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평화는 오직 그분과 함께 할 때만이 / 부활 제6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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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9-05-28 | 조회수1,46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경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기록한 거다. 성경을 통하여 비로소 하느님의 뜻을 공적으로 만나리라. 특별히 구약 성경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만남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에 대한 의무를 명확히 하셨다. 이스라엘의 등장은 그분의 선택이었다. 그들이 잘났거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수없이 감행하였고 번번이 실패하였던 민족이다. 그렇지만 그분께서는 언제나 용서하셨다. 그들은 하느님을 떠나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민족임을 점차 깨닫는다.
“이제 나는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러나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묻는 이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에 너희가 근심이 가득 찼다. 그리고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요한 16,5-8 참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호자’인 성령을 보내 주시겠단다. 그리고 그분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란다. 온갖 불의가 만연한 곳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지막인 때에, 그 성령께서는 유일하게 우리 편이 되어 주시어 세상의 불의를 고발하고 우리의 ‘진실을 당당하게 항변’해 주실 게다.
많은 이가 죄를 잘못 생각한단다. 어기는 것을 먼저 연상한다. 계명 준수에 젖어 하지 말라는 말에 익숙한 탓일 게다. 죄를 잘못 생각하는 하느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을 믿으라신다. 그러므로 사랑 실천을 우선해야 한다. 그분 가르침의 핵심이다. 그것의 행동은 ‘용서’였다. 사랑은 용서라는 거다. 따라서 죄와 연관된 믿음을 넘어서서 사랑과 연관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바른 신앙생활이 될 게다. 죄를 피하려고만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용서하려고 믿는 것이 될 것이다.
사실 눈에 보이던 것을 더 이상 못 보도록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라고 믿을 때, 우리는 상실감과 불안에 빠지리라. 그렇지만 우리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오히려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란 것임을 잘 안다. 진정한 삶의 행복은 없앨 수 없는 참된 몸, 곧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함을 믿게 될 때에 얻을 게다. 세례성사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부활의 증인들이다. 오직 심판자이신 그분만을 믿는 우리이기에, 참 평화를 누리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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