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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6.2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6-24 조회수2,693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제1독서 이사 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제2독서 사도 13,22-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에게

22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복음 루카 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

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갑곶성지에서는 미사

한 시간 전부터 고해성사를 줍니다.

하느님과의 화해를 위한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갑곶성지에 부임하자마자 미사 전

30분이 아닌 1시간으로 시간을 늘렸습니다.

그리고 ‘고해성사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는 안내 문구를 고해소 앞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꽤 많은 분들이

일찍 오셔서 고해성사를 보십니다.

물론 시간적 제약 없이 고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사 전 20분까지는

최대한 많은 말씀을 하실 수 있도록 하고,

그 이후는 빨리 진행을 합니다.
며칠 전에도 어떤 분이 일찍 들어오셔서

저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분의 아픔과 어려움을 듣고 또 질문도

하면서 조금 길게 고해성사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그런데 누군가가

밖에서 고해소 문을 신경질 적으로

 세게 두드리는 것입니다. 고해 중이라는

표시가 문밖에 되어 있었고, 더군다나

 안을 볼 수 있는 유리문이 있어서

고해성사 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문을 두드린 것일까요?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빨리 끝내달라는

표시였던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서

그분께서는 “너무 길게 말했나 봐요.

그만해야겠어요.”라면서 마음을 접더군요.

안타까웠습니다. 밖에서 기다리는 분의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고해성사를 보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불안하겠지만,

안에서 고해성사를 보는 분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합리적이라고 또한 정의에 맞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지요.

이 과정 안에서 남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이는

사람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입장은

어떻게 고려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세례자

요한의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

불가능하다면서 의심을 했었지요.

하느님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되었습니까? 바로 세례자

요한의 이름을 지을 때, 하느님의

입장을 받아들였을 때였습니다.
주인공 세례자 요한은 늘 하느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실 주님을 잘 준비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내려놓고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 꿀을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주님의 자리를 잘 준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주님으로 인정받아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자신의 입장만 내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보다 하느님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보십시오. 하느님의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헬렌켈러)

(세례자 요한의 명명식)


어떤 분이 순대를 사기 위해

순대집을 찾았습니다.

순대를 썰고 있는 주인아주머니께

이 분은 간과 허파도 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어떤 단어를 말하려고 하는데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말입니다.

 이 분 역시 간, 허파라는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간, 허파를 주지 않을 것 같아서

급한 마음에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주머니! 장기 좀 많이 썰어주세요.”
이 말에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네요.
“네. 장기 많이 드리겠습니다.”
간, 허파를 장기라고 부르는 것,

문제는 크게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누가 이 상황을 보지 않고 듣는다면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말이 되겠지요.
이렇게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똑같은 말이라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말, 나의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세례자 요한이 태어나신 자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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