 있는 십자가 속으로 오면 된다고 말입니다. 또 한 가지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있는 십자가는 어디든지 있다고 말입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꼭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하느님, 이런 십자가를 만나지 않고 바로 하느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입니다. 근데 하느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절대 그럴 순 없다고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마 제가 추측하는 바로 이렇게도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지금은 나의 마음을 모를 것이다. 세상에 있는 육신의 애비도 자식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려는 게 부모의 마음이거늘 하물며 네 영혼을 만든 내가 어찌 그런 고통을 주고 싶겠니?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니? 만약 너네들이 말하는 그런 식으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면 너네의 영혼은 또 다시 아담과 화와가 한 일처럼 나의 진정한 사랑을 외면할 수도 있단 말이지.

 

나는 또 다시 그렇게 너희들을 나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을 경험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너희들이랑 영원히 이젠 헤어지지 않고 살고 싶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너희에게 이런 십자가를 지어주는 거란 말이지.

 

지금은 십자가가 고통스럽고 외면하고 싶을 거야. 나중에 너네들이 천국에서 나랑 만나게 되면 그땐 알거야. 분명히 그땐 너희들이 그렇게 말할거야. 그때 좀 더 참고 십자가를 사랑으로 지었더라면 하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이런 말을 성경에도 남겼잖아.

 

귀가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이야. 세상에 귀가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니? 여기서 말하는 귀는 바로 내가 하는 말의 영적인 의미를 잘 알아듣는 귀를 말하는 것이지 않겠니?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십자가를 질 수 있단 말이다.

 

결국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바로 나는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지. 나는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사람도 사랑하겠지만 이런 영혼을 더더욱 사랑한다. 바로 자신의 십자가는 말할 것도 없고 남의 십자가도 같이 함께 질 수 있는 그런 영혼은 정말 내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그런 영혼이야.

 

그런 영혼은 내가 영원히 내 가슴 속에서 잊지 않을 것이고 영원무궁토록 내가 하늘나라의 보석처럼 길이길이 그 영광이 빛나게 해 줄 것이란 약속을 하고 싶구나. 만약 그 영광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너희들이 미리 체험해서 알게 된다면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려고 할 거야.

 

우리 먼 훗날 하늘나라에서 만날 때 저마다 다 자신이 지고 온 십자가를 보며 머리엔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한 손에는 승리의 축배를 들며 우리의 끈끈한 사랑을 확인했으면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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