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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7.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03 조회수2,66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9년 7월 3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제1독서 에페 2,19-22

형제 여러분, 19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복음 요한 20,24-29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살아가면서 제 마음에 큰 울림의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말씀 덕분에 삶을 바꾸어

나갈 수 있었고, 지금의 내 자신을

 만들어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생각나는 분은 지금은

하늘 나라에 계시는 인천교구의

 제2대 교구장 주교님이신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님이십니다.
부제 때에 강론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컸습니다. 당시에 제가

준비할 수 있는 강론은 성경주석서를

필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지요.

 ‘내 자신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이 내용을 신자들이 어떻게 알아들을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나만의 묵상 글을 신자들에게

강론으로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만 보였습니다. 그 어떤 것도

참조하지 않고 묵상 한 것을 강론으로

쓰면 두 줄이면 끝났습니다.
이런 고민을 당시 신학교 영성담당

신부님(아직 주교품을 받기 전)이셨던

 주교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당신의 묵상법을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끝기도를 바치면서 성찰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린다고 하십니다.

그러다보면 분명히 인상 깊은

일이나 생각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주님의 말씀과 연관 지어서

묵상하다보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고 신자들 편에서도

일상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기에

쉽게 받아들인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방법으로 20년 넘게 강론과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예화는 제한적이어서 매번

 쓸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하루가 한 번도 똑같은 적이

없음을 깨닫기에 아직도 할 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주교님 생전에 말씀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주교님께서 그렇게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강론이나 강의를 힘들이지 않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주교님 자신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끄심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를 위해

모든 것을 이용하고 계신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주님을 향한 믿음과

포기하지 않는 노력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성 토마스 사도

축일을 맞이합니다. 그는 주님의

 부활 소식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말하지요.

주님께서는 부활하시어

토마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께 대한 믿음만 있다면 또한

이를 위해 포기하지 않는 노력만

있다면, 내 안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큰 손길을 매 순간의 삶에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내가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남에게 인정받겠다는 허영심에

 유혹되어서는 안 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성 토마스 사도의 불신앙)



작은 것도 소중하게 여기면서...

어렸을 때, 각종 전자 기기를

직접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부품들을 구입해서,

라디오, 앰프, 전자오르간,

도난경보기 등 다양한 전자 기기를

 만들었습니다. 회로도와 부품을

구입해서 일일이 납땜을 하면서

만드는 재미는 대단했습니다.
한 번은 라디오를 만들었는데

작동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몇 번이나 제대로 되었는지를

살펴보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결국 구입을 했던 전파상에 가서

 확인을 요청했고, 부품 중에 작은

 하나가 불량인 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작은 부품 하나가 작동을

하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대단한 것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큰 문제로

나아갈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이는 작은 것 하나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별 것 아닌 것으로 간단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손목시계에도 500~600개의

 부품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 부품 중에 하나라도 제 위치에

놓여 있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작은 것도 소중하게 여기면서

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일이 제대로

이 땅에 펼쳐질 수 있습니다.

(성 토마스 사도의 의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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