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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5.2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28 조회수1,95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9년 5월 28일

부활 제6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 16,22-34

그 무렵 필리피의

22 군중이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그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였다.

23 그렇게 매질을 많이 하게 한 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24 이러한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채웠다.
25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26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27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28 그때에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였다.
29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30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32 그리고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33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34 이어서 그들을 자기 집 안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다.

복음 요한 16,5-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5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6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실내 수영장을 갔다가

물속에서 하는 체조인 아쿠아로빅

수업을 우연히 본 적이 있습니다.

물속에서 하는 운동이지만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도 할 수 있고,

수영처럼 힘들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고 하지요.

그래서일까요?

 수업이 막 시작하려고 하는지

한두 명씩 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었습니다.

걷는 것이 힘들어 보이는 분들도 계셨고,

수영장 안으로 내려가는 사다리를

 한 발씩 내딛는 것도 불안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들 침묵 속에서

 힘들어 하는 표정으로 수업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잠시 후 수업이 시작했습니다.

한 30분 정도가 지났을까요?

서로서로 얼마나 많은 말씀들을

나누시는지 그리고 웃는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물속에서 움직이니

그만큼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았고,

 통증이 사라지니 웃으며

옆의 분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아침에 운동을 하면 아직 근육이

덜 풀려서인지 뻐근함이 가득입니다.

인상도 쓰게 되고,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러나 계속

운동을 하다보면 언제 몸이

 불편했냐는 듯이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이 안에서 즐기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주님 안에 푹 빠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편안함을 느낄 수가 있을까요?

주님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혀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누구나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승강기에 처음 보는 사람과 단 둘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편안하게 원하는 층까지 옮겨주는

 고마운 승강기이지만 승강기가

 느리게만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가장 불편한 공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좁은 공간에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꽉 붙어 있으면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면

언제어디서나 편안함을 느끼면서

힘차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곁을

떠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큰 근심이 가득 차게 됩니다.

주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제 육체적 시각에서 벗어나

영적인 시각으로 변화되어야 했습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랑을 통해서

이 세상 안에서 편안함과 기쁨을

그래서 진정한 행복 안에 머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성령을 통해 영적으로 주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직접 보고 직접 대화를 해야지만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안에서 성령을 통해 주님을

믿게 되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보다 깊이 이해하는 건

당신이 지금 아는 것보다

아주 조금 더

 이해하는 것이다.

(앤디 앤드루스)

(성령을 받으십시오)


2시간 30분.

여러분에게 하루는 몇 시간입니까?

 아마 다들 24시간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 역시 24시간이

저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런 글을

책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제게 하루는 23시간입니다.

저의 1시간은 반드시 달리기나

수영을 하기 때문입니다.”
달리기나 수영을 통해 1시간을

내어놓기 때문에 자신의 시간은

 23시간이라고 말하는

하루키였습니다.

이 말을 보면서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십일조를 봉헌해야 한다고 합니다.

 단순히 자기 수입의 십일조를

봉헌하는 것만으로 할 것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한 십일조도

봉헌해야 하지 않을까요?
최소 2시간 30분은 주님께

내어 놓아야 합니다.

기도와 묵상을 하는 것에

사용하는 것뿐이 아니라,

주님의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제게 하루는 21시간 30분입니다.

 2시간 30분은 주님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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