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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1주간 화요일]완전한 사람(마태 5,43-4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6-18 조회수1,757 추천수0 반대(0) 신고

아버지의 완전함과 같이  

(마태5;43-48)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같이라는 건 그대로 되라는 거거든요. ‘그 완전하심까지 열심히 달려서, 하는데 까지 해봐라.’라는 말이 아녜요. 이제 우리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의 마지막 네 번째인 그 부분인 에스카톨로스 코드란테스.’ 그 사랑의 단계로 넘어 왔습니다. 성경에서의 아가페, 사랑은 그거예요. 진리(眞理)를 사랑으로 깨달아,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흘려주는 걸 사랑한다라고 그래요.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그 율법 전체를 살인, 간음, 거짓증거 이렇게 축약(縮約)을 해서 설명을 해 주십니다. 사실, 율법은 전부 그 이야기라는 거예요. ‘살인(殺人)하지 마!’너희들이 익숙한 희생제사 반복해서 드리지 마! 그리고 진리가 아닌 율법을 네 남편으로 삼아 간음하지 마! 행위(行爲)의 아들 낳지 마!’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곡해(曲解)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전하지 마! 그게 거짓 증거(證據)~. 거짓 맹세(盟誓)~.

 

마치, 율법이 그러한 그냥, , 하느님의 명령(命令), 하느님의 요구사항, 이런 것인 양 그렇게 알아, 다른 이들에게 전하면, 그거는 사망(死亡)을 전하는 것이라고 성경이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가 오면 그렇게 될 거야~.’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의 진의(眞義)를 마음으로 가져, 아버지의 마음이 되는 것. 그렇게 내가 하느님의 성전(聖殿)이 되는 거고, 그거를 히브리어로 그냥 읽으면 아브, 아바, 아버지예요. 그게. 아버지! 그러니까 내가 아버지가 되는 거죠. 그 마음으로 내 마음이 된 그 진리, 그 마음으로 가난한 그 푸토코스,’ 그거 없으면 죽는 그런 이들에게 이렇게 흘려주는 거. 그게 이웃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게 이제 완료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진리가 되는 거예요.

 

오늘 본문은 그 네 번째 상태를 완전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느님의 완전하심이 뭔지 알기나 해요, 우리가 몰라요. ‘너희 수준에서, 내가 이렇게 되면 완전이라고 해 줄게.’라는 말이에요.

예수님이 너 가서 사랑해!’ 그랬더니 누가 내 이웃인지 가르쳐 주세요! 내가 가서 확 사랑해 버릴게요.’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배운 것처럼,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일차적으로 선한 이웃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는 예요. ! 그 이웃은. , ‘어떻게 해야 영생(永生)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는 율법 박사가 그런 질문을 했어요. 율법사는 율법을 연구하여 가르치는 사람이니까, 율법 박사죠?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주님의 이 대답은 두 가지를 함께 내포(內包)하는 거죠. 하나는 네가 사랑이라고 정의(定義)하는 그 사랑을 정말 할 수 있는지 가서 해 봐.’라는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는 율법이 이야기하는 진짜 사랑이 뭔지 알고, 그 사랑을 하면 넌 살아!’라는 말이에요. 네가 사랑이라고 하는 거, 그거는 가서 한번 해봐. 되는지? 그러나 그 사랑이, 내가 이야기하는, 하느님이 율법, 계명(誡命)을 통하여 이야기하는 그 사랑이 뭔지 알고, 그거 가서 하면 살아!’라는 말이에요.

내가 가서 할게요.’누가 내 이웃입니까? 가르쳐만 주세요.’ 그런데 주님께서 누가 내 이웃입니까?’를 물은 그에게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라고 물어요.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너는 강도 만난 자지,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存在)가 아니야.’ ? 율법사는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그 사랑, 진리를 전해주는 그 사랑을 할 수 있는 그게 없거든요.

