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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6.2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6-28 조회수2,128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6월 28일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제1독서 에제 34,11-16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12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
13 그들을 민족들에게서

데려 내오고 여러 나라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의 산과 시냇가에서,

그리고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14 좋은 풀밭에서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은 그곳 좋은

목장에서 누워 쉬고,

이스라엘 산악 지방의 기름진

풀밭에서 뜯어 먹을 것이다.
15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6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제2독서 로마 5,5ㄴ-11

형제 여러분, 5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복음 루카 15,3-7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3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물건 구입할 일이 있어서

어느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이 물건의 종류가 많아서

어떤 것을 구입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직원이 다가와서 말합니다.
“사장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제게 하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장’이 아니라

 ‘신부’니까요. 그런데 다시 한 번

“사장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묻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닙니까?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뒤에 저를 향한 물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 복장이 아닌

클러지셔츠를 입고 있는 저를 보고서는

직원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사장님! 신부님이신가 봐요.”
그런데 신부임을 알면서도 물건을

계속 설명하는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나라 취업 인구 중에서

26%가 자영업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억이 났습니다. 그만큼 사장님이

많아서 남자가 오면 무조건 ‘사장님’이

라고 말하라고 교육을 받았나 봅니다.

습관이 되었는지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이야기 중간에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다음에 올게요.”라고 말하고는

그 가게에서 나왔습니다.

 신부인 제게 계속해서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손님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냥 습관처럼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습관처럼 대하는 마음, 형식적으로

 대하는 마음에서는 진정성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모습에

대해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고 있을까요?

그냥 습관처럼 “하느님!”만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전혀 사랑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로,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는 날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마음은 무엇일까요?

그래서 오늘 복음은 착한 목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즉,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와 같이 주님께서는

당신 품을 떠난 죄인들을 보살피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진정성 넘치는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우리 역시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습관적이고 형식적으로 사랑을

말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웃을 향해서 또한 주님을 향해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에

주님께서는 더욱 더 기뻐하십니다.
특별히 오늘은 사제성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제들이 착한 목자의 모습으로

 열심히 살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영혼이 머무르고

싶게 만들려면

육체를 잘 보살펴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사람과 사랑

작가 김상현의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라는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발음하면 입술이 닫힌다.

 ‘사랑’을 발음하면 입술이 열린다. 사

람은 사랑으로 여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고 계속해서 사람과

사랑을 소리 내어 발음해 봅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사람은 입술이

닫히고, 사랑은 입술이 열리더군요.

그러면서 마음이 닫혀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떠올려 봅니다.

 이웃과의 갈등으로 인해,

세상 삶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닫혀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열 수가 있을까요?

작가가 말하고 있듯이 사랑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해와

지지를 통해, 존중과 칭찬이

동반하는 사랑을 통해서만

 마음을 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함께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왜 사랑하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리고 당신 자신을 죽음으로

몰면서까지 사랑을 보여주셨을까요?

당신의 진정성 넘치는 사랑으로만이

우리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사랑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착한 목자이신 주님을 닮으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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