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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제1독서(이사49,1~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6-24 조회수1,720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제1독서(이사49,1~6)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1~4.6)

 

 

 

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이다(49,1~7).

 

여기서는 주님께서 종을 태중에서부터 부르셨다는 것(1~3절)과 주님의 보상 선언(4절)과 주님께서 종의 사명을 이루고 영광과 승리를 얻게 하신다는 사실(5~7절)이 제시된다.

 

 

 

이같은 내용으로 시작하는 본문은 주님의 종 자신이 앞으로 제시할 내용을 이 세상의 모든 족속들이 마땅히 들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본문의 표현은 법정의 상황에서 증인을 소환하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데,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본문은 하느님께서 메시야를 부르심이 모든 이들이 다 받아들일만큼 매우 분명한 사실임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귀를 기울여라.'(1)

 

 

 

'섬들'에 해당하는 '이임'(yiim)매우 먼 지역에 떨어져 있는 민족들, 세상의 땅 끝에 사는 민족들을 상징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전혀 관계없는 민족들, 주님의 이름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민족들, 이스라엘이 생각하기에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민족들을 대표하는 표현들이기도 하다.

 

 

 

'귀를 기울여라' 해당하는 '웨하크쉬부'(wehaqshibu)'깊은 주의를 기울이다', '청종하다', '순종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카샤브'(qashab)의 사역 명령형이다.

 

즉 본문은 점층적 동의 대구법이 사용되어 모든 민족들이 다 주의를 기울여 메시야의 말씀을 들어야 함을 촉구하고 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1)

 

 

 

주님의 종이 자신의 소명의 기원을 강조하여 밝히는 표현이다. 원문은 동사 앞에 주어가 선행하여 부르신 주체가 하느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부르시고'라는 표현은 소명과 관련되어 있으며, '모태에서부터'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구원에 의한 절대적 선택과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크신 섭리 나타내고 있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간택하심에 따른 주님의 종의 권위를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모태에서부터'라는 표현은 종의 사명(소명)이 그의 일부가 아니라 그의 삶 전체, 존재 자체가 사명(소명)을 위한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해당하는 '히즈키르'(hizkir)'기억하다'라는 의미의 '자카르'(zakar)의 사역형으로서 '특별히 기억하다', '언급하다', '부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름'에 해당하는 '쉠'(shem)은 단순히 호칭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것은 그 이름으로 불려지는 대상의 존재 자체나 인격이나 일 등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이름을 지어주셨다는 것은 그의 일과 삶을 완전히 책임지고 정해 놓으셨다는 의미이며,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은 독립적이고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본문도 주님의 종의 사명은 종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여하신 것임을 보여준다.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2)

 

 

 

본절에서는 주님께서 주님의 종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예비하시고 보호하셨음을 보여준다. 주님의 종의 사명이 '말로 하는 활동'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이사50,4). 여기서 '날카로운 칼'이란 큰 영향력이 있는 말씀을 상징한다.

 

따라서 본문은 주 하느님께서 주님의 종을 하느님의 권능의 말씀으로 채우셨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이 하느님의 권능의 말씀(히브4,12)으로 무장한 주님의 종은 그 말씀을 선언함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될 것이다.

 

메시야의 전쟁은 무력을 통한 전쟁이 아닌 말씀을 통한 영적 전쟁이 될 것이란 예언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당신의 손'에 해당하는 '야도'(yado)의 원형 '야드'(yad)'권능''능력' 그리고 '소유'의 의미도 내포한다.

 

'그늘에'에 해당하는 '베첼'(betsel)의 원형 '첼'(tsel)'어둡다'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여 '그림자', '그늘'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늘이 더위로부터 막아준다는 의미에서 파생한 것으로서 위험을 피하게 하여 안전하게 지켜주는 보호를 나타낸다.

 

 

 

 

 

'숨겨 주셨다' 해당하는 '헤흐삐아니'(hehbiani) '하바'(haba)의 사역형으로서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보호하여 숨겨줌을 나타낸다(여호6,17; 1열왕18,4).

 

주님께서 그 종을 가장 적합한 순간에 세상에서 일을 하게 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구원 사업의 과정 하나 하나에 완전히 섭리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2)

 

 

 

'화살'에 해당하는 '레헤츠 빠루르'(lehets barur) 정성스럽게 마름질하여 끝이 날카롭게 된(갈고 닦은) 화살촉을 의미한다.

 

이런 화살은 한 번의 발사로 적의 심장을 뚫어 버릴 수 있는 치명적 무기이다.

 

 

 

상반절의 '날카로운 칼'이라는 표현과 동의적 대구를 이루고 있는 이 표현은 영적으로 원수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할 능력의 말씀을 상징한다.

 

 

그리고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라는 표현은 '당신의 손 그늘에 숨겨 주셨다' 표현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주님의 종을 사용하시기 전까지 철저하게 보호하여 주심을 나타내고 있다.

