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령 강림 대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06-09 조회수2,509 추천수11 반대(0)

1982년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기숙사는 대건관하나였습니다. 지금은 양업관, 사목관, 강학관, 수덕관을 포함해서 5개의 기숙사가 있습니다. 도서관이 신축되었고, 학교의 운동장에는 파란 잔디가 깔려있습니다. 서울 관구 신학교에는 서울 교구, 수원 교구, 대전 교구, 인천 교구, 춘천 교구를 포함한 5개 교구의 신학생이 함께 공부했습니다. 교구는 달랐지만 우리는 함께 공부했고, 함께 기도했고, 함께 시대의 아픔을 나누었습니다. 못자리에 있던 벼가 논에 심어지듯이, 못자리인 신학교에서 공부했던 친구들은 각자의 교구에서 사제로 지내고 있습니다.

 

1991년 사제서품을 받고 중곡동, 용산, 세검정, 제기동 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지냈습니다. 성당 앞의 큰길에는 어김없이 지하철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두 깔끔한 길이 되었고, 완공된 지하철이 거미줄처럼 서울 시내를 연결해주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길이 막히고, 소음이 있었지만 그런 시간이 지나면서 서울은 세계 어디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빠르고, 깨끗하고, 환승이 쉽게 되는 지하철 노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노선은 다르지만, 사람들은 하나의 지하철처럼 이용하고 있습니다. 갈아탈 수 있는 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 우리는 빛의 속도로 연결해주는 인터넷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손에는 스마트 폰, 책상에는 노트북 컴퓨터가 궁금한 것을 알려주고, 이웃과 세상을 연결해주고 있습니다. 은행 업무, 예약, 민원 업무는 손가락 몇 번의 클릭으로 해결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70억 명의 인류는 언어가 달라도, 문화가 달라도, 사는 장소가 달라도 페이스북, 유튜브, 카카오톡, 애플, 구글, 삼성이라는 공간에서 쉽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2000년 전 사도들은 새로운 체험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성령 강림체험입니다. 좌절, 근심, 두려움, 절망, 열등감, 죄책감에 빠져있던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좌절은 일어섬으로, 근심은 담대함으로, 절망은 희망으로, 열등감은 자신감으로, 죄책감은 자비의 체험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함께 한 사람들과 하나 될 수 있었습니다. 언어가 다른 것도, 문화가 다른 것도, 생각이 다른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향해서 돌 듯이, 사도들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될 수 있었습니다.

 

최초의 우주인은 어두운 우주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하늘에는 하느님이 없다.’ 그런데 그다음 우주에 올라간 우주인은 다르게 말을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놀라우신 섭리에 감사를 드린다.’ 같은 우주를 보지만 두 사람은 다른 생각을 하였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삼라만상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신의 눈으로 보면 우주의 끝에서도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사랑하면 사랑스러운 것들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감사하면 감사할 일들이 너무도 많은 세상입니다. 풀 한 포기, 바람 한 점, 옆에 있는 이웃이 바로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손님입니다. 미워하면 미움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불평하면 짜증과 원망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풀 한 포기, 바람 한 점, 옆에 있는 이웃도 모두 내 삶의 걸림돌이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 양보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커다란 축복을 받았습니다. 매 미사 때 성체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주의 끝에서도 만날 수 없는 분을 우리는 아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우리의 몸과 마음에 모실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지갑이 두둑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하물며 온 세상의 주인을 모셨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정신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정신은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무게를 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이 있음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이 우리의 몸을 이끌고 있음을 압니다. 아무리 건강한 몸도 정신이 없으면 그냥 몸뚱이입니다. 아무리 나약한 몸도 정신이 올바르면 하느님과 접속이 됩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시면서 그 평화를 지켜 줄 성령을 함께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의 몸이 정신에 의해서 이끌어지듯이 교회는 성령의 이끄심으로 살아갑니다. 수많은 성인·성녀들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박해를 견디어냈고 순교의 영광을 차지하였습니다. 성령은 은사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구체적으로 7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슬기, 통달, 의견, 지식, 굳셈, 효경,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이 은사는 우리가 받아들일 때,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성령이 주시는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따뜻함을 주고, 용기를 주고, 희망을 줍니다.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풍성하게 열립니다.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모두 성령의 은사를 받아, 삶을 통해서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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