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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잘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01 조회수1,307 추천수0 반대(0) 신고

 

 

며칠 전에 어떤 글 하나를 읽었습니다. 신앙에 관한 글은 아니었습니다. 근데 내용 하나를 보면서 문득 신앙과 결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나름 생각한 것을 공유를 하고자 합니다. 예전에는 공부나 학업을 보통 보면 학창 시절에만 열심히 하고 학업을 마치면은 학업과는 마냥 담을 쌓는 일이 보편적인 시대가 있었습니다. 근데 요즘은 어떤가요?

 

일명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상용될 정도로 정말 이제는 평생을 해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같은 내용이지만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끊임없이 손에서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아야 됩니다.

 

물론 이런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결국은 경쟁사회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게 시대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면을 놓고 봤을 때 비단 세상살이에서만 이럴까요? 저는 이런 면을 보면서 신앙생활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결국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저 단순히 신앙생활을 하는 몇 가지 신자로서의 의무와 기도생활 등 이런 기초적인 생활은 신자로서 기본적인 생활도 되겠지만 이런 것만 해서는 신자로서의 신분은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신앙이 성장을 하더라도 성장속도가 좀 더디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또 어쩌면 성장은 고사하고 세례 받았을 때의 신앙 그때의 수준에서 아예 정체되어 성장이 멈출 수도 있을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도리어 세례를 받고 나서 더 자신의 신앙이 성장은 고사하고 후퇴할 수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제도권 내에서 교회의 일부분 중에 여러 가지 교육과 피정 교육으로 자신의 신앙을 좀 더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저희 교구 교구보를 꼼꼼히 볼 때도 있지만 대충 볼 때도 있습니다. 어제 주일에 보니 오늘 저희 본당에 제가 몇 차례 올린 적도 있지만 이청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께서 성령기도회에 강사로 오시고 또 미사도 집전하신다는 공고를 봤습니다. 저희 본당에서 하십니다.

 

제가 못 본 적도 있지만 저희 본당에서 신부님께서 강의를 하는 걸 제가 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무튼 이런 것처럼 이런식으로 교육을 통해서 나름 신앙을 다듬어나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교육도 하면서도 이와는 별개로 자신이 영성서적을 통해서 나름 영적인 지식을 함양하는 길도 있을 수 있고 성경공부를 통해서도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 충분히 밑거름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할까요?

 

공부해서 해가 될 거는 없지 않느냐는 그런 식의 답변보다는 좀 더 다른 면을 한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사실 이런 내용의 글을 하나 봤습니다. 저는 짧은 이 글에서 오늘 제가 생각한 것을 생각하게 해 준 단초가 되었습니다. 이런 내용의 글입니다.

 

장인어른과 사위 사이에 바둑에 관한 예를 하나 들었습니다. 원래 사위가 장인어른보다도 더 오랫동안 바둑을 둔 모양입니다. 근데 재미난 사실은 물론 바둑을 오랫동안 두었다고 해서 그 시간에 비례해서 실력이 더 있다고는 말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시간에 비례를 해서 만약 실력이 월등하다면 사위의 바둑 실력이 더 우수해야 될 겁니다.

 

근데 사위보다 늦게 바둑을 시작한 장인어른의 바둑 실력이 더 우수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었겠죠. 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지 사위가 나름 분석을 해보니 장인어른께서는 바둑을 나름 체계적으로 처음부터 배웠던 것입니다. 자기는 그냥 알음알음으로 어깨너머로 배운 아마추어 바둑 실력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내용을 보면서 문득 신앙생활도 이런 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천주교에 와서 첫째가 꼴지가 되고 꼴찌가 첫째되는 내용의 깊은 뜻을 알았습니다. 개신교 성경은 표현이 좀 다른데요 제가 90년대 중반에 제 기억으로 개신교 성경에서는 이 내용을 다음과 같이 번역된 걸로 지금 기억하고 있습니다.

 

먼저 된 자 나중 된 자 이런 식으로 성경에 나옵니다. 이걸 이렇게 보통 표현을 하곤합니다. 먼저 된 자 나중 된 자라는 건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신앙생활을 누가 먼저 시작을 하게 된 건지 그 여부에 따라 시간의 순서에 따라서 어떤 신앙의 경지나 반열에 오르는 게 아니라고 보통 표현합니다.

 

그래서 늦게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기죽지 말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오히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형편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신앙은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흔히들 그렇게 많이 표현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 신앙에 대해 무엇을 알겠습니까? 아직도 걸음마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감히 신앙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신앙도 나름 조금 전 사위와 장인어른의 바둑 예처럼 흔히들 하는 식의 성당 마당만 밟는 신앙생활을 한다면 나름 신앙생활에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소한 성장도 있을 수는 있지만 좀 거창하게 말해서 괄목상대할 만한 눈부신 성장은 되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에서처럼 어떤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처럼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게 아니라서 신앙공부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는 정석과 같은 게 없어서 막막할 수가 있지만 나름 자신이 생각해봤을 때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 공부를 하는 게 좋은지는 자신이 스스로 이런저런 방법을 사용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에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면서 자신만의 공부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이 어쩌면 좋은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약도 어떤 사람에게는 효험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효험이 없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 신앙공부도 어떤 방법이 좋은지는 자신이 그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안 할 거면 모를까 이왕 할 것 같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 일취월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는 모습이 보여진다면 자신에게도 뿌듯할 일이기에 조금씩이라도 노력을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보면 좋은 말일 것 같아 인용을 해겠습니다. “인간은 어떤 한순간의 노력으로 특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에 의하여 규정된다. 그러므로 위대한 것은 습관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보면서 이렇게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보통 평범한 사람을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평범한 사람과 비범하고 능력이 탁월한 사람의 차이는 바로 반복을 거듭하면서 그 반복이 습관으로 굳어지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이름표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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