 


 

만약 아무렇게나 보관한다면, 화살은 부러지거나 혹은 날이 무디어져서 전투의 도구로서 제대로 사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정한 날에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실 수 있도록 완벽히 보호하여 보관하신다는 것이다(갈라4,4;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3)

 

 

 

여기서 '종' 해당하는 '아브띠'(abdi)'섬기다', '일하다'의 의미의 '아바드'(abad)에서 유래하며, 주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소유물인 노예나 왕국의 가신(1사무19,1)을 언급하거나 상대방에 대한 겸손을 나타낼 때에 사용한다(창세 33,5). 그러나 본문에서 이 종은, 주님을 지칭하는 1인칭 접미어와 결합하여 '주님의 종'으로 표현되고 있다.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에 해당하는 동사 '에트파아르'(ethpaar)의 원형 '파아르'(paar)어떤 물체가 찬란하게 반짝이는 모습을 나타내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아름답게 장식하거나 영화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재귀형으로 사용되어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되 그의 종을 통해서 그렇게 하실 것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너에게로'로 번역된 '뻬카'(beka)'메시야의 삶과 사명을 통해서' 라는 의미이다.

 

오직 주 하느님의 말씀대로만 사는 메시야의 삶과 무죄한 자로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은 메시야의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주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요한17,4).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4)

 

 

 

본절에 제시되는 '주님의 종'의 한탄은 실패할 것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며 메시야의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될 것을 예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메시야의 고난과 메시야의 인성(humanity)과 관련된 예언이다.

 

 

 

메시야는 이 땅에 오신 처음부터 구원사업을 마치는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했을 뿐 아니라(요한1,11; 마태26,56), 무죄한 자기 몸을 바쳐 십자가상에서 대속의 죽음을 이루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인류를 향하신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완성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의심하는 자가 있었다(마태28,17). 

 

그런 측면에서 그의 죽음은 헛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본절의 상반절은 메시야의 한탄을 나타내는 예언이지결코 메시야의 사명이 실패할 것을 말하는 예언이 아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소명을 받은 메시야가 이러한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는 사실은 바빌론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내 권리' 해당하는 '미쉬파티'(mishipati)의 원형 '미쉬파트'(mishipat)법정에서 법과 규정에 따라 판결 및 심판을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샤파트'(shapat)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심판', '판결', '판단', '공의'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문에서는 메시야가 행하는 구속 사업의 정당성, 그것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내 보상' 해당하는 '베울라티'(beulati)의 원형 '베울라'(beula)공들여 행한 일에 대해 주어지는 정당한 보상(reward)을 의미한다(레위19,13; 잠언11,18; 에제29,20).

 

본절의 상반절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외견상으로는 자신의 사명이 완전한 실패로 보이는 상황에 직면해 있을지라도, 주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진 주님의 종궁극적으로 자신의 일을 통한 열매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메시야가 받을 보상은 죄인들이 새 생명을 얻는 것과 자신이 하느님 보좌 오른편에 앉아 온 세상을 통치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히브12,2; 1베드2,24).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6)

 

 

 

'지파들을'에 해당하는 '쉬브테'(shibte)이스라엘의 12지파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지파간 골육상쟁의 비극이 끊이지 않았으며(판관12,6; 21,15), 북과 남으로 나뉘어 결국에는 둘 다 멸망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종을 통하여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끊으시고, 열 두 지파를 단 하나의 지파도 끝이 나지 않게 완전하고도 온전히 회복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오늘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에 제1독서로서 이사야 예언서의 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를 묵상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류의 첫 사람의 교만과 불순명과 자유 남용으로 원죄를 지어 멸망과 저주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세속사(인간사)를 무죄한 메시야의 겸손과 순명과 자유선용으로 구원의 역사로 바꾸시기로 하느님께서 영원으로부터 계획하셨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의 교량 역할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메시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길을 닦는 선구자 역할을 하도록, 여자가 낳은 사람중에는 가장 큰 사람으로 엘리사벳 모태에서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 이름을 지어 주셨다는 이사야서 49장 2절 이하의 말씀과 사명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교회의 전례력안에서 성인 성녀들은 모두 죽어 천국간 날을 기념하여 축일이 정해지는데, 유일하게 죽은 날(예수님은 성금요일; 성모님은 8월15일 성모승천; 세례자 요한은 8월29일 수난기념일)과 함게 탄생일을 기념하는 분은 이렇게 세 분 뿐이시다.

 

바로 원죄없으신 예수님의 성탄(12.25), 성모님의 성탄(9.8)과 오늘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이다.

 

 

 

세례자 요한은 엘리사벳에게서 수태되는 순간은 원죄를 가졌으나 예수님을 수태한 성모님의 방문으로 말미암아 엘리사벳의 배안에서 뛰놀았다는 말씀 안에서 원죄의 사함을 예수님 때문에 받음으로써 출산시에는 원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엘리사벳에게서 하느님 하시는 일은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어서, 동정녀이신 성모님의 구세주 잉태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것을 예표하는 징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시에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하느님의 정의와 심판을 근거로 회개를 선포하는 삶을 산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전제로 해서 회개를 선포하는 삶을 사신 예수님을 더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끝으로 그의 참수 치명은 구약 시대의 마감을 선포하고, 공적인 메시아 예수님의 시대가 시작됨을 알려주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상 수난과 죽음을 미리 예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레자의 요한 탄생 대축일을 보내면서 다음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마르1,7~8)

 


 

주님 대전에 겸손되이 자신의 성소의 한계를 인정하며,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그리스도가 점점 커져야한다고 말한 세례자 요한의 영성을 본받아야 하겠다.

 

그리고 주님과의 일치라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전제 조건이 의화(義化; justification)임을 설교와 구체적 실천적 삶으로 드러낸 세례자 요한의 다음의 메세지를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살아야 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들 수 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마태3,8~1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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