할 수 없는 자. 그래서 거반 죽은 자라고 하는 거예요. 강도 만난 자. 네가 그거 없으니까. 선한 이웃으로부터 그거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말하는 그 사랑할 수 있다는 거예요. 계명(誡命)! 율법이 말하는 그 사랑하려면, 네가 먼저 선한 이웃으로 온, 이방인으로 이 땅에 오는 어떤 이로부터 그 사랑을 먼저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 이 세상에서는 이방인(異邦人)이니까. 그 율법사에게 시급(時急)했던 건, 강도 만난 자에 불과한 자기의 실체(實體)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선한 이웃으로 자기를 찾아온, 그 진리의 사자(使者),‘앙겔로스.’ 그 사자로부터 그 아가페의 사랑을 듬뿍 받아, 그 헐어진 마음, 그 강도당해 피폐해진 그 마음으로 채우고, 그걸 흘려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나면, 이렇게 끝나요.

(루가복음10:36-37)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하느님의 아가페를 그 마음으로 딱 접하게 됐을 때, 가장 처음 만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 누굴까? ‘예요. !  내가 진리를 접하자마자 내가 자각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 라니깐요. 우리가 나 말고 누구에게 먼저 신경(神經)을 쓰냐고요? 가장 가까운 이웃. . ‘그 이웃을 먼저 사랑해라.’라는 거예요.

하느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줘요. ()한 거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두 마음으로 그걸 곡해(曲解)해서, 그거를 그냥 율법으로 붙들어서, 그걸로 행위의 열매를 계속 낳는다고요. 그러니까 그 원수, 그 이웃을 우리는 항상 내 밖에서 찾으려고 하니까, 나를 늘 제외(除外)시킨다니깐요. 아니, 나와 관계(關係)없는 말씀은 우리 거 아니라니깐요. 다 우리 이야기 하는 거예요.

처음부터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그걸로 생명(生命)을 낳아버리면, 내가 하느님이라니깐요. 그런데 나는 피조물(被造物)이란 말이에요. 그 먼지가 어떻게 하느님의 말을 올바로 알아들어요? 못 알아들어요. 그래서 하느님은 그 하늘의 것을 설명(說明)해 주기 위해, 이 땅의 것, 아래의 것, 이런 것들로 하늘을 설명하신단 말이에요. 그러면 성도(聖徒)라는 진리가 되는 그 존재에게 있어서 그 아래의 것, ‘야 그것도 사랑해야 돼.’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사랑스러운 게 되면, 죄까지도, 그렇다면 그 원수 짓을 한 그것까지도, 나의 선에 선용(善用)되는 것이었다면 나에게 있어서 죄가 삭제되는 거예요. 그걸 용서(容恕)’라고 한단 말이에요.

 

실패(失敗)는 성공(成功)의 어머니다.’라는 말이 있죠?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실패 몇 번은 해 줘야 돼. 이런 말이 아녜요. 사실은요 성공. 그러면 성공이 되기까지의 그 과정(過程)은 전부 뭐예요? 실패예요, 그런데 99% 달성해도 실패예요. 이거는. 완성이 성공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 실패를 거치지 않고 완성이 오는 건, 안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진리가 된 사람들은요 그것이 아무 문제가 안 돼요. 그 즉시 삭제(削除)된다고요. 그런데 그 아래에서 머무르고, ‘이게 다 아니야~? 그리고 어줍지 않은 돌려차기 하면은 펭귄 발차기 하는 거예요. 심형래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 되는 거예요. 그런데 완성의 자리에 올라간 사람에게는, 그것 자체가 다 가치가 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얘기할게 그 원수(怨讐), 거기에 머문다면 당연히 미워해야지? 진리에 입문했는데, 그 전의 그거 너! 그게 너에게 옳게 보이면 안 되지? 당연히 그건 원수잖아? 하느님이 하라는 거, 반대로 다 했으니까 하느님의 원수잖아? 그러나 그건 미워해야 되지만, 그 과정을 통과하여 네가 진리가 되었다면, 그것도 사랑해야지. 하느님이 준 거니까.’ 그 말 하는 거예요. 원수 같은 인간, 이 악물고 한번 사랑하는 척 해 보라는 그런 말 아녜요. 그러니까 이 구절을 자기에게 원수로 행하는 자들에게도 인간적인 그 에로스의 사랑을 주라는 말로 들어서 이를 악물고 벼름의 사랑을 결단(決斷)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기도라는 게 뭐냐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원()하는 게 일차적으로 그래서 우리 안에서 우리는 기도를 뭘 할지도 모르지만, 하느님이 내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歎息)으로 기도한다고 하는 게 뭐냐면, 하느님이 먼저 기도하는 거예요. 하느님이 원하는 뜻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흘려주는 거예요. ‘너희는 이렇게 됐으면 좋겠어.’ 이거. 그러면 우리가 그걸 받아다 충분히 이해하고 깨달은 다음에, ‘하느님, 그게 하느님의 뜻이라면, 저도 그 뜻이 나에게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가 기도죠. ‘프로슈코마이.’

