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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제1독서 (2코린5,14-2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6-15 조회수1,264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제1독서 (2코린5,14-21)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0)

 

 화해하게 하는 사도로서의 직책을 받은 바오로는 코린토 후서 5장 20절에서 코린토 교인들을 향해서 하느님과 화해하라는 직설적인 권고 함으로써 자신의 사도직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여기서 '사절입니다'로 번역된 '프레스뷰오멘'(presbeuomen; ambassadors)원형 '프레스뷰오'(presbeuo)는, '노인', '원로', '장로' 라는 뜻을 지닌 '프레스뷔스'(presbys)에서 파생되어 '노인이 되다' 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후기에는 '사신이 되다', '사절이 되다', '대사가 되다' 라는 뜻으로 전용되었고, 여기서도 바로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스 시대의 파피루스나 비문등에서도 이 표현은 '황제의 사절이 그 직책을 수행하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로 등장하는데, 바오로는 이러한 위엄있는 단어를 자신의 고귀한 직책을 설명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바오로 자신이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신 사절이라는 점은 '그리스도의'로 번역된 '휘페르 크리스토'(hyper Christu)라는 전치사구에서 잘 나타나는데, 이것은 본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라는 뜻이다.

 

'~의', '대신하여' 로 번역된 전치사 '휘페르'(hyper; for)는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의 직책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당시 황제의 사절이 황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로서 황제의 권위와 권력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들어,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그리스도의 메시지, 곧 복음을 전달하는 자로 그리스도의 권위와 권력등을 위임받았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제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사절(대사)의 자격으로서 코린토 교인들을 향해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라고 권면한다.

이 편지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이고, 코린토 후서 1장 1절에는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와 온 아카이아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로 나오므로, 여기서 화해의 의미는 그리스도를 통한 거듭남(새로남)과 회심의 차원은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고, 좀 더 의화를 통한 성화의 길을 걸어가서, 하느님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평화를 누리기를 요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주님을 몰랐을 때의 과거의 어두움으로 돌아가지 말고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현재의 은총과 품위와 자격을 잘 간직하고, 은총을 성장시키기를 바라는 성화의 관점에서 "하느님과의 화해" 를 거론했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어떤 학자들은 사도 바오로의 이 말씀이 코린토 교회 성도들이 아니라 일반 세상 사람들에게, 바오로가 화해케 하는 직책을 받은 자로서 그의 사목 현장에서 그와 같은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22)

 

 코린토 후서 5장 22절무죄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이 성도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의로움을 소유하게 하여 성도들이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음을 소개한다. 그리스도의 무죄함은 그리스도께서 대신 구속 사업을 수행하실 완전한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다.

 

로마서 8장 3절에서 바오로는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차단하셨습니다" 라고 언급함으로써 코린토 후서 5장 22절의 사상을 피력한 바 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요한 복음 8장 46절에서 "너희 가운데 누가 나에게 죄가 있다고 입증할 수 있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고 있다면,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않느냐?" 라고 말씀하심으로서 자신이 무죄하다는 사실을 천명하신 적이 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도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라고 언급하여 그리스도의 무죄성에 대해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무죄성은 그가 하느님으로서 존재하실 때 뿐만 아니라 완전한 인성과 더불어 완전한 신성을 지니셨던 육화(강생)의 상태로 계실 때에도 여전히 유지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를 하느님께서 '죄인으로 만드신 것'으로 표현하지 않고, '죄'(hamartian; 하마르티안)로 만드시어' 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죄인으로 만드셨다면, 그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속 사업 계획이 무효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죄로 만들었다는 바오로의 언급은 단적으로 죄있는 인간의 육신의 모습으로 육화하게 하신 강생 사건과 결부된 표현으로서, 죄없는 그리스도께서 마치 실제로 죄인처럼 취급되어 하느님의 의노를 한 몸에 받으신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대속적 십자가상 죽음이 그리스도인의 확고한 믿음을 보증하는 유일한 표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목적의 의미를 나타내는 '히나'(hina) 가정법 구문으로 구성된 본문은 하느님께서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왜 죄로 만드셨는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와 죄인인 인간과의 결속에 근거하여 우리를 단죄의 심판이 가져다줄 종국적 파국에서 건져 주시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의로움'(dikaiosyne theu; 디카이요시네 테우)'죄인을 내면적으로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지위와 신분', 즉 '의화'(justification)를 뜻하는 것이다(갈라3,13.14; 필리3,9).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고, 그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의로움은 우리의 것으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로마8,1; 8,38.39참조)



복음말씀의 향기 1669 - 6월 14일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너희는 말할 때에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태5,3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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