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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6.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6-21 조회수2,368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6월 21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제1독서 2코린 11,18.21ㄷ-30

18 많은 사람이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니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21 누가 감히 자랑한다면,

어리석음에 빠진 자로서 말하는

것입니다만,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22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는 말입니다만,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24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25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26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27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28 그 밖의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

 29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다른 사람 때문에 죄를 지으면

나도 분개하지 않겠습니까?

30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복음 마태 6,19-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20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존경’이라는 단어의

 영어는 respect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한 번 더 라는

뜻의 ‘Re’와

지켜본다는 뜻의 ‘Spectate’가

결합된 글자입니다. 결국 한 번

더 바라보면 빛나는 점을 발견하게

되어서 존경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이 한 번 더

 바라보는 것을 상당히 힘들어하면서

불가능한 것처럼 말하곤 합니다.
실제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내게 아픔과 상처를 주었던 사람에

대해서 이런 말을 종종 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앞으로 다시는 보지 않을 거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 안에서 그러한

생각을 말로써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사람을 그 누구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용서의 삶,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사람들은 그를 다시 보면서

존경을 표시합니다. 이렇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서를 실천하는 사람은

 존경을 받지만, 복수를 꿈꾸면서

남들을 향한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내 자신이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내 자신의 마음부터

 바꿔야 합니다. 즉, 다시 한 번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칭찬할 수 있는

 한 가지라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남을 칭찬하는 것이 자신의

자존감을 크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에게 보이는 자신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가 있게 됩니다.
이렇게 내 이웃을 다시 한 번

 바라보는 삶은 지금을 살고 있는

스스로에게도 유익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좋아하시는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하는 하늘에 쌓는

보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신 ‘눈은 몸의

등불이다.’라는 말씀에 더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지금 어떻게 보십니까?

 혹시 대충 보고서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건을 구입할 때에도 꼼꼼하게 살펴야

가장 좋은 것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얼핏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보고 또 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우리들을 바라보는

 사랑의 시선에 동참해서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갖춰야 남들로부터도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매사가 당신 뜻대로

되기를 바라지 마라.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기를 바라라.

그러면 모든게 괜찮을 것이다.

(에픽테토스)

(눈은 몸의 등불)


충분히 다 할 수 있습니다.

글 쓰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

그 이유를 물으면 하나같이

이렇게 말하지요.
“글 쓰는 재주가 전혀 없어요.”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중국 송나라 때의 문인

 구양수는 글 잘 짓는 방법으로

삼다(三多)를 꼽았습니다.

 그 유명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입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에 익숙해져야 글쓰기의

기초를 이룰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글 쓰는 것을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글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은

이것들을 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재주와 상관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노력과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이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도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붙여서

하지 못할 뿐,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노력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충분히 다 할 수 있습니다.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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