예수님의 기도를 어떻게 기가 막히게 제자들이 다 받아 적었죠? 산 속에 들어가서 심지어 자고 있었는데도, 그걸 또 다 받아 적었네. 어떻게 적었을까요? 기도는 예수님이 그들에게 들려 준 이야기였단 말이에요. 그들이 현재 가는 그 길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지적해 줄 수는 있지만, 그러니까 넌 죽어라.’ 이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들이 언젠가 진리로 완성이 되었을 때, 그들의 과거의 그 원수의 행적(行蹟)도 모조리 삭제(削除)되어 버린단 말이에요. 그게 구원의 공식.

신약 성경에서 우라노스가 복수로 쓰이고 거기에 관사가 붙으면, 하느님의 진리를 깨달은 성도들을 가리켜요. 그러니까 그 하늘들 안에 그 아버지, 그게 뭐라고 그랬어요?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이죠? 그 아버지의 아들, 그 진리의 말씀이 낳은 !’ 나예요. 내가 아들이잖아요?

그래서 주님이 그러죠.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는데, 가서 장자 지내고 오면 안 돼요? 그러니까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장사(葬事) 지내게 하라고 그러죠. ‘너 지금 나를 쫓아와서 진리를 받아야, 네 아버지가 살아, 산 아버지 만나는 거야~’ 그런데 그 아버지, 죽은 자의 아버지는, ‘네가 만약에 나를 지금 쫓지 않고, 거기에 가서,’ 장사가 뭐예요? 율법이에요. 규례(規例)란 말이에요. ‘그걸 한다면, 너는 네 아버지 장사 지내게 되는 거야! 너 살아 있는 아버지 못 만나!’라는 말이에요. 무슨 인륜(人倫)을 저버리라는 말이 아니란 말이에요. 예수님이 매정하게. 성경은 전부 메시지가 있다니깐요. 그러니까 내 안에 그 아버지! 그거 만나려면 나 쫓아와서 내가 가진 진리를 네가 넘겨받아야지. 이런 말이에요. 거기 가서 율법 행해서 진짜 네 아버지 초상 치를 거야~? 그럼 네 아버지 죽어! 진리가 안 되니까. ‘그러니까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가서 장사 지내라고 그래.’ 그러는 거예요.

그리스도와 내가 연합된 나로, 사랑하는 자는 오늘 본문에서 그러잖아요. 네 이웃 가장 가까운 이웃, 너 사랑하라고 그러잖아요? 그렇게 진리가 된 나로,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계속 흘려준단 말이에요. 사랑을 받는 거예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그리스도가 진리로 내 안에서 계속 밝혀준다는 거예요.

 

(요한복음 8:54) 5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 안에 그리스도로, 진리로 와 계셔야 되는 거예요. 그걸 성령 받았다, 그래요. 거품 물고 쓰러지고 벌벌 떠는 게 성령 받은 게 아니라, 그렇게 진리로 내 마음에 말씀이 깨달아 질 때, ‘아 내 안에 영, 깨끗한 말이, ‘푸뉴마가 진짜 와 있는 거구나.’ 그래서 그걸 성령 받았다. 그래요. 그것이 점점 내 안에서 이렇게 충만하게 깨달아질 때, 그걸 성령 충만(聖靈充滿)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 그렇게 원수(怨讐), 그거 미워하고 그러지마. 옛날에 어떻게 산거, 어떻게 실패한 거, 어떻게 절망(絶望)한 그거 하느님이 하나도 카운트 안 해. 그러니까 그것도 사랑해~.’ 이야기 했어요. 그러면 네가 다른 이들도 그렇게 마땅히 대해야지, 판단(判斷)하고 정죄(定罪)하지 말고, 네 눈에 악하게 보이는 그들에게도 그 사랑을 흘려 줘! 일차적인 원수는 !’ 이 온 세상이 율법 속에 갇혀서 하느님의 원수로 살고 있잖아요? 그들에게 말씀을 흘려주는 게 원수를 사랑하는 거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거니까.

