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6.2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6-27 조회수2,076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6월 27일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 16,1-12.15-16

1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는

 그에게 자식을 낳아 주지 못하였다.

사라이에게는 이집트인 여종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은 하가르였다.

 2 사라이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여보, 주님께서 나에게 자식을

갖지 못하게 하시니, 내 여종과

한자리에 드셔요. 행여 그 아이의

몸을 빌려서라도 내가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아브람은 사라이의 말을 들었다.

3 그리하여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는 자기의 이집트인

여종 하가르를 데려다,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아내로 주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자리 잡은 지 십 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4 그가 하가르와 한자리에 들자

 그 여자가 임신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제 여주인을 업신여겼다.
5 그래서 사라이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렇게 부당한

일을 겪는 것은 당신 책임이에요.

내가 내 여종을 당신 품 안에

안겨 주었는데, 이 여종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나를 업신여긴답니다. 아,

주님께서 나와 당신 사이의

시비를 가려 주셨으면!”
6 아브람이 사라이에게 말하였다.

“여보,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 손에 달려 있지 않소?

당신 좋을 대로 하구려.”
그리하여 사라이가 하가르를

구박하니, 하가르는 사라이를

 피하여 도망쳤다.

 7 주님의 천사가 광야에 있는

샘터에서 하가르를 만났다.

 그것은 수르로 가는

길가에 있는 샘이었다.

 8 그 천사가 “사라이의 여종

하가르야,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고 묻자,

그가 대답하였다. “저의

여주인 사라이를 피하여

도망치는 길입니다.”
9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여라.”

10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의 후손을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게 해 주겠다.”
11 주님의 천사가 또 그에게 말하였다.

 “보라, 너는 임신한 몸 이제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여라. 네가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셨다.
12 그는 들나귀 같은 사람이 되리라.

그는 모든 이를 치려고 손을 들고

모든 이는 그를 치려고 손을 들리라.

그는 자기의 모든 형제들에게

맞서 혼자 살아가리라.”
15 하가르는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아브람은

 하가르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다.

16 하가르가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아 줄 때, 아브람의

나이는 여든여섯 살이었다.

복음 마태 7,21-2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28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자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29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지난 번 사제연수 때에 친한

후배 신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교구청에 있을 때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또 술도 했던 후배 신부지요.

그러나 제가 강화도에 있는

갑곶성지에 오고 나서는 인천과

 강화라는 거리 때문인지

자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연락 좀 하면서 살자.”
후배 신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형님! 바쁘다 보니 연락도

잘 못해서 죄송합니다.

조만간 한 번 찾아갈게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내가 먼저 연락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내게 연락하길 바라면서 정작

내 자신은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주고받음’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요.

즉, 주는 것이 있어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저 역시 이 부분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함을 후배 신부와의 대화를

통해서 깨닫습니다. 이렇게 받는 것에

집중하게 될 때 주고받음의

인간관계는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자신이 먼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주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주는 것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주는 것은 어떤 물질적인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공감하고,

지지하고, 배려하는 마음 역시

받으려고만 하지 않고, 무조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주고받음의 인간관계는 튼튼하게

유지될 수가 있습니다.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 7,21)
오늘 우리들에게 전해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묵상해보았으면 합니다.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나만 잘 사는 삶,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는 삶,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모두 망하는 삶 등은 결코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십자가를 통해서 직접 보여주신

사랑의 삶입니다. 내가 받을 사랑만을

 떠올리며 사는 삶이 아닌, 내가 줄

사랑을 떠올리며 사는 삶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십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고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 안에서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

(애니 딜러드)

(주님의 사랑 앞에 우리의 사랑은 어떠한가요?)


하느님 앞에서...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의

이국종 교수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심각한

부상당한 석해균 선장을 오만에서

수술한 것, 2017년 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 당시

귀순한 조선인민군 병사를 수술한 것으로

유명한 분이지요. 이 책을 통해서

권역외상센터의 현장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특히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표에만 관심 있는 정치인,

책상머리에 앉아서 모든 것을

다 아는 듯이 행정처리 하는 공무원,

생명을 돈의 가치로만 판단하는 사람,

헬리콥터의 소음 문제로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 이 모두가

 ‘나’ 중심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요?
생명 앞에 돈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명예는 뭐가 중요할까요? 자기만을

드러내고 자시만의 편리와 안락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도

 모르게 생명을 잃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을 통해 나중에

하느님 앞에 섰을 때

혹시 꾸중을 듣지 않을까요?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의 이국종 교수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