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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6주간 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28 조회수2,024 추천수10 반대(0)

미운 오리 새끼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오리들 속에서 살아야 했던 백조는 자신이 백조라는 걸 모르고 살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오리와 다른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하늘을 높이 나르고, 우아하게 물 위를 헤엄치는 백조를 부러워할 뿐입니다. 언젠가 자신이 오리와 다른 백조라는 사실을 알면 비로소 하늘 높이 날 것입니다. 오리와 다른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리와 다른 모습은 당연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와 다른 이를 비교하며 가지는 열등감과 우월감은 하느님께로 나가지 못하게 장애물입니다. 나의 허물과 잘못을 시대와 가족의 탓으로 여기는 합리화 역시 하느님께로 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 의로움, 심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입니다.”

죄는 행위의 결과가 아닙니다. 죄는 지금 벌어진 상황이 아닙니다. 죄는 공동체로부터 떨어져야 하는 벌이 아닙니다. 죄는 하느님의 의로움과 은총이 드러나는 표징입니다. 눈이 먼 것도, 걷지 못하는 것도, 나병이 걸린 것도, 중풍에 걸린 것은 죄의 결과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치유의 은총이 드러나는 표징입니다. 부정한 여인은 돌로 심판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던 나의 죄를 성찰하는 표징입니다. 나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하느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야 하는 것이 죄입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시기 때문입니다.

 

의로움은 바리사이파 사람처럼, 율법 학자처럼 남의 허물과 잘못을 비판하고, 심판하면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의로움은 박하 향을 매달고, 단식했음을 자랑하면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의로움은 나의 능력과 업적을 자랑하면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집 짓는 자들이 버렸던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듯이, 의로움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갈 때 드러납니다. 의로움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의 행위에서 드러납니다. 광야에서 모세의 구리 뱀이 높이 들렸을 때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난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우리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났습니다. 의로움은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지난 2000년 교회는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자유와 삶을 억압한 적이 있습니다. 마녀재판은 약한 여성을 억압했습니다. 교회의 권위 앞에 과학자들은 침묵해야 했습니다. 교회의 광장 아래로 원주민들의 문학과 신화는 사라졌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권력과 욕망의 표출이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회의 허물과 잘못에 대해서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타인의 눈에 있는 티를 꺼내려는 오만이 있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심판은 사랑과 자비 그리고 정의와 자유가 함께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배반한 베드로를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에 도망친 제자들을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감당할 자 누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용서하심이 주님께 있으니 더더욱 주님을 섬기라 하시나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때가 다 될 것을 예감하십니다. 구원의 역사에 또 다른 협조자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을 바쳐서 함께 했던 제자들을 떠나야 하고, 하느님 나라 운동에서도 떠날 때가 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주님의 비움이 바로 참된 자유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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