비는 불의한 자, 의로운 자, 가리지 않고 내린단다. 비는 신명기 31장에서 하느님의 말씀비가. 하느님의 말씀은 의로운 한 자나 불의한 자나, 너희들이 구분해 놓은 그 어떤 구분도 거기에 매이지 않고 내리는 거야~. 그런데 이 세상에 의인(義人)이 어디 있어? 아니 굳이 너희들이 이야기하는 그 의인, 그리고 불의. 그렇게 너희들이 이야기한다고 하니까 내가 이야기할게. 그렇게 너희들이 판단(判斷)한 그 어느 누구 위에도 그 비는 내릴 수 있어. 그러니까 원수 사랑해! 이웃 사랑해! 그런 말이에요. 그 빛은 반드시 위의 것으로 완성시켜 내는 힘이 있는 거니까.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이건 무슨 말이겠어요? 이게요? 너희가 너희를 이렇게 사랑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면, 그건 상 없어. 하느님이 너희에게 사랑을 흘려줘야 되는 거야. 그게 하느님나라인데, 너희들이 그 사랑을 위로 흘려보낸다고 하면, 그게 말이 되니? 이런 말이에요. 그 사랑을 받으라는 거예요. 흘려 받으라는 거예요.

 

(고린도전서 9:18) 18 그렇다면 내가 받는 삯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것에 따른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내 안에 들어와 있을 때, 그 간직하는 그 능력! ‘엑소시아’. 미스는 그걸 전해줄 수 있는 능력이고, 엑소시아!’‘그걸 다 쓰지~’가 아니라, 남용(濫用)하지 않는 것. 이게 내 상이야~. 그러는 거예요. 왜 그게 상()이에요? 당연하죠. 내 안에 원래 없던 거잖아요? 나는 피조물(被造物)이라고. 내가 담을 수 없는 어떤 것을 그 하늘의 진리를 하느님이 나에게 흘려줬네요. 그래서 그게 내 마음에 새겨졌어요. 그 진리가. 그래 나는 흘려줄 수 있는 자가 됐죠? 그게 크리스토스예요. 그리스도들. 내가 그 하느님의 말씀, 기름을 받아 이 기름을 다른 이에게 발라 줄 수 있는 자가 되었다면, 그리고 그걸 하느님께 올바로 받아서 남용(濫用)하지 않고, 잘못 전하지 않을 수 있는 그 자가 됐다면, 이거보다 더 큰 상이 어디 있어요? 나한테. 내가 뭔데 그거를, 그 예수가 하신 그 일을 내가 하냐고요? 그리스도가 하는 일을 내가 어떻게 동참(同參)하느냐고요? ‘그게 내 상이야~.’라고 바오로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상급(賞給), 상급하지 마세요. 이게 여러분의 상이라는 그 인식(認識)이 없으면 여러분은 하느님한테 엉뚱한 상, 지금 바라게 된다니깐요. 그 사람 예수 믿는 사람 아녜요. 우리가 우리 수준에서 원하는 그런 상급, 거기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100% 거짓 예언자예요.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이 허깨비 같은 세상에서 고지 꼭대기에 올라가서 성공해라.’ 120%. 120% ()이에요. ! ‘자도 모르는, 복음의 자도.

 

, 그러면서 세리(稅吏)는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고 그래요. 예수님이 여기서 세리라는 이야기를 해 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생애에 세리들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거예요. 지금 여기서 뜬금없이 세리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 세리, 그때 얘기했던 산위에서 얘기했던, 그 세리가 이거였어.’라고 세리들과 관계를 맺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세리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텔로네스,’ 텔로네스! 여기서 조금 아까 해를 비추다.’에서 비추다텔로스라고 했죠? 완성하다. 결국 완성, 이런 말이 텔로스라고 그랬잖아요? ‘텔로스라는 단어하고 오네오마이,’ 이게 값 주고 사다, 구입(購入)하다.’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세리는 완성, ‘그 안식(安息)을 값 주고 사는 자라는 말이에요. 완성을 어떻게 값 주고 사요? 그래서 세리예요. 그게 죄인(罪人)이에요.

