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05 조회수3,210 추천수12 반대(0)

 

어릴 때의 기억입니다. 어르신들이 늘 말씀하셨습니다. 사제가 되면 이제 성이 바뀐다고 했습니다. 한양 조씨인 저의 성은 하느님의 아들인 하씨로 바뀐다고 하였습니다. 집안의 일은 생각하지 말고, 오직 하느님의 일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집의 형편이 어려워도, 부모님이 아파도 먼저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집안의 일은 다른 형제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자식으로서 부모와 가족과 인연을 끊으라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일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사제의 길을 포기하면 현세에서 결코 잘살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죄인처럼 조용히 속죄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자들과 가족들의 기도를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현세의 삶에서 충분히 보속을 해야만 하느님께 나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겁이 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28년 사제로 지내면서 지금은 그 의미를 조금 이해합니다. 사제의 길이 그만큼 소중하니, 사제의 길이 그만큼 거룩하니 뒤를 돌아보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서 순례를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기 때문입니다. 성지를 순례했다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면 좋겠습니다. 백견이 불여일행이기 때문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태어난 곳은 솔뫼입니다. 솔뫼는 소나무 숲이 청청하다는 뜻을 지닌 송산(松山)의 우리말입니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고 했던 솔뫼는 김대건 성인이 태어난 생가 터일 뿐 아니라 증조부 김진후(비오, 1814년 순교)를 시작으로 4대에 걸쳐 순교자 11위를 낸 성지입니다. 한국을 방문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솔뫼를 방문하셨습니다. 성지는 2004년에 복원한 성인의 생가와 함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관, 소나무 그늘 아래 서 있는 김대건 신부 동상 및 기념탑 등으로 조성됐습니다. 기념관은 성당을 비롯해 성인의 생애와 사목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김대건관, 대전교구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내포 교회관, 기증 유품실, 소영상관 등으로 이뤄졌습니다. 김대건 성인의 삶과 신앙을 보고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솔뫼에서 태어난 성인이 순교로 생을 마감한 곳은 서울 새남터입니다. 새남터에서 순교한 분은 김대건 신부님뿐만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낳은 순교 성직자 14명 가운데 11명이 이곳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11명 가운데 8명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성 앵베르 주교와 성 모방샤스탕 신부님이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새남터에는 현재 이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전통 한옥 양식으로 세워진 새남터성당에서 꼭 둘러봐야 할 곳은 2006년 문을 연 '새남터 기념관'입니다. 모두 4개 공간으로 이뤄진 기념관에서 '도입 공간'(입구)은 새남터성지 역사와 103위성인 성화를, '전시 공간'은 천주교 수용과 창설, 박해 및 순교과정 유물들을 전시했습니다. '추모의 장'은 김대건 신부 등 성직자 14인의 흉상과 부조 및 추모대로, '체험 및 교육 공간'은 김대건 성인 유해를 모신 조배실과 영상물 상영실, 박해 체험 공간 등으로 꾸며졌습니다.

 

경기도 안성 산골짜기에 있는 미리내는 성인이 묻힌 곳입니다. 당시 대역죄로 처형당한 김 신부님의 유해를 거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성인이 순교한 지 40일이 지난 후 목숨을 걸고 성인 유해를 거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민식(빈첸시오, 18291921)입니다. 미리내는 다름 아닌 이민식의 고향입니다. 성인이 미리내에 묻힌 사연입니다. 미리내(은하수의 우리말)는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신자들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이 달빛 아래 냇물과 어우러져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경당 앞에 있는 네 개의 묘 가운데 성인의 묘는 왼쪽에서 두 번째입니다. 성인의 왼쪽은 강도영 신부, 오른쪽은 차례대로 페레올 주교최문식 신부의 묘입니다.

 

성인이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들어와 붙잡힐 때까지 활동한 기간은 반년 남짓입니다. 짧았던 만큼 성인의 자취가 남은 곳은 많지 않습니다. 나바위와 용수리 포구는 성인의 조선 입국과 관련된 성지입니다. 나바위는 성인이 1845년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와 함께 서해를 통해 귀국하면서 첫발을 디딘 곳입니다. 이곳에는 성인 일행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을 기념해 세운 나바위성당이 있습니다.

일행은 나바위에 도착하기 전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습니다. 표류하던 일행이 도착한 곳이 바로 제주도 용수리 포구입니다. 일행은 이곳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배를 수리하고 먹을 것을 구한 뒤 다시 뱃길에 올랐습니다. 제주교구는 이를 기념해 용수리 해안에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과 기념 성당을 세웠고, 성인 일행이 타고 왔던 라파엘호를 복원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옥중에서 신자들에게, 주교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신부님의 굳은 신앙과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편지 중에서 최양업 신부님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머지않아 천당에서 영원하신 성부 대전에서 서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저를 대신하여 모든 공경하올 신부님들께도 인사드려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한 저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로 하여금 모든 혹독한 형벌을 끝까지 용감하게 이겨내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환난을 굽어보소서.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여, 누가 감당할 수 있으리이까.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토마스여, 잘 있게. 이후 천당에서 다시 만나세. 그리고 내 어머니 우르술라를 특별히 돌보아 주기를 그대에게 부탁하네.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들, 안녕히 계십시오. 무익하고 부당한 종,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옥에 갇힌 조선 선교지의 교황 파견 선교사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