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이 보시는 기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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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6-15 | 조회수2,188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하느님이 보시는 기준 주님은 더욱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요한 3,30) 성령으로 가득 채우소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기도와 선행도 한 대의 미사와 비교할 수 없다. *~*~*~*~*~*~*~*~*~*~* 하느님이 보시는 기준 세상은 외모를 중하게 생각합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속마음을 보십니다. 아름답게 하여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다 평등해집니다. 인물이 평등해집니다. 여기저기 불룩불룩 나옵니다. 지식의 평등이 옵니다. 못 배운 사람이나 다 그게 그것입니다. 건강의 평등이 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의 평등이 옵니다. 다 평등하게 만들어 불러 가시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사무엘이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하느님이 택하신 자를 찾으러 내려갑니다. 가운데서 하느님이 택하신 자를 찾는 것입니다. 외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택하려고 하였으나 하느님은 그때마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속마음을 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이 보시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1. 하느님이 보시는 기준은 속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얼짱이니, 몸짱이니 하며 외모에 많이 치중합니다.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습니다. 반한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단장하고 준비하는 시간에 다윗은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양을 지키는 목동은 볼품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보시기 때문입니다. 검색대에서는 도저히 숨길 수 없습니다. 다 들어다 보십니다. 그렇게 사랑하셨습니까? 하느님을 절대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2. 하느님이 보시는 기준은 정직입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것은 다윗 뿐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시인하지 않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경멸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하느님께 버림 받는 것은 비극입니다. 하느님께 버림받으니 기쁨이 없습니다. 다윗은 정직했습니다. 잘못한 것을 지적받자 깨끗이 시인합니다.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맞는 자라 하셨습니다. 비겁한 인생이 되지 말고, 다윗처럼 정직해야 온전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온전하겠습니까? 예수님도 세상에 오 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도 그것을 아십니다. 채워서 온전하게 하시려고 외아들을 보내시고,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정직하고 진실하여야 합니다. 정직한 믿음과 진실한 삶, 그리고 검소한 생활입니다. 3.하느님이 보시는 기준은 살아있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있고 육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만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되어야 합니다. 찾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면에서는 사울과 다윗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같이 왕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이었습니다. 사는 사람입니다.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4. 결론 1) 하느님은 외모를 보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속마음을 보십니다. 정직한 사람을 찾습니다. (박재선님 참고) *~*~*~*~*~*~*~*~*~*~*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요셉께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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