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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성령 강림 대축일. 2019. 6. 9.)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9-06-07 조회수1,476 추천수2 반대(0) 신고

 

성령 강림 대축일. 2019. 6. 9.

요한 20, 19-23. 사도 2, 1-11.

 

성령강림 축일이 되면. 우리는 제1독서에서사도행전이 전하는 성령강림 이야기를 듣습니다이 장면은 일어난 사실(事實)을 그대로 알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에 대한 초기신앙인들의 체험을 알리기 위해구약성서의 표현들을 빌려 각색(脚色)한 장면입니다.  ‘세찬 바람’, ‘소리’, ‘등은구약성서가 하느님이 나타나신 사실을 말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들입니다각자가 다른 언어로 말하고 각자가 자기 언어로 알아듣는 것은 바벨탑(창세 11,1-9)의 이야기를 상기(想起)시킵니다바벨탑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말을 하며하늘에까지 닿는 탑을 쌓아 올려서,  자기들의 이름을 날리며 살고자 하였습니다인간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연장하여 하느님을 상상하는 행위였습니다.구약성서는 하느님이 그들의 언어를 서로 다르게 만들어서, 그들을 사방으로 흩으셨다고 말합니다.

 

성령강립 장면에서 성령이 오셔서 사람들 안에 일어나는 일은 이 흩으심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성령이 각 사람 위에 혀 같은 불길로 주어지자,  사람들은 각자가 자기 언어로 말을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 언어로 이해합니다성령은 인간 상호간의 차이를 존중하시고, 그 차이는 인간간의 상호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뜻입니다사실 인간은 상호간에 차이가 있기에 서로 보고 들을 것이 있습니다의사소통이 원활한 사회는 인간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아끼고 존중하며 살리는 사회이고, 그것은 풍요로운 사회입니다.  한 가지 말을 강요하는 통제(統制)된 사회는 인간 생명을 위축시킵니다강요와 통제는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합니다성령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인간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다양하게 의사소통하며, 풍요롭게 살도록 하십니다풍요로움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할 때 가능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것은 인간에게 자비와 용서가 있어야 가능합니다그것은 하느님의 영()이 우리 안에 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면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성령을 받으시오. 누구의 죄든지 그대들이 용서해 주면 용서받을 것이요,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예수님이 숨을 불어넣는 것은창세기2장의 인간 창조 이야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창세기하느님이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숨결을 불어 넣으셨다.’ 고 말했습니다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면서 그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으셔서 그들은 새로운 사람들이 되었다고 말합니다오늘 우리가 화답송에서 함께 읊은시편구절이 있습니다.  “주님이 입김을 불어넣으시면 다시 소생하고 땅의 모습은 새로워집니다.”(104,30).  예수님이 체포되자 모두 도망친 제자들이었습니다그들이 다시 모여들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고 말하면서 자기 생명을 버리기까지 한 것은 그들이 다시 소생한 것이고 그들의 모습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김인 성령이 하신 일이라는 뜻입니다.

 

죄를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말은 개인고백 고해성사에서 사제가 죄를 용서해 줄 수도 있고, 용서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현행 고해성사가 교회 안에 의무사항으로 채택된 것은 1215(4차 라테란 공의회),  13세기의 일입니다그때까지는 교회 안에 여러 형태의 참회(懺悔)절차(節次)가 있었습니다현행 개인고백 고해성사가 도입된 것은 하느님이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죄인이라 생각되면 엄청남 보속, 곧 고행(苦行)을 하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확실히 심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이 죄를 용서해 주면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시대 유대인들의 화법(話法)입니다한 번은 긍정적(肯定的)으로 말하고 또 한 번은 그것을 부정적(否定的)으로 반복하는 화법입니다.  “믿고 세례 받는 이는 구원받겠지만 믿지 않는 이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마르코복음서(16,16)의 말씀이 있습니다이 말은 믿어서 구원받으라는 뜻입니다구원받지 못한다는 위협이 아닙니다.  ‘용서받지 못한다.’, 혹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사용하지 못할 말입니다그것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상투적(常套的)으로 쓰던 말입니다그것에 반발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비난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단죄하지도 버리지도 않으신다고 믿으신 예수님이었습니다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자기에게 잘못한 이를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여러분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시오.”(루가 6,36)라고 예수님은 가르쳤습니다성서 안에 있는 부정적 표현들은 하느님 앞에 책임질 수 있게 행동하자는 공동체의 마음다짐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죄의 용서라는 말로 요약합니다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이 복음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1,29)이라고 고백합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에게 죄의식(罪意識)을 심었습니다예수님은 그 죄의식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일을 하셨습니다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는 것은 그 죄의식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당신의 일을 지속하라는 것이었습니다그리고 제자들이 그 일을 하는데, 예수님은 당신 숨결로써 그들을 새롭게 만들어주며, 그들 안에 살아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가르치셨습니다사람이 자기 척도(尺度)로 사람을 판단하고, 통제하는 것이 죄라고 예수님은 생각하셨습니다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의 이야기가요한복음서(8)에 있습니다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신들은 당신네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으니 그 아비 욕망대로 행하려고 합니다그는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는 자였으며 진리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8,44).  단죄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행위이며 마귀가 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하느님의 진리는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살리는 데에 있습니다그것이 예수님이 하신 일이고, 이제는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입니다우리는 모두 인간이기에 시야 (視野)가 좁습니다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기준으로 사람들에 대해 판단하고 강요하기도 합니다그러나 하느님은 다양함을 풍요로움으로 보시는 넓은 시야를 가진 분이십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영()이 살아 계시면, 우리 주변 사람들이 어떤 자비를 체험할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요한 15,26)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의 실천이 달라질 것입니다하느님이 베푸셔서 있는 우리의 삶입니다.  하느님이 자비로우셔서 있는 예수님의 복음입니다베풀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숨결 곧 성령이 우리 안에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성령강림 축일을 해마다 기념하는 것은 하느님의 숨결진리의 영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시게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의 차이를 풍요로움으로 보는 하느님의 시야(視野)를 우리 앞에 열자는 것입니다자비롭게 또 은혜롭게 우리 주변을 보게 하시는 하느님의 숨결로 살자는 것입니다.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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