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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레지오 훈화를 묵상하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03 조회수2,835 추천수2 반대(0) 신고

 


어제는 레지오를 하는 날입니다. 수녀님께서 얼마 전부터는 훈화 말씀 인쇄물을 주시고 가십니다. 내용을 보면서 뭔가 생각할 내용이 있다고 생각해 대충 포인트만 생각하고 레지오를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생각할 여유가 없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레지오를 마치고 인터넷으로 내용을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훈화의 내용이 나와 있었습니다. 다음은 훈화의 내용 텍스트입니다. 일단 먼저 한번 보시죠.

 

미국 시골의 통나무집에 한 병약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 집 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때문에 집 출입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하느님이 꿈에 나타나 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 때부터 그는 희망을 가지고 매일 바위를 밀었습니다.

 

8개월이 지났습니다.

 

점차 자신의 꿈에 회의가 생겼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바위의 위치를 자세히 측량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바위가 1인치도 옮겨지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현관에 앉아 지난 8개월 이상의 헛수고가 원통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느님이 찾아와 그 옆에 앉으며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렇게 슬퍼하지?"

 

그가 말했습니다.

 

"하느님 때문입니다.

 

하느님 말씀대로 지난 8개월동안 희망을 품고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가 전혀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 말 한 적이 없단다.그냥 바위를 밀라고 했을 뿐이야.

 

이제 거울로 가서 너 자신을 보렴."

 

그는 거울 앞으로 갔습니다.

 

곧 그는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울에 비춰진 남자는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근육질의 남자였습니다.

 

동시에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밤마다 하던 기침이 없었구나!

 

매일 기분이 상쾌했었고, 잠도 잘 잤었지.."

 

하느님의 계획은 '바위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변화시키는것' 이었습니다.

 

그의 변화는'바위를 옮겼기 때문'이 아니라 바위를 밀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진 바위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 바위 때문에 기도하고 단련되어

 

자신이 만들어지고 변화되어지는 주님의 섭리가 개입되어 있음을 우리는 깨닫습니다.'....

 

잘 보셨는지요. 저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하나 생각해봤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어떤 책에 나와 있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개신교에서도 많은 설교 자료로 인용된 자료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 텍스트로만 봤을 땐 논리 구성 전개 과정에 약간 공백이 있어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 이 텍스트 내용만을 가지고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처음에 이 사람은 꿈에 하느님께서 나타나셔서 너 건강이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앞으로 건강하게 되는 방법을 일러줄 테니 그렇게 하렴 하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단지 이 사람은 왜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했을까를 생각해봤습니다.

 

일단 이 이야기 속에 하느님께서 말씀을 하셨으니까 주인공은 하느님 말씀이니까 뭔지는 모르지만 꿈에 나타나셔서 자신에게 해 주신 이야기면 무슨 뜻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해봤을까? 아니면, 첫 부분에서 ‘사랑하는 아들아’ 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나를 고통 속에 머물기를 바라시지는 않겠지 생각하고 실행을 했을까? 아무튼 주인공은 희망을 가지고 바위를 밀었다고 하니까 내용의 문맥상 의미로 판단해볼 때 이렇게 하면 병약한 몸이 건강해질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8개월까지는 실천을 했습니다. 저 같았으면 한 달이라도 했을까 의문입니다. 또 한 달을 설령 했다고 해도 진전이 없으면 낙심해서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도 자신의 한계가 8개월이 한계였나 봅니다. 8개월이 지나서는 지치는 모양입니다.

 

자신이 한 노력이 어느 정도 진척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진척이 없었다고 판단하니 이 사람은 이때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기분일 겁니다. 그러니까 원통해서 울었다고 나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왜 우느냐고 물어보십니다. 저 같았으면 몰라서 물어보시는지요 하고 말씀을 드렸을 겁니다. 이 주인공은 하느님께 원망 아닌 원망하는 마음을 내비칩니다. 바로 하느님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8개월 동안이나 희망을 가지고 밀었는데도 조금도 이동이 되지 않았기에 왜 되지도 않는 걸 하라고 하셨는지 하는 맘에 하느님이 야속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하십니다. 아들아, 내가 언제 너더러 바위를 옮겨라고 했냐? 밀라고만 했지? 거울 앞에 가서 너 얼굴을 한번 보아라 하고 말씀을 하셔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이때 이 사람은 아주 놀라게 됩니다. 자신의 몸이 단단한 근육이 생긴 모습을 보고 말입니다. 이때 이 사람은 무언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8개월 동안 기침도 없고 기분도 좋고 잠도 푹 잘 잔 것을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모습이 이렇게 변화가 되도록 만드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처음에 만약에 하느님께서 이 사람에게 바위를 얼마만큼 움직이면 너의 몸이 건강한 몸이 될 거라고 하셨으면 아마 지레 먼저 지쳐서 바위 미는 걸 포기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움직여져서 이동이 되어야만이 건강해질 건데 그럴 가망이 없기 때문에 희망이 절망으로 변화가 되었을 겁니다. 근데 이 사람은 어느 기간 동안은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하느님께서 밀어라고 한 말씀만 생각하고 밀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된 이유는 어쩌면 단순히 절대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을 했기 때문에 그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습니까?

 

몸이 지금 이렇게 아프고 힘든데 바위를 밀어라고 하니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말씀인지 하고 말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보면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고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습으로 뭔가 활동을 하고 계신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보면 만약 자신의 집 앞에 이런 바위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야기이니 이야기로써 이 상황을 한번 생각해보면 아무리 하느님께서 전지전능하신다고 하시더라도 그나마 바위가 있어서 망정이지 바위가 없었더라면 건강한 몸으로 만들 기회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바위가 상징하는 의미는 누구나가 알 수가 있겠지요? 살아가면서 자신의 앞 길에 놓인 장애물인 골치덩어리 같은 존재이며 또 다른 의미에서는 십자가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근데 결과적으로 보면은 이 이야기에서는 그 장애물이 있었기에 이 주인공이 건강하게 될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은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놓인 장애물도 그저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을 하느님을 따라가는 데 사용하시는 도구로써 사용하신다는 사실과 또 그런 장애물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용을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을 이 이야기를 통해서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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