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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땅에다 무엇을 쓰셨을까?)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6-11 조회수1,607 추천수2 반대(0) 신고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

땅에다 무엇을 쓰셨을까?

 찬미 예수님!

라틴어 교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죄인은 다른 죄인을

쉽게 용서하지 못한다

그건 자기 죄 때문이다.’

그래서 죄인을 용서하는 것 역시

죄인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이지요.

특히 높은 선을 가진 사람들

높은 선과 도덕적인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죄인의 죄를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과거를 들춰내지 않습니다.

마치 오늘 예수님처럼 그렇다는 겁니다.

죄인은 죄인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내 자신이 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자가 죄수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답니다.

한 청년을 간통한 남자로 꾸며

강력범들이 수감되어 있는

방으로 넣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감방 안의 모든 죄수들은

신이 나 별의별 방법으로

그 청년을 괴롭혔습니다.

너 같은 놈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온갖

욕설과 비난을 하더랍니다.

왜냐하면 이미 먼저 와 있던

그들 안에 지옥이 있기 때문이죠.

이번에는 그 청년을 똑같은

죄목으로 위장해 억울하게 갇힌

사람들의 방에 보냈죠.

누구도 청년의 죄를 따지거나

묻지 않고 오히려 친절하게

도와주고 위로하더랍니다.

이미 그들의 마음 안에는

천국이 있었기 때문이죠.

우리 남자들군대 다녀오셨겠지만

군대 가면 정말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입니다.

졸병이 들어오면 유독 괴롭히는

고참이 있습니다.

주로 사고 쳤던 경험이 있거나

이미 작대기 몇 개 달 때까지

많은 말썽을 일으킨 사람들이

신참이 들어오면 달달 볶습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은 졸병 오면

감싸고 모르는 것 알려주고

힘들 때 등 두드려줍니다.

못된 인간들은악으로 가득 찬 인간들은

자기보다 약해보이면 갈아 뭉갭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은

문제를 참아주지 못 합니다.

이것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죠.

죄인이 죄인을 더 찍어 누릅니다

그래서 용서받지 못하는 겁니다.

방귀 뀐 놈이 더 큰 소리를 지릅니다.

 죄인은 다른 죄인을 용서 못 합니다.

오늘 간음하다 잡힌 막달라 마리아는

유대인의 3대 범죄 중에 하나를 진 겁니다.

우상숭배살인죄간음죄

이 죄를 진 사람들은 돌로

쳐 죽여도 죄가 안 되었습니다.

율법은 분명히 사형을 단언합니다.

레위기 24장 16절에도 나오고

신명기 22장 13절 이하에도 나옵니다.

법적인 견해로 볼 때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생각이 전적으로

옳았습니다.

이 여인은 사형을 면할 수가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이런 상황에 예수님의 결정이

어떻게 날까 지켜봅니다.

만일 예수님이 사형하는 데

찬성하면서 죽여라’ 하면

이제껏 갖고 있던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심이

충만한 그분의 명성은 한 순간에

무너질 상황이었습니다.

또 죽이지 말라 하면 모세의

율법을 깨뜨리고 간음을

조장하는 격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거듭거듭

어떤 행동을 하신지 아시죠?

뒤에서는 왁자지껄 죽여라,’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땅바닥에 뭘 썼다고 했어요.

왜 땅바닥에 무엇을 쓰셨을까?

많은 학자들이 이 부문에서

 많은 의견을 내놓습니다.

예수님이 성급한 결단을 내려서

 실수를 하지 않으시려는

의도였을 거라고도 하고,

쓰는 척 하면서 성부께 물어보고

있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이 순간에 어떻게 해야 됩니까?’

또 어떤 학자는 시간을 주어

자신의 잔악성을 깨닫게 하시려는

 의도라고도 합니다.

모리악같은 작가는 죄지은

여인이 부끄러워할까봐

그 여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여인의 눈을 피해 땅바닥에

뭔가를 쓰는 척 하시었다고 합니다.

어떤 해석이든 다 아름다운 해석입니다.

예수님과 그 당시 법을 지키고 있던

율법학자들의 권위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율법학자의 권위는 누군가

잘못하면 집어내어 율법에 맞는

 벌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위는 죄인을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권위였습니다.