 

원래 세리라는 직업은 세금(稅金)을 징수(徵收)하는 자예요. 그들은 자기들의 조국이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날 가망성(可望性)이 없다고 낙심(落心)하고, 돈이라도 많이 벌어서 지중해 등지에 그런 휴양지에 가서, 편안하게 살자고 로마의 주구(走狗)가 된 자들이 세리였어요. 당시에 많은 젊은이들이, 그 욕망(慾望)을 가진 젊은이들이 그 세리의 직업에 뛰어 들었다 그래요. 어차피 가망 없는 나라 돈이라도 많이 벌어서 튀자! 좋은데 가서 살자! 그게 세리였어요.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예요. 무조건 가서, 걷는 만큼 자기들에게 떨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유대 안에서의 세리는 그냥 죄인이었어요.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 그러면 그냥 세리였다니깐요. 율법과도 무관하게 살아. 욕심 부리면서 살아. 그러니까 자기들도 알았고, 다른 이들도 저거 죄인! 저거.’그랬단 말이에요. 그게 세리예요.

유대인들은 안식을 행위, 율법 지킴, 제사라는 걸 지불(支拂)하고 사려고 했던 자들이고, 세리들은 다른 종류의 안식이지만, 자기들의 돈으로 그걸 사려고 했던 자들이죠? 둘은 같은 자들이에요. 이 율법주의를 부수기 위해, 하느님이 세리를 끌어다 쓰는 거예요.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세리를 부르시고, 진짜 세리인 바리새인들 저주(詛呪)하죠? 그 말은 너희들이 진짜 세리야!’ 가르치기 위함이었어요. 그래서 항상 세리가 나오는 데는 바리새인이 같이 등장해요. 항상. 주님이 저 세리가 바리새인보다 의롭다.’ 그래요. 아니 거기서는 바리새인 아예 삭제돼요. ‘의로운 자는 저 세리다. 저 세리가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자기의 성전으로 내려가는 자야!’라고 이야기해요. (루가 18:9-14참조)

그렇게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된 자에게 일어나는 첫 번째 반응(反應)이 뭐라고 그랬어요? ‘, 내가 원수였네!’ 그러면 그 이웃 사랑하라고 그랬잖아요? 말씀을 줘야죠? ‘, 내가 원수였네!’ 세리가 그러잖아요? ‘내가 죄인입니다. 하느님.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원수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이걸 사랑하려면, 말씀을 줘야죠.

 

(루가15:1-2) 1 루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말씀을 들으러 온 걸, 예수님이 그들과 음식을 나누었다고 이야기를 해요. 그들에게 먹을 걸 줬다는 거예요. 진리를 줬다는 거예요. 사랑을 줬다는 거예요. 물론 다 상징(象徵)이에요. 내가 가난한 자라는 걸, 아는 거, ‘푸토코스라는 걸 알게 됐어요. 세리거든, 난 죄인이에요. 죄인 중에 괴수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살아나려면, ‘푸토코스,’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그것 찾으러 가야죠? 그래서 세리, 즉 죄인이 말씀 들으러 가는데, 바리새인들은 걔네들은 그거 주면 안 돼. 그거 먹을 자격(資格) 없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고거 바리새인예요. 그런데 오늘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뭐라고 그래요? 의인(義人)이 어디 있어? ‘하느님의 말씀, , 해는, 빛은 선악 구분 없이 그 위에 내리는 거야.’라고 이야기 했잖아요? 바리새인이 그거 동의(同意)할 수 없어요.’라는 그 사람들로 나온다니깐요. 여기서.

 

(루가19:1-2, 5-6, 8)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이스테미,’ ‘티데미호 코스모스로 뭘 깨달아, ‘, 이게 진리 이스테미라고 했죠? 위로 서는 거예요. 그게 스타우로스, 십자가를 낳는 단어라고 했잖아요? 세리가. 일부러 성경이 그런 단어를 쓰는 거죠. 이스테미, 서서, 이제 섰어요. 그게. 죄인이 위로 섰다니깐요. 언약 안에서 선 거죠? 절반이라는 이 단어는 헤미쉬인데, 이게 하마라는 단어에서 나온 건데, ‘같은 것이라는 거예요. 딱 반이 아니라 내 소유, 그가 부자라고 그랬죠? 그런데 어떤 부자냐면, 예수님을 찾아와서 네 소유 다 팔아 줘라~’ 했을 때 못 준 부자가 아니라, 자기 소유를 다른 이들에게 그 같은 것으로 줄 수 있는 진짜 부자의 모형으로 나오는 거예요. ‘내 소유를 같은 것으로, ‘푸토코스, 가난한 자에게 주겠습니다.’ 그래요. 세리장이. 그래 놓고 뭐라고 그러냐면? 횡령이라는 게 엉뚱한 말로 준적이 있으면,’ 그러니까 쉬코판테오거든요. ‘쉬코판테오!’ 이게 쉬콘이 무화과고, ‘판테오드러내다.’ 그러니까 무화과로 드러내다.’ 무화과는 항상 율법의 모형이죠? 열매도 아닌 게 열매인 척 하는 것. 내가 율법으로 잘못 전한 적이 있으면, 내가 그것으로 가서, 이제 내 안에 들어왔어요. 주님이~. 그러니까 네 배()가 아니라, ‘넷으로 넘겨주겠습니다.’예요.

넷이 뭐라고 그랬어요? 하늘의 셋이 땅에서 완성된 게 넷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겉옷도 넷으로 넘겨주죠?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 이것도. 보세요. ‘살인하지 마. 희생제사 드리지 마.’ 마태오. 유대인에게 준 책이죠? ‘간음하지 마.’ 마르코. ‘너희들 율법 빠지면 안 돼.’ 그 다음에 거짓증거하지 마,’ 거짓증거 안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내 것을 모두 들어내 주는 거. 가감(加減)없이. 이걸 헬라어로 친구(親舊)’라고 그래요. 내 걸.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벗이라고 하신 그 분이, ‘내가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다 알려주지 않겠니?’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루가복음이 어떻게 시작해요? ‘데오 필로,’ 하느님의 친구, ‘내가 다 밝혀줄게.’라는 뜻이에요. 거짓증거, 살인, 간음, 거짓증거,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 이게 넷이라니깐요. 그 이야기가 사복음서에 그대로 나오고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똑같이 그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사람이 썼다고 하겠냐고, 이 책을?

그래서 세리는 이같이 안 해.’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왜 하필 세리일까? 이건 구약에서 하느님이 세리와 세(), 세금(稅金)으로 진리를 설명하셨기 때문에 그걸 그냥 갖다가 쓰시는 거예요

 

(민수기 31:40) 40 또 사람은 만 육천 명이었는데, 주님을 위한 공물은 서른두 명이었다.

그러니까 세()는요, 성전을 이루고 성전을 완성하는 거, 그 세금을 받아서 성전을 유지(維持)했단 말이에요. 성전 지을 때도 그 세 받아서 성전 지었잖아요. 반 세겔! 그게 성전 지을 때 받았던 성전세란 말이에요. 그 다음부터는 안 내도 되는 건데, 이 사람들이 성전은 바로 우리들의 힘이 모아져서 지어지는 거다.’, 그걸 붙들기 위해서, 계속 자기들이 낸 거예요. 그냥요. 성전세는요. 레위인들이 그걸 받았단 말이에요. 성전세를. 반 세겔씩.

그런데 그 세에 사람이 들어가 있다는 걸, 여러분이 주의 깊게 보셔야 돼요. 하느님의 성전은 너희들이 성전으로 지어져 간다고 그러죠. 그러니까 진짜 성전에서 요구하는 성전세는 사람이에요. 성도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세금, 성전세라는 것으로 모형화하여 뭔가를 설명하는 거예요. 지금요.

그런데 그 표면적, 구약의 표면적 성전은 어떤 사람들로 이루어졌어요. 레위인들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레위인이 성전을 이루는 성전세의 역할도 한 거고, 그 성전세를 거두는 세리의 역할도 한 거예요. 레위인이. 그 레위인은 곧 우리잖아요? 하느님께 드려진 자! 그죠? 그래서 그 레위라는 이름 자체가 연합, 덮음, 휘장다 성막(聖幕)을 덮던 용어들이죠? 레위라는 이름 자체가 성전이에요. 그들이 거두어 간 성전세가 반 세겔이었어요. 그러니까 레위 사람들이 바로 반 세겔이었던 거고, 성전세였던 거고, 그 세를 징수하는 세리였던 거예요.