참다운 권위를 가진 사람은

현명한 의사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오늘 예수님의 태도,

 성심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의 마음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이 이 여자를 쳐라

마태오복음 7장 말씀처럼,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마라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가지고 시비 걸지 마라.’

인생에서 가장 빠지지 쉬운 과오는

 자신에게는 지극히 관대하고 남에게는

추상까지 비판적인 겁니다.

자신의 죄에는 늘 변호사 노릇을 하고

다른 사람의 작은 죄는 찍어 누릅니다.

예수님이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격의 기준, ‘죄 없는 자만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라.’

두 번째로

예수님의 성심은 과오를

범한 자에 대해서는 먼저

 동정의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과오를 범한 사람들과 대면할 때

 첫 번째 느끼게 될 감정은 

죽일 놈이네천벌이 안 내릴까.’ 

라는 마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죄인을

도와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회심시킬 수 있을까?’

라는 이런 동정의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거죠.

그 당시에 병에 걸리면

큰 죄를 지어 병에 걸린

죄인이니 동정가질 필요 없고,

당연히 자기 죄에 대한 보속을

 받고 있는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병만 걸리면 죄인이 되서

사람들은 자기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숨겼죠.

병에 걸렸다는 소문만 나면

세상에겉보기와 영 다르네

얼마나 큰 죄를 남모르게

지고 살았으면 그런 몹쓸 병에

걸렸어상종하지 마라.’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랬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예수님 더욱 더

사랑했던 겁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느냐?’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화살 같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은 소위 죄인이라고

불렸던 그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도와줄 방법을 찾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예수님의 성심을 통해

우리들이 묵상해야 될 것은 

예수님이 쉽사리 죄를 용서하셨다

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돌아가거라.’ 

그리고 마지막 말이 뭐죠

죄 짓지 마라도 아니에요

앞에 무슨 말이 붙죠?

다시는’ ‘네버(never)’.

다시는 죄 짓지 마라라.

괜찮아염려할 것 없어

이제껏 네가 살아온 대로 살아.’ 

이 뜻이 아니었죠.

이제 너를 용서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은 다 했고

이제 너는 선택을 해야 된다.

네가 이제껏 살아온 것이

다 그릇되었으니 나가서

네 몸뚱이와 싸우고

세상과 싸워서 철두철미하게

 너의 인생을 전환시켜라

가서 더 이상 죄 짓지 말거라.

예수님의 성심은 한없는

자비도 있지만 그 안의 의노와

의로움을 가르쳐준 겁니다.

예수님께 무한한 용서를

받았다는 것만 생각하고 

나 또 죄 지어도 용서하실 거야.’,

예수님의 용서라고 하는 것의

뒤에 숨어서 끊임없이

같은 죄를 지면 안 됩니다.

고백소에서 아무리 큰 죄라도

사제의 입을 통해 예수님은

죄를 사해 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고백소 문을 열고 나갈 때

 다시는다시는 이 죄에

안 떨어지려고 죽을힘을

다하고 애쓰겠습니다.라는

결심을 보여야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 죽음에서

구원된 막달라 마리아는

그 후에 같은 죄를 안 지었습니다.

예수님의 만나기 전까지는

얼굴에 분 바르고 남자들을

유혹해서 몸을 팔아 돈을 버는

거리의 여인이었지만,

복음에 나오듯 그 다음에는

그 비싼 라르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

발을 닦아드립니다.

그 향유는 남자들을 유혹할 때

바르려던 세상의 향유였지만,

예수님을 만나고부터는 오로지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 됩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는

 또 하나의 막달라 마리아처럼

살 때가 너무너무 많습니다.

죄인임에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른 죄인을 찍어 누르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내 자신에게는 그렇게 관대하고

 용서를 잘 해 주면서도,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찍어 누르고 

없는 말 붙여서 더 큰 죄인을

만들어서 세상에 퍼트렸던가!

오늘 주님은 사제의 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죄를 용서하니

다시는 죄 짓지 마라라.’ 

이 말씀을 명심합시다. 아멘.

2019년 사순 제5주일(04/07)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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