 

(마태 17:24-27)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 서냐, 아니면 남들에게 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 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아들들은 세를 면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아들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이 성전을 구성하고 이루는 세금이죠? 그들이 레위인들이었잖아요? 아들들을 대신(代身)하는 자들이었잖아요? 그러니까 그들은 그 유대인들이 걷었던 그 성전세 안 내도 되는 자들이란 말이에요. 세상 임금들이나 그 세 받아서, 아들들이 아닌 자는 율법의 행위만 내 놓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거 받아서 성전 이룰 거란 말이죠. 그러나 아들들은 자기들이 세금(稅金)이고, 자기들이 세리(稅吏)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거 안 내도 되는 거예요.

성경에는 그런 말이 안 나오지만, 본문이 그래요. 첫 번째 낚시를 던져 걸려오는 그 자의 입을 열어, 속전을 빼낸 다음에, 그 자를 제거하라. 그리고 그걸, 반 세겔인데, 한 세겔이잖아요? 그걸 너와 나와 속전으로 줘라. 세금으로 줘라. 그래요. 연합(聯合)입니다.

첫 번째 걸린 자가 누구예요? 예수죠? 제거되는 자. 속전을 내어 놓고 제거되는 자, 그러나 그에게서 속전이 나에게 왔어요. 그 속전이 뭐예요? 말씀, 진리, 그리스도. 그러나 한 세겔이네. 연합. ‘이게 성전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게 세리의 이야기란 말이에요.

죄인을 다른 마음으로, 다르게 보게 만들기 위해 왔다.’라는 말이에요. 정확히 직역하면. ‘이가 죄인으로 보이냐? 내가 보기에는 아닌데, 얘가 진짜 레위인데, 얘가 진짜 성전세로 인구조사(人口調査) 될 자인데, 너희들 눈에는 죄인들로만 보여?’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바리새인들, 율법주의자들은 사랑을 흘려보내지 못하는 거예요. 산상수훈은 아니다.’라는 거예요. ‘너희들은 해라.’ 흘려주라는 거예요. 그런 걸로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고. 내 안에 그 한 세겔이 들어와 있으면, 내 입을 벌려, 이제 다른 이에게 그거 또 넘겨주면 되잖아요? 그러면 그들이 하느님의 인구조사에 합당한 자가 되어, 성전으로 지어져갈 거 아닙니까? 그 얘기하는 거예요. ‘세리는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라고 했을 때 세리는 하늘의 성전세를 거두는 진리의 사람들을 말하는 거예요. 거두어들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보배를 이렇게 신문지에 싸갖고 우리에게 줬더니, 보배는 못 알아보니까 버려 버리고, 신문지를 벽에다가 걸어놓고, 그걸 섬기고 있네. 예수가 그걸 담았던 그릇이란 말이에요. 보배는 그 진리라니깐요. 그리스도의 말! 성령! 그거! 그게 보배지? 여러분이 행위로 섬기는 그게, 그건 가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여러분이 예수와 십자가를, 그 내용을, 진리로 여러분 안에 이해하고 깨닫고 있지 못하면, 그건 신문지 조각에 불과한 거예요. 그거 갖고 자랑하지 마세요. 무슨 십자가는 무슨 십자가? 그게 나랑 상관이 있어야 십자가지. 그것이 완전하신 하느님의 완전인 거예요. 진리가 완전이신 하느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걸 내 안에 갖고 있으면 내가 완전하다고 하는 거예요. 이것이 되면 여러분은 에스카톨로스 코드란테스,’마지막 걸 채워서 완전한 성전, 사각형이 되는 거예요. 재미있죠? (하하하)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런 거 말고, 그냥 , 세상을 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기쁘게 행복하게 사람대접 받으면서 그런 방법을 이야기해 주세요.’ 그러면 저는 여기 있을 필요가 없어요. 그런 거 잘하는 분들 소개해 드릴게요. 그리로 가시면 돼요. 저는 이 이야기 이외에 할 이야기가 없어요. 여러분도 제발 그 하나 속으로 들어가, 그 하나를 여러분 마음으로 가지시길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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